추적추적 봄비가 내리는 밤, 내가 탄 차는 김주열 군의 시신을 실은 경찰차를 바짝 뒤쫓기 시작했다. 그러나 역시 경찰의 눈치는 빨랐다. 어느새 알아차렸는지 금세 차 서너 대가 내 차의 앞뒤를 둘러싸 추적을 방해해 결국 난 김 군의 시신을 실은 경찰차를 놓치고 말았다. 비록 놓쳤지만 그 차가 가는 방향으로 봐서, 김 군의 고향인 남원(南原)으로 가는 게 틀림없었다.
억울한 심정으로 《동아일보》마산지국으로 돌아온 나는 곧 서울로 급전을 쳤다. 다음 날인 4월 14일 아침 《동아일보》조간에선 ‘마산 발=이만섭 기자’란 이름으로 ‘경찰, 밤비를 이용, 김주열 군의 시신 남원으로 이동’이란 제하의 5단 기사가 실렸고, 곧 전국은 자유당의 말기적 행태에 분노하기에 이르렀다. 그때 나는 취재를 하면서도 힘이 절로 솟았다. 당시 마산 시민들은 야당지인 《동아일보》깃발을 단 차가 지나가면 박수를 치고 만세를 불러주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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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1년 4월 14일 내가 마산에서 타전한 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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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자유당의 실책은 거기서 그치질 않았다. 당시 마산에는 국회에서 ‘마산사태 진상조사단’이 내려와 조사를 벌이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이들 중 자유당 소속 의원들이 14일 엉뚱하게도 ‘김주열 군 사건’과 ‘마산사태’를 공산주의의 사주를 받은 불순 집단의 난동으로 발표한 것이다.
전국은 다시 분노로 들끓었다. 자신들의 과오는 인정하지 않은 채 그 책임을 딴 곳으로 전가하고 있는 자유당 정권이 더욱 미워졌던 것이다. 나 역시 화가 치밀어 진상조사단원 중 고향 선배인 김상도(金相道 의원ㆍ경북 영천)에게 거칠게 충고하기도 했다.
“이건 불에 기름을 붓는 격입니다. 부정선거를 방지하려는 학생과 시민의 순수성을 공산주의와 결부시킨다면 사태를 더운 악화시킬 것입니다.”
역시 내 생각은 맞았다. 시위는 곧 전국으로 확대되고 말았다. 서울·부산·대구 등지로 확산됐고, 사태가 점점 긴박해짐에 따라 나는 곧 서울로 올라왔다. 올라와 보니 서울의 시위는 마산 못지않게 심각했다.
마침 《동아일보》는 광화문에 있었기에 시위 상황을 비교적 상세히 취재할 수 있었다. 현재 광화문의 이순신 장군 동상 자리에 세워져 있던 이승만 박사의 동상을 무너뜨린 뒤 목에 새끼줄을 걸고 끌고 다니는 시위대의 모습이 보였고, 저 멀리 경무대 쪽에는 경찰과 대치한 채 시위를 벌이는 학생들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18일 결국 우려하던 사태가 터졌다. 경찰의 힘으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던지, 그날 밤 종로 4가에서는 깡패를 동원해 시위 중이던 고려대 학생을 폭행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 일은 정말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19일 분노한 시위대는 2만여 명으로 늘어났고, 경무대 턱밑에서 급기야 경찰의 발포라는 있어서는 안 될 최악의 상황으로까지 번졌던 것이다.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학생들을 보면서, 또한 총알이 날아다니는 현장을 취재하면서 내 마음은 처참했다. 민심을 거역하는 동재정치가 결국은 나라를 망치고 만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 같았다.
나는 그때 정치가는 항상 민심을 존중해야 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물론 이후 내 정치 생활에서도 나는 결코 이를 잊지 않으려 노력했다고 자부한다.
4월 19일 정부는 서울·부산·대구·대전·광주 등 5개 도시에 비상계엄령을 선포, 군의 힘으로 시위를 막으려 했다. 그러나 군은 더 이상 정권의 편이 아니었다. 계엄령이 선포되어 서울에 군이 진주했건만, 군과 시민이 그토록 가까워질 수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었다.
시민들은 서울로 입성한 계엄군의 탱크 위로 올라가 함께 손을 흔들기도 했고 만세를 부르는 등 군과 시민은 마치 한마음 같은 모습이었다. 이제 초조해진 것 경무대였다. 계엄군이 진압이라도 해줄 줄 알았건만 저토록 군과 시민이 한마음이 되어 있으니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긴박한 상황이라 보도 제한을 할 틈마저 없었다. 계엄군은 총도 쏘지 못했지만 국민들의 알 권리도 제한하지 못했다.
결국 23일 자유당 정권은 사태 수습을 위해 성명을 발표했으나, 여기서 또 다시 큰 실수를 저질렀다. 이기붕 씨의 비서실장이었던 한갑수(韓甲洙 씨ㆍ한글학자)가 초안을 잡을 때는 분명히 ‘이기붕 씨 부통령 당선 사퇴’라고 돼 있었는데, 나중에 강경파의 고집으로 ‘고려’라는 꼬리가 붙어 ‘이기붕 씨 부통령 당선 사퇴 고려’라는 성명서가 발표된 것이다. 사퇴면 사퇴지 꼬리가 붙다니……. 한마디로 국민 기만행위가 아닐 수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