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모든 국민이 다시 들고 일어나 비난하자, 하루 만인 24일 이기붕 씨는 모든 공직에서 사퇴한다는 공식 성명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이 사실을 미리 안 장면 당시 부통령도 그날 동시에 ‘부통령직 사퇴’를 발표해, 각 신문사에서는 어느 기사를 1면 톱으로 정할지 고민하는 일까지 있었다. 다음 날 25일에는 연세대 정석해(鄭錫海) 교수를 비롯한 대학교수들이 시국선언문을 발표하고 시가행진을 벌였으며, 드디어 26일에는 송요찬(宋堯讚) 계엄사령관의 주선으로 경무대에서 학생 및 시민대표 5인과 이승만 대통령의 면담이 이루어졌다.
이 자리에서 학생 및 시민대표들이 “사태 수습을 위해서는 대통령께서 물러나셔야 되겠습니다”라고 하자 이승만 대통령은 떨리는 목소리로 “국민이 원한다면 대통령직을 사임하겠다”고 약속했으며 곧이어 방송을 통해 직접 하야(下野)의 뜻을 밝혔다.
이날 오후 국회는 본회의를 열어 ‘이 대통령 즉시 하야, 3·15 부정선거 무효 및 재선거’ 등을 의결하였다. 다음 날인 27일에는 이 대통령의 사임서가 국회에서 정식으로 통과되었으며 28일에는 이승만 대통령이 경무대를 떠나 처음에는 도보를 고집하다가 주위의 만류로 자동차를 타고 이화장(梨花莊)으로 거처를 옮겼다.
나는 당시 역사의 현장을 직접 취재하며 여러 가지 착잡한 심경과 함께 아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우선 장면 부통령에게 다소 실망스러웠다. 사실 나는 마산으로 취재를 떠나기 전 장 박사를 만난 적이 있었다. 당시 송원영(宋元英) 공보비서관(후일 민주당 의원)의 주선으로 자리를 함께 한 나는 강력하게 ‘부통령 사퇴’를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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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기붕 국회의장에게 따끔한 질문을 하고 있는 기자 시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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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부통령직을 던져야 합니다. 그래야 나중에 정권을 잡게 되더라도 학생들의 희생에 의해 정권을 잡았다는 비판을 듣지 않게 됩니다. 부통령직을 던지고 앞장서야만 나중에도 떳떳하게 정치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장 박사는 내 말에 선뜻 동의하지 않았다.
“국민들이 4년 임기로 날 뽑아주었는데, 끝까지 자리를 지켜야 하지 않겠소.”
나는 답답했다. 어차피 부통령 임기는 몇 달 남지 않았고, 부정선거로 이기붕 씨가 차기 부통령으로 발표된 상태이고, 게다가 부정선거를 비난하는 데모가 연일 끊이지 않고 있는 판에 과감히 부통령직을 던지고, ‘부정선거’ 규탄에 앞장서야 하질 않겠는가. 그러나 그 시기를 놓친 장면 박사는 이기붕 씨가 국민의 압력에 못 이겨 사퇴 발표를 한다는 정보를 하루 전에 입수하자 그제서야 부리나케 ‘사퇴한다’고 발표해 국민들을 다소 실망시켰던 것도 사실이다.
한편 자유당은 처음부터 잘못된 길을 걸었다. 야당의 대통령 후보가 서거함으로써 대통령 선거는 이미 끝난 것인데, 굳이 부통령까지 당선 시키려고 온갖 부정선거를 저질렀으니 망하는 길을 자초한 셈이 되었다. 또 마산에서 김주열 군 사건이 터졌을 때 이를 ‘공산당의 사주를 받은 배후 세력의 조종……’운운하고, 이기붕 사퇴 문제에 있어서도 ‘고려’라는 꼬리를 붙임으로써 결국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가고 만 것이다.
1960년 4월 그 격동의 한 달을 정치부 기자로서 취재하면서 느낀 것은 역시 부도덕하고 부정한 정권의 말로는 비참하다는 사실이다. 자유당 12년 정권의 말로 역시 그러했다. 이기붕 씨 일가는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으며, 이 박사는 얼마 뒤 하와이로 망명을 떠나야 하지 않았던가. 또한 그때 정치인의 아내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생각을 하게 되었다. 박마리아 여사는 너무 욕심이 앞섰던 것 같다.
몸도 안 좋은 남편을 무리하게 권좌에 밀어 올리려 했던 정치적 야욕만 아니었던들 이기붕 씨의 말로 역시 그토록 참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때 나는 정치인의 아내는 모름지기 뒤에서 조용히 남편을 돕는 것이 참다운 내조가 된다는 걸 절실히 느꼈다. 뿐만 아니라 정치인은 떠나야 할 때를 알고 떠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도 그때 절감할 수 있었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공공연하게 자행된 3·15 부정선거에 대한 준엄한 심판의 현장을 지켜보며 나는 그 같은 교훈을 절실히 느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