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창립선언문도 만들고 회가(會歌)에 회지(會誌)까지 발행한 개진회는 이후 세미나 형식으로 자주 보이다가 유신정권 때 탄압을 받아 표면적으로는 해체됐으나 회원 간의 유대가 깊어 지금까지도 가끔 모여 나라 걱정을 하고 있다.
아무튼 이처럼 사회는 혼란했지만, 내 나름대로는 동부서주 나라를 걱정하고 있던 1961년 5월 16일 새벽, 전화벨이 급하게 울렸다. 대륜중학교 후배로 해병대 장교라는 사람이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군사혁명이 일어났습니다”라고 알려왔다. 나는 신문사에 전화를 걸어 이를 확인한 후 급히 집에서 뛰쳐나왔다.
군사쿠데타가 발생했다는 전화를 받고 동아일보사로 달려가면서 언뜻 머리에 떠오른 건 단 하나였다.
‘결국 이렇게 됐구나.’
나중에 윤보선 대통령도 ‘올 것이 왔다’는 비슷한 말을 했다는 걸 들었지만,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만큼 당시 사회상은 온 국민 누구나가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극도로 혼란스러웠다. 4·19 때 ‘부통령 사퇴’를 미리 하지 않고, 결국 학생들의 힘에 의해 정권을 잡은 장면 정부로서는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똘똘 뭉쳤어도 시원찮을 판에 정권욕 때문에 신·구파로 나뉘어 싸우다가 결국 분당(分黨)까지 했으니, 화를 자초한 셈이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장면 총리 자신이 믿고 육국참모총장으로 임명한 장도영(張都暎) 장군마저 관련돼 있는 데다 자리를 지켜야 할 총리 자신은 수녀원으로 숨어 행방을 찾을 수 없었으니 정권의 체면도 이만저만 깎인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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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6 직후의 장도영과 박정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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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사에 들어서자 라디오에서는 이미 혁명군의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우리는 반공을 국시(國是)로 하고 유엔 헌장을 준수하며 미국 등 우방과의 유대를 강화하고 구악(舊惡)을 일소하여 민족정기를 바로잡고 민생고(民生苦)를 해결하며 통일을 위해 공산주의와 대결할 수 있는 실력을 배양한 후, 양심적인 정치인에게 정권을 이양할 것입니다…….”
군사혁명에 놀란 미 8군 측은 매그루더 사령관과 마셜 그린 대리대사가 윤보선 대통령을 찾아가 혁명군을 진압하기 위해 군 통수권을 발동해 줄 것을 건의했으나 윤 대통령은 아군끼리 피를 흘리면 북한에 남침의 빌미를 줄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 이를 거절했고, 이런 우여곡절을 거쳐 3일 뒤 ‘군사혁명’은 성공하게 된다.
모두들 안타까웠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나는 채 한 달도 못 돼 필화(筆禍)사건에 휘말리고 말았다. 6월 3일 오후, 청와대에서는 윤 대통령의 특별 기자회견이 있었다. 이는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비록 혁명이 성공했다고는 하지만, 법적으로는 윤 대통령이 나라의 통수권자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윤대통령의 회견 중 혁명군에게 불리한 얘기도 나올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묘한 분위기를 감지했음일까. 무장 헌병들이 특별 기자회견장을 둘러싸 윤 대통령에게 무언의 압력을 가했으며, 중앙청 출입기자단 간사조차 몸을 사리는 발언을 했다.
“우리, 이번에는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회견 때 곤란한 질문 같은 건 피하면서 적당히 하는 게 좋겠소.”
물론 나는 내 성격상 그런 비열한 태도를 용인할 수가 없었다. 난 버럭 소리를 질렀다.
“말도 안 된다. 민간인 정부는 약하다고 마구 때리다가 힘 있는 군사정권이라 해서 꼼짝 못하는 그런 기회주의적인 언론이 되란 말인가? 안 돼! 각자 소신껏 묻고 소신껏 써야 해.”
그러나 내 말에 기자들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만큼 당시 분이기는 살벌했다. 그리고 이날 기자회견에는 중앙청 출입 기자와 국회 출입 기자가 섞여 있었다. 드디어 기자회견이 시작됐다.
그러나 나는 회견이 끝날 무렵에 옆방의 비서실로 나와야 했다. 왜냐하면 마감시간이 임박해 본사로 기사를 송고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날 마침 나는 견습 중인 이진희(李振羲) 기자(후일 문공부 장관)를 데리고 갔다. 그런데 뒷일을 이진희 기자에게 부탁한 뒤 내가 옆방에서 전화로 기사를 부르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이진희 기자가 문을 열고 뛰어 들어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