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선배님, 방금 대통령께서 중요한 얘기를 했습니다. 군사정권은 9월의 유엔 총회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조속히 민간인에게 정권을 이양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뭐야! 그거 아주 중요한 얘긴데……. 이건 정확해야 해. 다시 정확히 이야기해 봐.”
나는 긴장했다. 윤보선 대통령이 그런 얘기를 했다면 이건 당연히 톱뉴스 감이었다. 사실을 확인한 나는 그 사실을 ‘리드[前文]’로 뽑아 다시 전화로 기사를 급히 불러주었다. 그때 기사는 정치부의 박경석(朴敬錫 기자ㆍ전 국회의원)가 받았다. 그리고 바로 그날 저녁에 나온 《동아일보》에는 1면 톱으로 ‘윤 대통령, 정권 민간 이양을 촉구’란 제목으로 기사가 나왔다.
바로 이게 문제였다.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거의 모든 언론이 당국의 눈치를 보느라 아예 그 기사를 빼버리거나 은폐해 버렸다. 《조선일보》는 제목은 뽑지 않은 채 기사로만 작게 취급했는데, 《동아일보》만이 당당하게 1면 톱으로 다뤘던 것이다. 그날 밤 회사에서 숙직하던 사원으로부터 이상한 연락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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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로 말미암아 나는 포고령위반죄로 체포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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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에서 사람들이 왔는데 이 기자 집을 가르쳐줘도 되겠습니까?”
나는 그 기사 때문일 거라고 바로 짐작했다. 이미 1면 톱으로 나간 이 기사가 시내 배달 판부터는 5단짜리 중간 톱으로 재편집됐기 때문이었다. 물론 당시 ‘케네디와 흐루시초프 간 정상회담’ 이라는 굵직한 외신이 들어와 1면 톱에서 밀려난 탓도 있었지만 아무튼 계엄사의 압력도 작용했던 것이다.
“그만두세요. 내가 지금 회사로 바로 나가겠어요.”
나는 ‘혁명정부의 포고령 위반’으로 신문사에서 시경으로 끌려가면서 전화로 고재욱(高在旭) 주필과 김성열 정치부장에게 담담히 말했다.
“만일 내가 밤 12시 통행금지 전까지 돌아오지 않으면 잡혀간 걸로 아십시오.”
가보니 나 이외에도 김영상(金永上) 편집국장이 옆방에 연행돼 있었다. 그러나 나는 당당했다. 분명한 사실을 섰을 뿐인데 뭐가 잘못이란 말인가. 그러나 그들은 막무가내였다. 윤보선 대통령이 하지도 않은 말을 내가 국민과 군사정부 사이를 이간시키기 위해 꾸며서 썼다는 것이었다. 나는《조선일보》도 보도한 사실을 들며 윤 대통령에게 직접 확인하라고 했고, 나중에야 그들도 “우리는 다만 최고회의의 지시에 따를 뿐입니다.” 라고 솔직히 시인했다.
당시 나의 연행은 외신에까지 크게 보도됐다. UPI통신은 서울 발 기사로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한국 경찰은 한국 최대 신문인 《동아일보》의 편집국장과 기자 1명을 체포했다. 편집국장 김영상 씨와 이만섭 기자는 4일 밤 심문 차 체포되어 4일 현재 구류 중이다. 이들을 체포한 데 대해서는 아무런 공식적 해명이 없으나 3일의 윤보선 대통령 기자회견에 관한 기사와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동아일보》는 4일자 조간에서 윤보선 대통령은 금년 가을 유엔 총회에 미칠 영향 때문에 정권을 조속히 민간인에게 복귀시키는 게 마땅하다는 생각을 언명했다는 보도를 한 바 있다. 이 문제와 관련해 심흥선(沈興善) 공보부장은 5일 모 일간지가 대통령의 기자회견 내용 일부를 고의로 사실과 유리되게 조작해서 보도했는데 이는 용인할 수 없는 일이며, 또한 혁명정신에 위배되는 행위라는 내용의 담화를 발표했다.”
그러나 외신에서까지 이 사건을 보도했음에도 일은 결코 간단치 않았다. 6일에는 “다 내가 했고 이만섭 선배는 아무 잘못이 없다”며 이진희 기자가 제 발로 잡혀 들어왔다. 사실 견습기자는 기사에 대해 아무런 책임이 없었는데 참 의리 있고 좋은 후배였다.
이틀 뒤인 8일에 김영상 편집국장은 석방됐지만 나와 이진희 기자는 결국 13일 오후 구속돼 고등군법회의에 송치, 재판을 받게 되었다. 구속이 결정된 뒤에 나는 서대문경찰서에서 서빙고의 육군형무소로 이감됐는데, 이감되기 전까지 권오기(權五琦 기자ㆍ전 동아일보사장)와 이웅희(李雄熙 기자ㆍ전 국회의원)가 자주 면회를 왔다. 또한 경찰서 유치장을 지키던 김진태 순경은 나를 불러내 담배도 주고 잘 대해 주어 지금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나는 육군형무소로 이감되면서 면회 온 아내에게 “돈암동 조병옥 박사 사모님에게 가서 이 억울한 사정을 말해 주오”라고 일러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