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감될 때의 에피소드도 있었다.
“이왕이면 《동아일보》에 가서 인사나 하고 갑시다.” 낭만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난 그냥 흘리는 말로 얘기했는데 의외로 날 태운 지프가 광화문으로 방향을 바꿔 동아일보사로 갔다. 소식을 듣고 편집국에서 뛰어 내려온 기자들과 나는 수갑을 찬 손으로 신문사 문 앞에서 일일이 악수를 하기도 했다.
막상 구속되자 그날부터 아내는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면회를 왔다. 더욱이 당시 집사람을 아이를 가져 만삭의 몸이었다. 그런 모습으로 거의 매일 면회를 와서는 나를 위로해 주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집사람은 내가 시킨 대로 돈암동 조병옥 박사의 사모님에게 억울한 사정을 호소했고, 노정면(盧禎冕) 여사는 두 번이나 청와대로 찾아가 윤보선 대통령께 항의조로 도움을 청했다고 한다.
“군인들이 차마 윤보선 대통령을 잡아넣지 못하니까 대신 이만섭 기자를 잡아넣었는데 어째서 가만히 계십니까? 그러니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든지 아니면 이만섭 기자를 석방시켜 주든지 양자택일해야 할 게 아닙니까?”
한편 동료 기자들도 날 석방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당시 법조출입 기자였던 박현태(朴鉉兌) 기자, 국방부 출입 기자였던 최원각(崔元珏) 기자는 날 살리려고 회사에 얘기를 해, 혁명군과 가까운 사이인 신직수(申稙秀 씨ㆍ후일 중앙정보부장)를 《동아일보》필화사건의 변호사로 위촉하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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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연행에 대한 동아일보의 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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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신직수 변호사는 신문사가 혁명군과 화해하는 방법으로 해명 기사를 써주길 바랐다. 하루는 고재욱 주필과 김성열 부장이 내게 면회를 와 이런 말을 하는 것이었다.
“신직수 변호사의 말로는 이번에 문제가 된 기사가 사실과 다르다는 해명 기사를 내기만 하면 석방시켜 준다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진실을 진실대로 보도한 게 어찌 잘못이란 말인가.
“안 됩니다. 전 비록 감옥에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언론의 권위를 위해 군법회의에서 진실을 정정당당하게 밝힐 작정입니다. 그러니 행여 해명 기사를 실을 생각은 마십시오.”
사실 남들처럼 적당히 타협한다면 풀려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내 성격상 그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서빙고의 감방은 사병용이었다. 수감자가 너무 많아 잠도 바로 누워 잘 수 없을 정도로 심한 고초를 겪었다. 그러나 무슨 생각이 있었던지 한 달 정도 지나자 우리를 장교 감방으로 옮겨줘 사정이 다소 나아지기도 했다.
이렇게 두어 달 고생한 후 8월초 어느 날 새벽 원충연(元忠淵) 대령이 찾아왔다. 당시 그는 최고회의 공보실장이었다. 그런데 그의 태도가 의외였다.
“이만섭 기자시죠? 대단히 미안합니다. 기소유예가 결정됐습니다. 그 동안 고생이 많았습니다.”
너무 갑작스런 얘기라 기뻐할 새도 없이 내가 옷을 갈아입자 그는 자기가 타고 온 지프에 날 태우더니 우리 집까지 데려다 주었다. 집에 도착하니 집사람과 장모는 날 버선발로 맞았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장모가 건네주는 하얀 두부를 받아먹었다.
원충연 대령은 그 후 반혁명세력으로 구속되고 그 후임으로 이후락 씨가 취임하였다. 내가 풀려난 데 대해서는 윤보선 대통령의 회고록 《외로운 선택의 나날》에도 실렸다. 자신의 회견으로 내가 곤욕을 겪게 된데 대해 그는 늘 미안해했다고 한다. 게다가 노정면 여사의 항의까지 받았으니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회고록에 의하면 윤보선 대통령은 기회를 찾다가 8월 말 서울 외곽 지역 교외선을 시승하는 날에 마침 박정희 의장과 함께 할 기회가 있어 나의 석방을 부탁했고, 그 자리에서 박정희 의장은 옆 칸의 김종필(金鍾泌) 중정부장을 불러 사실을 확인한 뒤 석방을 지시했다는 것이었다.
아무튼 나는 풀려났고, 다음 날 바로 출근한 내게 동료 기자들은 많은 격려를 해주었다. 그러나 가슴 아픈 일은 그 일로 부친이 충격을 받아 병을 얻은 것이다. 전에 공군사관학교에서 자진 퇴교했을 때도 충격을 받은 바 있는 부친은, 이번에 내가 수갑을 차고 형무소로 가자 더 큰 충격을 받아 몸져 누워버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