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그 병을 이기지 못한 부친은 2년 뒤 환갑을 두 해 남긴 채 눈을 감으시고 말았다. 모두 내 탓이었다. 요즘도 부친의 산소에 갈 때면, 난 속으로 ‘제가 불효자식입니다.’라고 외치며 눈물을 흘리곤 한다. 자식으로서 걱정만 끼치고 서울 구경 한번 제대로 못 시켜드린 불효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습이 찢어질 것 같다.
나는 부친에 대해 죄스러운 마음과 함께 마음속 깊이 존경심도 갖고 있다. 아버지는 특별한 학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서당에서 한학만 공부하신 분이지만 평소 생활이 늘 깨끗하고 바르셨다. 내가 8선 의원에다 국회의장까지 지냈다고는 하나 부친에 비할 바가 못 된다.
부친께서는 신앙심 또한 매우 깊으신 분이셨다. 대구 서문교회(당시 목사 이성현(李聖獻) 집사로 계셨는데 돌아가시는 날 부친께서는 “나는 오늘 밤 12시에 하느님 곁으로 간다”고 말씀하시고는 정말로 그날 밤 12시 정각에 두 손 모아 합장기도를 하신 채 조용히 눈을 감으셨다.
또한 부친께서는 돌아가시면서 “내 전 재산인 저금통장이 서랍 안에 있으니 그대로 교회에 갖다 바쳐라”고 유언을 남기셨으니 참으로 신앙심이 깊으신 분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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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버지 이덕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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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그 후 신문사에서는 형무소에서 고생하고 돌아온 나를 배려해 주일(駐日)특파원으로 발령을 냈다. 그리고 당시 편집국장이던 김영상 씨는 수석 심의위원으로 자리를 옮겼고, 그 뒤를 이어 천관우I(千寬宇), 김성한(金聲翰) 씨 등 당대의 훌륭한 논객(論客)들이 차례로 《동아일보》의 편집국장을 맡았다.
한편 내가 일본으로 특파될 당시에는 상주 특파원 제도가 없었으나, 한(韓)·일(日) 회담에 대비해 《동아일보》·《조선일보》등 몇몇 주요 신문사에서 특파원을 보내던 때였다. 당시 《조선일보》의 김윤환(金潤煥ㆍ전 국회의원), 동양통신의 한종우(韓鍾愚 특파원ㆍ현 성곡(省谷)언론재단 이사장) 등이 나와 함께 취재를 했다. 나에겐 특파원 생활이 시야를 넓힐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기도 했다. 1961년 9월부터 나는 도쿄 시내 <시바파크호텔>의 작은 방을 숙소 겸 사무실로 썼다.
당시 일본은 한국전쟁 특수(特需) 덕에 다시 일어서서 경제적 번영을 누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똑같이 1945년이란 출발 선상에서 함께 시작한 우리는 그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나는 일본을 철저하게 배워야겠다는 생각으로 특파원의 바쁜 나날을 보냈다. 직접 취재하는 것뿐 아니라 매일 일본의 신문을 샅샅이 읽었으며, 고포 사회의 실정을 분석하는 데도 열을 올렸다.
일본으로 건너온 지 2개월이 지난 61년 11월, 박정희 의장이 일본을 방문했다. 실질적인 국사 수반이 된 이후 첫 일본 방문으로 일본은 한국의 젊은 군사혁명가에게 큰 관심을 보여 이케다 하야토[池田勇人] 수상이 직접 공항에 나가 그를 영접했다. 그러나 대일 청구권 문제나 일본의 대한(對韓) 경제 협력, 그리고 과거사 문제 등 현안이 산적되어 있던 터라 그의 방문 일정은 무척 바빴다.
11월 12일 이케다 수상과의 정상회담, 그리고 연이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전 수상, 이시이 미쓰지로[石井光次郎] 한·일간담회 회장과의 오찬, 그리고 재일동포들과의 만남까지 벅찬 스케줄을 소화한 박정희 의장은 숙소인 영빈관으로 돌아와서 130여 명의 내·외신 기자들과 함께 회견을 가졌다.
나는 불과 몇 달 전 육군형무소에서 풀려나 일본으로 건너온 씁쓸한 기억도 있었지만 이건 차치하고 그래도 일본에서 우리 한국의 국가원수를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앞섰다. 그리고 외국 기자들이 대부분인 기자회견장에서 한국 기자가 먼저 질문을 해야 박 의장에게 용기를 얻을 수 있고, 또한 답변을 통해 우리나라의 입장을 미리 밝힐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되어 내가 제일 먼저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이 일이 주일특파원 시절의 또 한 가지 에피소드를 낳았다. 내가 그날 박 의장을 돕는다는 순수한 취지로 제일 먼저 질문한 세 가지는 다음과 같았다.
“첫째, 대일 청구권에 관하여 이케다 수상이 구체적인 숫자를 제시했습니까? 만일 없었다면 의장님을 초청해 놓고 제시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둘째, 한국은 지금까지 대일 청구권 문제와 한국에 대한 일본의 경제 협력 문제를 분리해 주장해 왔는데 지금도 그 방침에는 변동이 없는지? 셋째, 금번과 같은 회담이 장래에 서울이나 도쿄에서 다시 있을 계획인지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