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색한 분위기에 개의치 않고 먼저 인사를 하며 내 소개를 했다. 그러자 이 실장이 일부러 놀라는 표정으로 “이만섭 기자, 여기 웬일이오” 하면서 박 의장에게 나를 소개했다.
이후락 실장의 말이 끝나자 박 의장은 몹시 못마땅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 그래? 그런데 요즘 신문이 문제야. 특히 《동아일보》가 문제란 말이오. 신문은 선동만 해요. 쌀값이 오르면 신문이 1면 톱으로 ‘쌀, 쌀, 쌀값 폭등’하고 주먹만 한 활자로 보도하니 쌀값이 더 오르지 않소……. 신문이 그렇게 선동만 해서야 되겠어요?”
그러나 나도 언론인으로서 소신을 굽힐 수 는 없었다.
“그게 그렇지 않습니다. 쌀값이 오르면 위정자들이 그런 현실을 알고 적절한 대책을 세우라는 것이지, 결코 선동의 의미가 있는 게 아닙니다. 그리고 사실 보도야말로 신문의 사명이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하여간 신문이 문제야. 선동만 한다니까…….”
박 의장이 계속 못마땅한 표정을 짓자, 옆에 있던 장성들도 박 의장의 말에 모두 한마디씩 거들었다. 난 외로웠으나 기죽지 않고 계속 내 소신을 펴내갔다. 박 의장 일행도 계속 언론에 대한 공세를 폈다. 그러는 가운데 어느새 우리의 눈에 울릉도가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말이 나온 김에 적에 겪었던 필화사건을 끄집어냈다.
“전에 제가 사실 보도를 해 육군형무소에 간 적이 있습니다. 윤보선 대통령이 이야기한 걸 그대로 보도했는데도 잡혀갔었습니다. 혁명정부의 언론 정책과 시각에는 분명히 문제가 있습니다.”
형무소 이야기가 나오자 박 의장의 얼굴이 다소 굳어지며 입을 열었다.
“아, 그래요? 그건 뭔가 잘못된 것 같구먼.”
“그렇습니다. 그건 분명히 잘못된 일이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미안했던지 입을 다문 채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고, 어느 덧 날은 어두워져 배는 울릉도에 닿았다. 주민들이 어둠 속에서 횃불을 들고 박 의장을 박 의장을 환영했다. 이것이 우리의 첫 대면이었다. 박 의장 일행은 박창규(朴昌圭) 울릉군수(후일 대구시장) 관사에 여장을 풀었다. 나는 당시 울릉도에는 여관이 없어 민박을 찾아다니다가 순경으로 있는 대륜중학교 후배를 만나 그의 집에서 하루를 보냈다.
|
|
| ▲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 일행이 업무보고를 받은 후 울릉군청에서 나오고 있다. ©정부기록사진집 |
|
후일 대구시장이 된 박창규 씨는 지난날을 회고하면서 그날 밤 박 의장 일행이 반주를 곁들인 저녁식사를 하면서 나를 화제로 삼아 밤늦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전해주기도 했다.
다음 날 박 의장 일행은 울릉도 시찰을 마친 후, 해변에 있는 2층 다방으로 들어서자 나를 본 박 의장은 손짓을 하며 나를 불러 기어이 자기 옆자리에 앉게 해 함께 국수를 먹자고 권했다.
식사를 하면서 박 의장이 말했다.
“어제는 내가 좀 심하게 얘기한 것 같아. 미안하오.”
“뭘요. 그럴 수도 있지요.”
나는 그 순간 박 의장의 그런 따뜻한 인간미에 그동안 박 의장에 대해 품고 있던 좋지 않던 감정이 눈 녹듯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다음 귀로에서 우리는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길을 겪게 되었다. 그날따라 울릉도 부근의 파도가 그렇게 심할 수가 없었다. 그 전날 밤 우리가 상륙한 쪽으로는 도저히 모선인 군함에 접근할 수 가 없었던 것이다. 우리 일행은 망연자실하다가 하는 수 없이 산길을 따라 섬을 가로질러 반대쪽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한참 섬을 횡단하는 동안 박 의장은 나의 손을 당겨 잡고 함께 걸으며 어민들의 애환이나 피폐한 농촌의 실정 등 참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무뚝뚝한 박 의장이 그토록 격의 없이 따뜻하게 이야기를 하는데, 그 자리에서 내가 정치 이야기 같은 ‘취재’는 해볼 엄두조차 낼 수 없는 분위기였다. 아무튼 그렇게 한참을 걸어 섬의 반대편에 도착했으나 그쪽의 파도 역시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그때 모선으로 옮겨가며 겪었던 위험했던 고비는 지금 생각해도 모골이 송연할 정도였다. 높은 파도 한가운데서 경비정으로 겨우 모선까지는 다다랐으나 집채만 한 파도가 여전히 넘실거렸던, 경비정에서 모선으로 옮겨 타기 위해서는 로프를 묶어 만든 줄사다리로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시커먼 바다를 아래에 두고 힘겹게 로프를 오르던 박 의장이 어느 순간 발을 옮길 때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