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창설자인 독립운동가 세 분과 상화 선생의 민족정신의 맥을 이은 대륜중학교는 민족성이 강해 조선총독부로부터 정식으로 중학교 인가를 받지 못해 교남학교로 출발하였으며 ‘청포도’와 ‘광야’로 유명한 저항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인 이육사(李陸史) 선배도 바로 이 교남학교 출신이었다. 대륜중학교의 뿌리가 원래 이러했으니 내가 대륜을 다닐 때의 학교 분위기도 다른 공립학교들과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일제가 일본어를 상용하도록 할 때라 학교에서 우리말을 쓰면 퇴학이나 무기정학을 시켰다. 그러나 대륜중학교에서는 절반 정도 되는 조선인 선생님들이 혹시 형사들이 복도에서 감시를 하지 않나 살펴가며 수업시간에도 우리말을 하곤 했다. 이효상 교장 선생(후일 국회의장), 이규동 선생(후일 경북대 사범대학장) 등이 우리에게 정신적인 지주가 돼주었다. 뿐만 아니라 산에 올라가 송진을 채취하거나 방공호를 파는 등 근로동원 시간에도 우리끼리 모여 독립운동가인 김구, 이승만, 김일성에 등에 대해 얘기하기도 했는데, 일본은 결국 대동아전쟁(제2차 세계대전)에서 망할 것이라며 열을 올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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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륜중학교 시절 친구들과 함께 / 왼쪽이 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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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해도 나는 대륜중학교에 들어간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중햑교 2학년 여름 결국 우리들의 예상대로 올 것이 왔다. 일본이 항복한 것이다. 스승들이나 학생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그러고는 목이 터지도록 만세를 불렀다.
해방은 내게, 아니 우리 대륜중학교에게는 큰 기회로 다가왔다. 왜냐하면 해방과 함께 일본에서 공부하던 선배들이 대거 모교로 돌아와 교사진이 막강해졌기 때문었다. 당시 교사들의 실력과 정열이 어느 정도였는가 하면 일본 동경제대를 다니다가 온 박순근 선생은 윤리 시간에 우리 중학생들에게 헤겔의 변증법을 가르쳤고, 영어 시간에는 세익스피어 작품은 물론 대학교재였던 ‘스케치북’을 외울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국어는 이문기 선생님이 당시 동아일보에 ‘딸 삼형제’를 연재해 유명세를 탄 문학가 이태준 선생님의 <상허(尙虛)문학독본>을 부교재로 썼으며 국사는 김태균 선생님이 맡아 우리에게 민족의식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유석우 선생님(후일 경북대 교수)도 우리에게 국사와 한문을 가르쳤었다. 유석우 선생님은 국가인권위원이자 작가인 유시춘과 국회의원 유시민 오누이의 백부이다.
내가 계속 운동을 좋아하면서도 공부에 더 열을 올렸던 것도 이토록 우수한 선생님들의 덕이라 아니 할 수 없다. 그 후 박순근, 이문기, 김태균 선생님 등은 학교를 그만두고 월북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는 비록 집안은 가난했으나 공부는 열심히 했다. 해방 후 아버지의 사업이 기울기 시작했다. 우리 가족은 달선공원 바로 뒤에 있는 초가집으로 이사해야했고, 나는 가난한 학생이 되고 말았다.
이때부터 내 책보에서는 도시락이 사라졌다. 어린 나로서는 참기 힘든 일이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도시락 대신 어머니가 싸준 고구마를 들고 점심시간이면 친구들이 볼까 부끄러운 마음으로 교실 밖으로 나가 햇볕이 들지 않는 담장 뒤에 숨어 찐 고구마를 먹던 내 모습, 지금 생각해도 슬픈 시절이 아닐 수 없다. 눈물의 밥이 아닌 눈물의 고구마. 이때 나는 가난한 서민의 고통을 알게 되었고, ‘정치는 위를 보고 하는 게 아니라 아래를 보고 해야 한다’는 철학을 터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