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의장에게 공화당 입당을 약속한 나는 다음 날 바로 회사에 사표를 제출했다. 전혀 예상치 못했기에 회사에서는 모두들 깜짝 놀라는 표정이었다.
고재욱 주필은 극구 나를 말렸다. 고 주필은 “앞으로 우리 신문사에서 큰일을 해야 할 사람인데……, 다시 생각해 보시오”라고 말하며 기어이 사표를 받아주지 않았다. 고 주필은 그 후 최두선 사장에 이어 《동아일보》사장이 되신 분으로, 평소에 말씀을 아끼고 감정 표현을 잘하지 않는 편이었지만 그토록 나를 특별히 사랑해 주셨던 것이다.
그러나 내 결심은 이미 굳어져 있었고, 박 의장과 이미 약속까지 한 입장이라 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어 며칠 후 소공동(小功洞)에 있는 공화당(共和黨)사로 가 정식으로 입당 절차를 밟았다. 입당 추천은 당시 같은 언론인 출신으로 공화당 대변인이었던 서인석(徐仁錫)씨가 해주었다. 서 대변인이 나의 입당을 공식으로 발표하기 직전, 나는 급히 신문사로 김성열 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공화당에서 나의 입당 발표가 곧 있을 겁니다. 그러니 며칠 소급해서 사표를 받아주시지요.”
이젠 김 부장으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렇게 하여 공화당에 입당한 나는 며칠 뒤부터 바로 선거 유세에 합류했다.
당시 선거 유세반은 나를 비롯해 이효상(李孝祥), 백남억, 박준규, 민관식 씨 등 모두 5명이었다. 이 중 다른 네 사람은 지역마다 교대로 유세를 했으나, 나는 대구를 시작으로 선거가 끝날 때까지 박정희 후보, 이후락 공보실장과 침식을 같이하며 전국을 누볐다.
당시 김종필 씨는 모든 당직에서 물러나 이미 그해 2월 25일 유럽 등으로 외유를 떠나 국내에 없을 때였다. 그 이유는 최고회의 내에서 이주일(李周一), 김동하(金東河) 씨 등을 중심으로 한 세력들이 ‘4대 의혹사건’과 공화당의 사전 조직 등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의 독주에 반발하여 심각한 내분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른 바 김종필 씨의 제1차 ‘자의 반 타의 반’의 외유였다.
일본 외신(外信)에서는 이를 ‘망명’으로 표현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기자 시절에 내가 ‘자의 반 타의 반의 외유’로 표현했던 적이 있는데 그 말이 지금까지 세간에 그대로 유행하고 있다.
제5대 대통령 선거 유세는 대전에서부터 시작됐다. 그러나 나는 고향인 대구에서부터 시작하고 싶어 대구로 먼저 내려가 박 의장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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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3년 5대 대통령 선거의 입후보자 벽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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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그날이 왔다. 10월 6일이었다. 유세는 오후로 예정돼 있었기에 점심때 도착한 박 의장 일행과 합류한 나는 금호호텔에서 일행들과 함께 점심식사를 한 뒤 수성천(壽城川)으로 향했다. 평소 박 의장은 과묵한 편이었으나, 걱정이 됐던지 차에 오르면서 내게 한마디 던졌다.
“이만섭 씨, 오늘 연설 잘해야 돼요…….”
그 말을 듣자 나도 은근히 신경이 쓰였다. 그날 연설은 내가 첫 주자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학창 시절 웅변을 잘한다는 소리를 들어본 데다, 연세대 시절에는 응원단장을 해본 경험도 있었기에 대중 앞에 서는 데는 겁이 없었다. 하지만 정치 연설은 사실 그날이 처음이라 퍽 긴장되기도 했다.
차가 수성천에 도착하자 나는 깜짝 놀랐다. 아마 대구 역사상 그렇게 많은 인파는 처음이었다. 양쪽 강둑을 가득 메운 인파는 족히 50만 명은 넘어 보였다.
드디어 이효상 선생의 사회로 유세가 시작됐다. 나는 조용히 눈을 감고 기어이 해내겠다는 결심을 했다. 이효상 선생은 해방 후 경상북도 학무국장을 거쳐 경북대 교수로 재직하다가 4·19 후에는 참의원 의원을 지냈으며, 5·16 이후 공화당에 입당해 당시엔 공화당 경상북도 도당(道黨)위원장을 맡고 있었다.
연단에 오른 나는, 내가 왜 공화당에 입당하게 됐는지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일단 연설을 시작하자 그때부터는 마음이 오히려 진정되어 말이 술술 나왔다. 더욱이 말이 끝날 때마다 터지는 박수 소리는 묘하게도 날 자극해 박 의장의 투철한 민족 자주의식을 얘기하며, 그렇기 때문에 박 의장을 대통령으로 뽑아야 한다는 대목에서 나는 더욱 목청을 높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