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로부터 호된 야단 (제33회...

특히 나는 그 자리에서 가난한 서민의 가슴을 울리는 연설을 했다.

“……바로 여기 앞에 있는 구두닦이 소년들이 나중에 대통령이 되는 그런 세상이 돼야 합니다. 이젠 서민의 사정을 전혀 모르는 귀족들이 대통령이 되는 시대는 끝나야 합니다…….”

열광적인 환호 속에서 진행된 내 연설은 문자 그대로 대성공이었다. 그래서 나는 대구 시민의 가슴에 이렇게 불을 지핀 이상, 이 선거는 반드시 이기고 말 것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연설을 마치고 내가 단상에서 내려오자, 박 의장이 날 격려해 주었다. “정말 잘했소. 대웅변가요.” 그러면서 박 의장은 내게 수고했다며 담배를 한 대 권해 주었다. 기자 시절 마주 앉아 피운 적이 있었던 나는 무심코 받아 피웠다.

그날 대구 유세는 대성공이었다. 내 뒤를 이어 민관식, 백남억 씨가 찬조 연설을 하고, 마지막으로 박정희 후보도 또박또박 그의 소신을 토해냈다. 나중에 연단을 내려오는 그의 얼굴은 열광하는 군중들의 반응에 몹시 흡족한 표정이었다.

▲ 대통령선거 유세장에서 박정희 후보와 나란히 앉아 있다 / 맨 오른쪽은 예춘호 사무총장

그러나 유세를 마친 후 문안 인사차 서문로(西門路) 본가에 들른 나는 아버지로부터 호된 야단을 맞아야 했다.

“네가 어떻게 감희 국가원수와 함께 맞담배질을 할 수가 있느냐?”

순간 아차 싶었지만, 엎질러진 물이었다. 나는 아버지께 정중하게 사과를 드렸다.

그렇지 않아도 1961년 여름 《동아일보》필화사건으로 내가 감옥에 들어가자 충격을 받고 건강이 나빠지셨음을 알고 있던 나로서는 그날 또 다른 불효를 한 것 같아 몹시 마음이 아팠다.

대륜중학교 교장으로 나에겐 스승이신 한솔 이효상 선생님은 그날 사회를 잘 봐, 이후 국회의장까지 오르게 된다.

유세가 끝나고 그날 저녁 숙소인 수성관광호텔에서 식사를 할 때였다. 박 의장이 살짝 나에게 이효상 선생의 얘기를 꺼내는 것이었다.

“한솔 선생은 그간 말씀만 듣고 오늘 처음 뵈었는데, 사회도 잘 보시고 말씀도 구수하게 잘하시니 내일부터 우세에 모시고 갔으면 좋겠소.”

나는 이 뜻을 한솔 선생에게 전했고, 바로 다음 날 진주 유세 때부터 합류하게 됐다.

그게 계기가 돼, 선거가 끝난 뒤 구성된 6대 국회에서 박 대통령은 내가 부의장으로 추천한 한솔 선생을 의장 자리에 앉혔다. 박 대통령은 당시 의장 후보로 치열한 경쟁관계였던 정구영(鄭求瑛), 윤치영(尹致暎) 선생 두 분 중 어느 누구도 의장으로 지명하기가 곤란했던 것이다.

아무튼 당시 유세는 가는 곳마다 대성공이었다. 진주에 이어 마산과 부산도 대성공이었다. 진주에서는 그날따라 검은 안경을 쓰고 단상에 오른 박정희 후보에게 한 노인이 “안경 좀 벗으시지요. 관상이나 좀 봅시다.”라고 큰소리를 질러 모두들 긴장하기도 했다. 물론 박 의장도 마음이 내키지 않았으나 안경을 벗어 보였다. 그 노인은 박 의장의 연설이 끝나자 “관상을 보니 틀림없이 대통령이 되겠소”라고 해 청중은 웃음을 터뜨렸고, 우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 일행은 마산 유세에 이어 다음 날인 10월 9일에는 부산에서 유세를 했다.

그런데 부산 유세에서 하나의 해프닝이 벌어졌다. 부산에 도착한 날 밤, 우리는 다음 날 유세 전략을 논의하였는데, 이후락 실장이 “대통령 후보가 네 번째 순번으로 연설을 하다 보니 청중들이 지루해하고 분위기가 산만하므로 후보는 세 번째로 하고 찬조연사 한 분이 마무리를 짓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고 제의를 하였다. 그 제의에 나도 동의하였는데 누가 마지막에 할 것인가가 문제였다. 이 실장이 “이효상, 박준규, 이만섭 씨 세 분 중에 한 분이 후보 뒤 순서에 해야겠는데 이만섭 씨가 양보해 주면 좋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이효상 씨는 나의 모교 인사이시고, 박준규 씨는 대구 수창초등학교 선배인지라 내가 양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