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역시 일방적으로 박 후보를 공격한 동아일보의 처사에 대해서는 섭섭한 생각이 있었으나, 동아일보는 내가 몸담았던 곳이고 또 김성열 부장 역시 내가 기자 시절 모시고 있던 분이 아닌가.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나는 곧바로 2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박 의장은 여태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었다.
“의장님 참으시죠. 다 이겨놓은 선거이니 이제 하루만 참으시면 될 일인데 무얼 그러십니까?”
나는 박 의장의 노기를 풀려고 애를 썼다.
“동아일보가 나한테 정말 이럴 수가 있는 거야!”
박 의장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다. 그때 이후락 실장도 허겁지겁 뛰어 올라왔다.
“당신은 어떻게 저따위 친구를 데리고 왔어!”
이후락 실장을 보더니 다시 분노가 폭발한 박 의장이 순식간에 탁자 위에 있던 재떨이를 집어 드는 게 아닌가. 이 실장을 향해 던지려는 찰나 내가 뛰어가 박 의장의 손을 잡았다.
“아이구, 의장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위기일발, 박 의장의 손에 들려 있던 재떨이가 바로 발치에 떨어졌고, 그날의 해프닝은 간신히 나의 중재로 일단락되었다.
힘겹게 박 의장을 말린 나는 어쩔 줄 몰라 하는 이 실장을 데리고 다시 김성렬 부장이 기다리고 있던 1층으로 내려왔다. 그래도 인터뷰 기사는 나와야 했기에 사색이 되어 있던 김성열 부장을 설득해 기사는 나와 이 실장이 부랴부랴 꾸며 만들어낼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박 의장과 악연이 생긴 김성열 정치부장은 박 의장이 대통령으로 취임한 뒤 런던 특파원으로 떠났고, 오랫동안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아무튼 그때 5대 대통령 선거의 특징은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젊은 세력들은 박 의장을 지지했고, 보수층들은 윤 후보를 지지하는 경향을 보였는데, 평소 민주당 구파와 가깝던 동아일보가 반 박정희 전선의 한 가운데 서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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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거 10일을 앞둔 윤보선과 박정희 후보의 치열한 경쟁을 보도한 동아일보 호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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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그해 10월 15일 치러진 투표에서는 겨우 15만 표 차이로 박정희 후보가 간신히 당선됐다. 새벽 3시경까지는 윤보선 후보가 앞서 있었으나 새벽녘에 오히려 목포시(木浦市)와 신안군(新安郡) 등 호남에서 경상도 출신의 박 후보를 지지하는 표가 많이 쏟아져 결국 역전되는 결과를 낳았던 것이다. 지역감정이 심각한 요즘 우리는 그때의 일을 한번쯤 깊이 되새겨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개표 결과는 유권자 총수 1298만 5013명 가운데 1103만 6175명이 투표에 참가해 84.7%의 투표율을 보였으며, 그중 박정희 후보가 469만 2444표로 46.6%의 지지를 얻었다. 개표 당일 박 의장은 경주관광호텔에서 육영수 여사와 함께 초조하게 개표 결과를 지켜보았다.
선거가 끝난 후 박 의장은 만나는 사람들마다 선거 때 내가 가장 고생했다는 얘기를 해주곤 했다.
한편 곧이어 있을 6대 국회의원 선거를 준비 중인 공화당에서는 내게 고향인 대구 중구(中區)에서 출마할 것을 권유해 왔다. 그러나 나는 내 신상 문제는 직접 박 대통령과 의논해야 했다.
“당에서는 대구에서 출마하라고 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차라리 청와대에서 나와 함께 일하면 어떻소?
“저는 성격상 비서실보다는 국회에 가서 대통령을 도와드리면 좋겠습니다.
“그래요? 그러면 어디든지 출마를 하면 내가 전적으로 도와주지.”
“그런데 사실 이번에는 지역구 준비가 되어 있질 않습니다.”
“그러면 전국구로 들어가지.”
박정희 대통령은 처음엔 청와대에서 나와 함께 일하고 싶어 했지만 이렇게 해서 결국 나는 전국구로 국회에 진출하게 됐다. 총 24명 중 17번, 혁명 주체로서 22번인 차지철(車智澈)보다 앞서는 배려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