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사태는 결국 김종필 씨가 외유를 떠나고, 김준연, 서민호 의원이 구속되면서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한·일 회담은 이후 2년 뒤인 1965년 6월 22일 한·일양국의 외상이 참석한 가운데 일본 도쿄에서 서명되었으며, 8월 14일 여야 간 심한 몸싸움 끝에 결국 그 비준안이 통과됐다.
6대 국회 때는 한·일 회담도 중요한 사건이었지만, 내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훗날 역사적 의미를 지니게 된 ‘남북 가족 면회소 설치에 관한 결의안’ 이었다. 내가 이 결의안을 제의한 건은 1964년 10월 9일, 제 18회 도쿄 올림픽에서 북한의 신금단(辛今丹) 선수와 부친 신문준(辛文濬) 씨가 14년 만에 극적으로 상봉하는 장면을 TV로 지켜본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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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쿄올림픽에 출전한 북한의 신금단 선수와 한국전쟁으로 헤어져 남한에 사는 부친 신문준 씨가 14년만에 상봉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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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몇 분간의 제한적인 만남이었지만 그 감격적인 장면을 보곤 헤어진 혈육의 아픔을 느꼈으며, 한편으로는 뜨거운 민족애가 용솟음치는 걸 억제할 수 없었다. 나는 곧 남북으로 흩어져 있는 혈육이 서로 만날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10월 27일 ‘남북 가족 면회소 설치에 관한 결의안’을 국회에 제안하기에 이르렀다. 내용은 판문점에 남북 가족 면회소를 설치해 이산가족이 서로 만날 수 있도록 하며, 상봉자 명단 작성과 주선은 남북의 적심자사가 하되 필요한 경우에는 국제적십자사가 도와준다는 내용의 것이었다.
이는 조국이 분단된 뒤 남북을 통틀어 이산가족 상봉과 남북 교류를 처음 제창한 것이기에 여야가 따로 없었다. 때문에 박준규 의원 등 여당뿐만 아니라 많은 야당 의원들로부터도 호응을 받아 서명 의원이 45명이나 되었다. 그중에는 김영삼 · 김대중 · 박순천 · 조윤형 의원 등도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 문제로 인해 어처구니없게도 정치적 박해를 받게 되었다. 바로 중앙정보부장인 김형욱이 내 제안을 반공법 위반으로 몰아붙인 것이다. 알다시피 김형욱은 내 생각을 이해하기에는 너무 경직된 사고의 소유자였다. 내 주장은 용공(容共)으로 몰렸고, 다음 날부터 태평로 국회의사당 앞에는 유령 단체인 ‘애국청년단’의 이름으로 ‘타도하자 이만섭’이라고 쓴 전단이 수없이 살포됐다. 또한 집으로는 이름을 밝히지 않는 협박 전화가 무수히 걸려왔다.
나는 일련의 이런 사건들이 바로 김형욱이 시켜서 한 일임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서울신문》에 박관수(朴寬洙) 반공연맹 이사장의 이름으로 ‘이만섭의 결의안을 통박함’ 이란 제목의 글이 실렸는데, 박 대통령의 대구사범은 은사였던 박관수 이사장은 당시 내게 전화를 했던 것이다.
“내가 알지도, 쓰지도 않은 글이 오늘 서울신문에 실렸는데 날 원망하지는 말고 이해해 주시오.”
박 선생이 쓰지 않았다면 뻔한 일 아닌가. 김형욱이 누군가에게 시킨 것이다.
아무튼 이 일은 결국 민복기(閔復基) 법무부 장관이 국회로 나와 증언할 정도까지 비화됐다. 민복기 법무부 장관은 국회 본회의에서 야당 의원들의 질문에 “이 결의안은 반공법에 위반되는 것입니다. 다만 이만섭 의원이 국회의원으로서 원내 활동 중이기 때문에 면책될 뿐입니다”라고 답변했다.
난 의원석에서 그냥 듣고 있을 수 없어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질렀다.
“여보, 당신 같은 사람이 어떻게 법무장관을 한단 말이오? 자유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우리가 인도적인 문제에 앞장서야 될 것 아니요. 친부모ㆍ형제를 만나게 해주자는 게 어떻게 반공법 위반이란 말이요?”
이런 내 말에 여당석은 조용했으나 오히려 야당 의원 쪽에서 “옳소”하며 거드는 소리가 높았다. 그만큼 당시 분위기는 반공이나 용공이라는 단어만 나오면 모두들 몸을 사릴 정도였다.
결국 김형욱은 내게 그 결의안을 철회하지 않으면 날 잡아넣겠다고 협박하기에 이르렀다. 참다못한 난 박 대통령을 만나 결의안을 제출하게 된 동기와 내용, 그리고 김형욱으로부터 압력을 받고 있음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했다. 내 얘기를 다 듣고 난 박 대통령이 입을 열었다.
“김형욱 그 친구 돌았구먼……. 머리가 나빠.”
결국 나는 박 대통령으로부터 내 주장의 정당성을 인정받은 셈이다. 나는 박 대통령의 이 말을 일부러 김형욱의 귀에 들어가도록 정가(政街)에 퍼뜨렸다. 그러자 그 후로 김형욱의 압력이 상당히 수그러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