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화 대신 고무신을 신고, 삶은 고구마로 도시락을 대신하던 배고픈 시절, 그나마 내가 뜨거운 가슴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모교의 훌륭한 선생님들 때문이었다. 난 더욱 열심히 공부했다. 그 덕에 해방 직후인 2학년 때 131명 중 13등이었던 내 성적은 3학년 때부터 뛰어, 3학년 때 8등, 4학년 때 4등, 5학년 때는 3등이었고, 졸업반인 6학년 때는 2등을 차지했다.
자랑 같지만, 사실 당시 교내에서뿐만 아니라 대구 시내에서는 이만섭이라면 모르는 학생이 없을 정도였다. 공부도 잘했지만 영어 웅변대회에 나가서도 1등이었고, 게다가 대륜중학교의 농구선수로 수영선수로, 또한 응원단장으로 활약해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했기 때문이다. 여담이지만 내가 7대 국회에 출마했을 때 대구의 여성 유권자들이 유난히 나를 많이 지지해준 것도 나중에 알고 보니 모두들 대류중학교 시절의 나를 기억해 찍어주었다는 것이었다. 그만큼 당시의 나는 대구 학생사회에서는 유명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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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륜중학교 시절 응원단장으로 활약 / 뒷줄 왼쪽에서 4번째가 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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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륜중학교 시절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는 체조를 지도했던 김재규 선생과의 만남을 꼽을 수 있다. 1946년 가을이니, 내가 3학년 때로 기억되다. 마침 ‘경북체전’이 있었는데, 당시 김천중학교 체육교사였던 김재규 선생은 온동을 잘 하는 대륜중학교에 관심이 쑐렸던 모양이었다. 체전이 끝난 바로 다음 날 김준기 교장선생님께 찾아가 이력서를 냈는데 바로 그 자리에서 교장선생님으로부터 허락을 받아 우리 학교로 옮기게 되었다.
인생에서 중요한 만남을 얼마나 있을까. 김재규 선생님은 육사 2기 출신으로 박정희 대통령과 동기였으며, 임관 직후인 소위 시절, 군과 경찰 간의, 충돌사건이 발생했을 때 일직 사관으로 책임을 지고 군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그 후 김천중학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대륜중학교로 옮겨 체조를 담당했던 것이다. 젊고 정열적이었던 그 선생님은 농구 선수이며 응원단장이었던 나를 특별히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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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형 직전 유언을 남기고 있는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 / 김재규 선생은 자상하셨고 특히 나를 많이 사랑해주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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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 후 박정희 대통령과 김재규 장군, 그리고 당시 6-7대 국회의원이었던 나, 이렇게 세 사람이 청와대에서 자주 저녁을 함께 하게 된 인연도 뒤돌아보면 내 중학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그때만 해도 박정희 대통령은 고향 후배이며 군 동기였던 김재규 장군을 누구보다 신임했고, 군에서나 정부에서나 두루 요직에 앉혔다.
중학교 동창으로는 조기섭(전 대구대 총장), 금진호(전 상공부 장관), 신현수(전 감사원 감사위원), 그리고 오랫동안 대구 서문시장 번영회장을 지냈던 강신달 등이 있다. 특히 5학년 때 진주농업에서 편입해와서 대학까지 동창이 된 조용수 전 <민족일보> 사장도 있다. 조용수 사장은 5‧16후 군사정부에 의해 조총련 자금으로 신문사를 세웠다는 혐의를 받아 억울하게 사형당하고 말았다.
사실 조용수는 조총련이 아니라 일찍이 거류민단 지방본부에서 활동했으며 당시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이 자신의 사상에 대한 의혹을 씻기위해 <민족일보> 사건을 군재에 회부, 조용수를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게 오늘날의 정설이다. 이 사건에 대해서는 조용수의 동생과 인권변호사인 강신옥 씨(전 국회의원)가 진상을 밝히기 위해 지금도 애 쓰고 있다.
당시 군법회의의 민간 배석 판사는 한나라당의 대통령 후보였던 이회창 씨는데, 이 문제를 송석찬 의원이 2001년 2월 15일과 2002년 2월 18일 두 차례에 걸쳐 국회 본회의 대정부 질문에서 언급하여 여야 간에 소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