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대 국회에서 나는 남북문제뿐만 아니라 민족의 권익 보호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소신을 갖고 앞장섰다. 그래서 나는 1964년 2월 8일 ‘한·미 행정협정 체결 촉구에 관한 건의안’도 국회에 제안했던 것이다.
당시에 한·미 행정협정이 주한(駐韓) 미군의 한국 국민에 대한 횡포는 도가 지나쳤던 게 사실이었다. 물론 한국전쟁 때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 피를 흘린 점은 인정하나 전쟁이 끝난 지 10여 년이 지났는데, 당시 미군은 계속 점령국처럼 행동하고 있었던 게 문제였다.
예를 들면 당시 우리나라는 끼니를 거를 정도로 못살 때라 미군부대 근처에는 항상 쓰레기통을 뒤지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만큼 못살 때였으니 오죽하랴. 배고픔을 참지 못한 어린 소년들이 미군부대로 숨어 들어가 먹다 버린 깡통을 찾는 중에 미군들의 총에 맞아 죽는 사건이 빈발했다. 물론 미군 측의 얘기를 빌리면 한 달에 그렇게 숨어 들어와 훔쳐가는 군수 물자가 7만 달러어치나 된다고 했다. 때문에 자신들로서도 어쩔 수 없는 자구책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달랐다. 훔치려고 침입한 것과 배가 고파 쓰레기장을 뒤지려 숨어든 것은 엄연히 구별돼야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밤중도 아니고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대낮에 소년들에게까지 위협사격이 아닌 조준 사격으로 목숨을 빼앗는 건 묵과할 수 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엄연한 독립 국가가 아닌가.
내 건의안에는 민주공화당의 백남억, 민관식, 장경순, 김용태(金龍泰), 오상직(吳相稙), 양순직(楊淳稙), 김창근(金昌槿), 이병옥(李炳玉), 박규상(朴奎祥), 자유민주당의 김도연, 민정당의 이충환(李忠煥), 이중재(李重載), 국민의 당 이상철(李相澈)의원 등 13인이 찬성, 서명했으며 이 건의안은 그해 2월 18일 제40회 임시국회에서 여야 만장일치로 통과돼 정부에 이송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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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와대 리셉션에서 방한한 미 러스크 국무장관과 악수하고 있다 / 가운데는 박정희 대통령, 왼쪽은 김성곤 의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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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주둔군 지위 협정 체결 촉구에 관한 건의안’ 제안 설명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지난 2월 2일 동두천에서 서영자라는 이 나라의 가난한 부인이 미군 병사의 총탄에 의해 쓰러져 죽은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잇달아 2월 6일에는 안재섭 · 김태영이란 두 어린 소년들 역시 미군의 총탄에 맞아, 안재섭 군은 죽고 김태영 군은 중상을 입었습니다……. 이러한 비인도적이고 잔혹한 미군의 행동에 대해 온 국민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한 달에 7만 달러어치에 달하는 군수 물자가 한국 사람에 의해 도난당하고 있다는 하우즈 사령관의 말이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지만 오죽하면 굶어 죽기보다는 미군 병영에 침입해서 깡통이라도 주워 생명을 유지하려 했겠습니까……. 그러나 최근 미군의 행위는 한국 사람이 절도 행위를 했기에 일어났다고 볼 수만은 없습니다…….
지난 1월 20일 용산의 ‘은정다방’에서는 미군 병사가 한국인 다방 아가씨를 희롱하는 것을 정태섭이라는 청년이 말리다 미군 병사가 휘두른 칼에 찔리기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정보를 듣고 달려온 순경조차 미군 병사의 칼부림에 찔렸습니다. 이게 다 한국 사람이 절도행위를 했기 때문에 일어난 사건입니까……. 본 의원은 이건 근본적으로 일부 미군 병사들의 약소민족을 경시하는 사고가 일어났다고 확신하는 바입니다. 한국의 어린 소년들이나 직업이 없는 여성들이 미군부대 가까이 들어가 깡통을 줍고 하는 것은 한국전쟁으로 국민들의 생활이 너무나 비참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차마 총까지 쏘아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 대한민국이 독립 국가일진대 미국에 대해 한·미 행정협정을 조속히 체결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지극히 정당한 권리라고 본 의원은 생각하는 바입니다. 패전국인 일본만 하더라도 1952년에 행정협정을 맺은 바 있습니다……. 버거 주한 미 대사도 며칠 전 기자회견에서 한·미 행정협정을 조속히 체결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습니다……. 6·25 동란 직후에 대전에서 맺어진 소위 ‘대전 협정’ 으로 형사재판 관할권의 거의 전부가 미국군에 속해 있는 상태입니다. 때문에 하루빨리 더 이상의 불상사를 막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공정한 사후 처리를 위해서라도 한·미 행정협정은 서둘러 체결돼야 할 것입니다.”
결국 내 건의안이 바탕이 되어 2년 뒤인 1966년 7월 9일 ‘대한민국과 미합중국 간의 상호방위조약 제4조에 의한 시설과 구역 및 대한민국에서의 미국 군대의 지위에 관한 협정’에 양국 외무장관이 정식 서명하게 됐던 것이다.
그리고 한·미 행정협정 비준 동의안은 1966년 10월 7일 제23차 본회의에 상정되어 4일간에 걸쳐 여야 간의 질의우 토론을 벌인 뒤 10월 14일 제29차 본회의에서 재석의원 94명 중 가 67표, 부 23표로 통과되었다.
이어 1967년 2월 9일부터 발효된 이 협정은 그 후 불평등한 조항의 개정이 몇 번 있었으나 미비점은 앞으로도 계속 시정돼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