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아주 진지한 얼굴의 김두한 의원은 양손에 준비해 온 통을 쳐들며 말을 이었다.
“이것은 재벌이 도적질해 먹은 것을 합리화시켜주는 내각을 규탄하는 국민의 사카린이올시다.”
모든 의원들은 사카린이란 말에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때 갑자기 돌발 사태가 벌어졌다.
“똥이나 처먹어. 이 새끼들아! 골고루 맛을 봐야 알지.”
그가 갑자기 그 통을 국무 위원석으로 집어던진 것이다. 그러자 의사당 내에는 도저히 코로 숨 쉴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김두한 의원이 준비해 온 것은 바로 인분이었던 것이다. 정일권 총리와 장기영 부총리, 김정렴(金正濂) 재무장관 등 국무위원들은 순식간에 오물을 뒤집어쓰고 말았다.
이것이 그 유명한 ‘국회 오물 투척 사건’ 이다. 극회는 아수라장이 되고, 곧 정회가 선포됐다.
그날 바로 정일권 내각은 이에 항의해 일괄 사표를 제출했고, 다음 날 박정희 대통령은 김두한 의원 사건을 개탄하는 특별 공한을 국회에 보내기에 이르렀다.
국민들은 모두 속 시원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국회에서는 신성한 국회의사당 안에서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는 여야 의원들의 분위기 때문에 결국 김두한 의원은 제명 처리됨과 동시에 구속되고 말았다. 그때 표결 결과는 여당의 전원 제명에 찬성했으나 야당은 일부 기권, 일부 반대로 나타났다. 김두한 의원이 서두에 말한 ‘다른 사람이 할 줄 모르는 행동은 잘할 수 있다’는 것은 바로 이 분뇨 투척이었던 셈이다.
아무튼 김두한 의원의 오물 투척으로 더욱 국민의 관심을 끌게 된 ‘한비사건’ 으로 민복기 법무장관과 김정렴 재무장관이 해임되는 등 정치권에도 태풍이 불었고, 삼성 측은 이병철 씨의 둘째아들인 이창희(李昌熙) 씨가 구속되고 한비 주식의 51%를 정부에 헌납해야 했다.
‘주식 51% 헌납’에 대해서는 나중에 박 대통령으로부터 내가 직접 들은 얘기인데 처음에는 장기영 부총리가 한비주식 51%가 아닌 이병철 씨 개인 지분의 51%만 헌납하겠다는 결재서류를 갖고 왔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박 대통령은 노발대발했다.
“도대체 나를 속이려는 건가, 약속 위반이 아닌가?”
결국 처음 약속대로 한비 주식의 51%는 정부에 헌납되었고, 이로 인해 장기영 부총리는 대통령의 신임을 잃고 그 자리에서 물러났으며, 그 후 한비는 국유화됐으나 국영기업 민영화 정책에 의해 다시 삼성으로 돌아가게 됐다.
이처럼 1966년 당시만 해도 박 대통령은 재벌의 횡포와 부정을 아주 싫어했으며, 그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는 등 꼿꼿한 자세였다. 하지만 그 후 장기 집권의 길로 들어서면서 이런 자세도 점차 변해 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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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김두한 역을 맡았던 탤런트 김영철과 김환경 작가와 함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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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한 의원의 오물 투척 사건은 그 직후 김종필 씨가 관련되어 있다는 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 사건 직후 나는 박정희 대통령의 저녁식사 초대로 청와대에 간 적이 있었다. 가보니 그 자리에는 정일권 국무총리, 장기영 부총리, 엄민영(嚴敏永) 내무장관, 이후락 비서실장,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이 대통령과 함께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느닷없이 김형욱 부장이 이런 얘기를 하는 게 아닌가.
“각하, 이번 김두한이 오물을 뿌린 것은 김종필이가 시켜서 한 짓이 틀림없습니다.”
“그럴 리가 있나…….”
워낙 엉뚱한 얘기였기에 박 대통령은 갸우뚱하며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김형욱은 더욱 강조했다.
“틀림없습니다. 사카린 밀수 사건을 처음 보도한 것이 《경향신문》인데, 그건 JP 계열인 김용태 의원이 정보를 흘려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김두한이 구속돼 형무소에 갈 때도 역시 JP 계열인 김택수(金澤壽)가 5만 원짜리 수표를 건네주었습니다. 또 그날 연설 내용을 보더라도 이후락 부장과 장기영 부총리는 심하게 공격하면서도 김종필은 동정하는 투였습니다.”
이번에는 이후락 실장을 비롯해 옆자리의 모든 사람들이 한마디씩 거들며 김형욱의 말에 공감을 표했다. 나는 속으로 설마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으나, 분위기가 워낙 한쪽으로 쏠려 그 자리에서는 듣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박 대통령이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김 부장이 김두한이를 끝까지 조사하여 규명해요.”
나는 속으로 이게 아닌데 하고 생각했다. ‘이런 사람들이 대통령 주위에 있으니 결국 대통령의 판단이 흐리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나는 JP계는 아니지만 대통령에게 직언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나는 저녁식사가 끝나고 한 사람씩 대통령과 악수를 하고 나갈 때 일부러 맨 마지막에 서서 차례를 기다렸다. 그리곤 나가면서 대통령에게 말했다.
“각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