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철 씨 측의 집요한 방해 속에...

대통령은 내 얼굴을 보더니 날 식당 옆의 서재로 데려갔다. 나는 자리에 앉자마자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각하, 오늘 이 말을 하지 않으면 돌아가도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아 말씀드립니다. 제가 공화당에 들어온 것은 대통령 한 분만 믿고 들어온 것입니다. 각하께서도 알다시피 JP와 저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따라서 JP를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저녁 나온 이야기는 사실과 다릅니다. 《경향신문》에 기사가 난 것은 JP 계열이 일부러 흘린 게 아니라 《경향신문》울산지국에서 기사를 보내온 것이고, 김택수 의원이 돈을 건네준 것은 건설위원장으로서 같은 위원회에 속해 있는 김두한 의원에게 사식이라도 사 먹으라고 인간적으로 준 것입니다. 각하도 알다시피 김택수 의원은 본래 기분을 잘 내는 사람 아닙니까? 또 연설 내용 얘기도 나왔는데 김두한 의원은 누구한테 사주 받아 연설할 인물이 아닙니다.”

내 말에 박 대통령은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묵묵부답이었다. 나는 재차 강조했다.

“제 얘기가 진실입니다. 몇 사람이 짜고 사실과 다르게 얘기하는 걸 보고 그냥 있을 수 없어 이렇게 감히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제서야 박 대통령의 입이 떨어졌다.
“알았소…….”

분명히 박 대통령은 내 말에 일리가 있다는 걸 집작했지만, 이미 김형욱 부장에게 지시했기에 바로 번복하고 싶지 않아 내버려두는 것 같았다. 결국 김형욱의 잘못된 보고로 김두한 의원은 중앙정보부로 끌려가 말 못할 고초를 겪게 됐다.

몇 달 뒤 을지로 수표동에 있는, 당시 우리나라 최초로 전자오르간을 연주하는 것으로 유명했던 ‘화정’이라는 불고기집 3층에 가족과 함께 신사를 하러 들렀다가 우연히 김두한 의원 부부와 마주치게 됐는데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몸이 수척해진 건 그렇다 쳐도, 그 옛날 당당하던 기개가 완전히 사라져 폐인이 되다시피 했던 것이다. 얼마나 고문을 당했던지 내 눈빛조차 피할 정도였고, 입이 제대로 열리지 않아 말도 또렷하게 못하는 게 아닌가. 그 순간 마음이 아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러나 김두한 의원은 그래도 고집이 있어 쇠약한 몸으로 1967년 6월 8일 실시된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 수원(水原)·화성(華城)에서 신민당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의 이병희(李秉禧) 후보에게 고배를 마셨고 그 후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아무튼 안타까운 일이었다. 더 큰일을 할 수 있었던 사람이었는데, 정의가 폭력에 의해 짓밟힌 당시를 생각하면 지금도 울분을 억누를 길이 없다.

1967년은 6대 대통령 선거와 7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는 해였다. 전국구로 3년여 의정 생활을 한 나는, 이번에는 다소 자신감이 생겼다. 때문에 내 고향인 대구 중구에서 출마하기로 결심했다. 어차피 의정 활동을 계속하려면 지역구를 가져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지역구에서 선거를 치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 7대 총선 유세장에서 김종필 씨와 함께

마침 한 달여 전인 5월 3일에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는 박정희 대통령이 윤보선 후보를 110만 표차로 누르고 당선됐기에 자신감도 생겼다. 물론 이때도 5대 대통령 선거 때처럼 대구 지역 유세에서는 내가 연사로 나서서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내 생애 처음 치르는 국회의원 선거는 처음부터 큰 어려움에 부딪혔다. 난 불과 반년 전 한비사건 때 이병철 씨를 구속하라고 용기 있게 말한 죄(?)로, 이병철 씨 측의 집요한 방해 공작을 받아야 했다.

물론 나는 고향인 대구 중구에서 공화당 공천을 받아 출마했는데 선거 초반부터 방해를 받기 시작했다. 당시 이병철 씨가 소유하고 있던 《J일보》의 대구 판은 연일 나를 떨어뜨리기 위해 사실과 전혀 다른 기사를 보도했던 것이다. 예를 들면 내가 연설하는 사진과 양조장 앞에 술통을 잔뜩 실은 자전거가 서 있는 사진을 교묘하게 합성한 것 같은 사진을 싣고, 그 사진 설명에는 “유세 후 유권자들에게 막걸리를 먹여 표를 구걸한다”고 써놓기도 했다.

더욱 격분한 일은 대구에 있는 이병철 씨 소유 제일모직 공장의 종업원들까지 총동원한 점이다. 투표 직전 그 공장의 노무과장 이 모 씨가 운동장에 종업원들을 집합시켜 놓고 “이만섭이 당선되면 우리 공장은 문을 닫아야 한다. 그러니 중구에 사는 친척, 친구들에게 이야기해서 낙선되도록 하라”며 노골적으로 지시했고, 며칠간 공장 문을 닫기까지 하며 나에 대한 낙선 운동을 했던 것이다.

특히 나의 경쟁 상대에게는 막대한 선거 자금이 제공됐다는 이야기가 대구 시내에 공공연하게 나돌기도 했다. 울화가 치밀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나는 정면 돌파하기로 하고 유세 때마다 내 소신을 분명히 말했다.

“여러분! 이번 선거는 밀수 재벌이 이기느냐, 아니면 정의가 이기느냐 하는 중대한 싸움입니다. 나는 대구 시민의 정의감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