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때 피눈물을 흘리면서 유세를 하고 다녔다. 당시 이병철 씨의 방해 공작이 어느 정도였는가 하면 하루는 밤에 그 신문의 대구 주재 허모 기자(그 후 교통사고로 사망)가 술을 마시곤 몰래 찾아와 하소연하기도 했다.
“선배님, 절 원망하지 마십시오. 제가 하는 게 아니라 회장님이 직접 지휘하고 큰아들인 이맹희(李孟熙) 씨가 대구에 내려와 진두지휘하니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이해해 주십시오.”
그건 사실로 밝혀졌다. 세월이 흘러 후일 이병철 회장과 소원해진 장남 이맹희 씨와 우연히 대구에서 서울까지 가는 새마을호 기차 안에서 만난 적이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이맹희 씨가 그대로 나에게 실토한 바 있으며, 이맹희 씨의 회고록에도 이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나의 수창초등학교 1년 후배이면서 당시 《중앙일보》부사장이었던 이맹희 씨는 1993년에 발간한 그의 회고록 《묻어둔 이야기》에서 아버지인 이병철 씨로부터 나를 꼭 낙선시키라는 지시를 받았으며, 자신은 이를 위해 제일모직 임원들에게 특별지시를 했고, 《중앙일보》취재기자들에게 취재비를 더 주는 등 갖가지 조치를 다 취했다고 털어놓았다.
이렇게 이병철 씨가 집요하게 방해했지만, 결국 난 아슬아슬하게 당선됐다. 난 2만 4562표를 획득, 신민당의 이대우(李大雨) 후보보다 3148표를 더 얻었다.
선거 도중 나는 참다못해 그 《J일보》를 고발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당선된 뒤 그 신문사에 있던 나와 가까운 후배 기자들뿐만 아니라 여러 언론인들이 “선거에 이겼으니 아량을 보이는 게 좋지 않으냐? 정치인이 신문과 싸우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라고 권유해 내가 더 이상 문제를 삼지 않아 그 사건은 그대로 넘어가고 말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의 확고한 소신은 재벌과 언론은 반드시 분리되어야 한다는 이다. 언론은 결코 특정 재벌에 이용되어서는 안 되며, 사회(社會)의 공기(公器)로서 공정보도를 할 때에만 그 정당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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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제7대 국회의원 공천장을 받고 있다 / 가운데는 길재호 사무총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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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대 국회의원 선거는 공화당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났다. 모두 130석을 얻어 겨우 48석을 얻은 신민당에 참패를 안겨주었다. 중요한 건 개헌선인 117석을 13석이나 넘어섰다는 데 있었다.
선거 결과가 이렇게 되자 신민당은 즉시 선거 무효를 선언하고는 재선거를 요구하며 국회 등원조차 거부했다. 그러자 학생들까지 가세해 전국의 대학에서 ‘6·8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데모를 벌이기 시작했고, 결국 6월 15일에 28개 대학과 57개 고등학교에 휴교령이 내려졌다. 사태가 이렇게 번지자 집권 여당에서는 말썽의 소지가 있던 공화당 당선자 3명을 제명하는 등 민심 수습에 나섰다.
그러나 야당이 계속 등원을 거부함으로써 결국 7대 국회는 공화당 의원들만 참석한 가운데 7월 10일 개원돼 국회의장에 이효상 씨, 부의장에 장경순 씨를 다시 선출하고는 휴회하고 말았다.
냉각된 정국은 결국 선거 169일 만인 11월 29일 신민당이 등원을 결정함으로써 수습됐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사회 각 분야에서는 문제가 일기 시작했다. 문제는 박 대통령이 마지막 두 번째 임기를 맞아 권력의 누수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때문에 공직자들의 안일한 자세가 눈에 띄었고, 당내에서도 은근히 3선 개헌 추진파와 반대파 간에 미묘한 갈등이 일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대외적으로도 월남 전쟁에 장기 국면으로 접어들어 파월(派越) 한국군에 대한 관심과 걱정도 부쩍 높아질 때였다.
그런 상황에서 1968년으로 들어서자마자 큰 사건이 발생했다. 1월 21일 김신조 등 북한의 무장공비 31명이 청와대 뒷산까지 쳐들어와 총격전을 벌이는 사건이 터졌는가 하면, 이틀 뒤엔 동해에서 작전 중이던 미국 함정 푸에블로호(號)가 북한에 피랍돼 원산만으로 끌려가는 등 대형 사건들이 잇달아 발생한 것이다.
이중 특히 김신조 사건은 심각한 것이었다. 공비 31명은 우리 군복까지 입고 청와대에서 불과 수백 미터 떨어진 청운동·홍제동까지 내려와 총격전을 벌였다. 지나가던 시내버스에 수류탄을 던지고 인근 주민에게 무차별 난사를 해 민간인 5명을 살상했을 뿐 아니라 그들을 불심검문하던 최규식(崔圭植) 종로 경찰서장마저 사살했다.
김신조를 제외한 30여 명의 공비들이 소탕되었지만 국민들의 불안은 대단했다. 모두가 정부 고위 공직자들의 무사 안일한 자세 탓이라고 일제히 비난했다. 국회도 가만있을 수가 없어 1월 31일 제63회 임시국회가 열렸고, 정일권 총리를 비롯한 관계 국무위원을 출석시킨 가운데 ‘1·21사태’와 ‘푸에블로호 사건’을 추궁하게 됐다. 2월 2일의 대정부 질문에서 신민당에서는 유진오兪鎭午 총재가 직접 나섰고, 여당에서는 내가 나섰다.
“먼저 이번 사태로 희생된 군경(軍警) 유가족들에게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하는 바입니다……. 이번 사건은 고위 공직자들의 무사안일이 빚은 인재(人災)입니다. 그러므로 관계 국무위원은 마땅히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나야 합니다. 특히 본 의원이 듣기로는 이런 엄청난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 동안에도 일부 장관들은 골프를 치고 있었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한심할 뿐입니다. 골프를 친 장관은 앞으로 절대 골프를 치지 않겠다는 서약을 할 정도의 양심이라도 가져야 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