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무엇보다도 중앙정보부의 전횡에 초점을 맞췄다.
“특히 본 의원은 공비들이 가는 곳마다 군 기관원을 사칭했고, 그때마다 별 검문검색 없이 쉽게 통과됐다는 데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동안 우리나라의 정보기관에 있는 사람들이 권력을 남용해 왔기에 ‘CIC 대원’이나 ‘CIA 요원’이라 하면 아무도 손을 대지 못했던 잘못된 사회적 풍조를 공비들이 이용한 것입니다……. 때문에 앞으로 중앙정보부는 정치 사찰을 즉각 중지하고, 대공對共 사찰에만 전념해야만 합니다…….
혹 중앙정보부가 딴 일을 하고 있다는 걸 정 총리는 알고 있습니까? 장관들에게 직접 물어보시면 알게 될 겁니다. 장관들이 사석에서 본 의원에게 하는 말이 있습니다. 제발 중앙정보부 사람들이 우리 행정부에 와서 감시를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들은 중앙정보부에 있다는 신분을 내세워 장관의 사생활까지 캐고 장관의 서랍까지 뒤지는 일이 있다고 하소연합니다. 심지어 어떤 요원은 장관의 약점을 잡아 이 청탁에 이용한다고도 합니다.
중앙정보부는 사생활이나 들추고 정치 사찰이나 할 시간이 있으면 그 시간에 대공 사찰에 더 열중하여 이번 사건과 같은 불상사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해줄 것을 본 의원은 당부하는 바입니다.”
그날 나는 여당 의원으로선 하기 힘든 이야기를 소신껏 서슴없이 말 했다. 그리고 나중에 들었지만, 내 말에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이 몹시 불쾌해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무엇보다 중요한 건 국가 안보였으므로, 나는 소신대로 말했을 뿐 누가 뭐라 해도 상관치 않았다. 그건 지금도 역시 마찬가지다.
1968년 2월 1일엔 우리나라 산업의 젖줄이 된 경부고속도로의 기공식이 있었다. 그러나 재원이 문제였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의 총비용은 당시 돈으로 330억 원이나 되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석유류 세법 개정을 통해 휘발유 값을 100% 인상하여 그 상당 부분을 고속도로 건설에 충당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리하여 석유류 세법 개정 법안이 제63회 임시 국회 회기를 하루 남긴 2월 28일, 여당에 의해 국회에 제출되었으나 법안 통과는 야당의 반대로 큰 진통을 겪었다.
회기 마지막 날인 2월 29일 오후 4시 40분, 국회 본회의에 석유류 세법 개정 법안이 상정되었다. 그러나 이때부터 야당의원들은 본격적인 지연전술을 쓰기 시작했다. 신민당의 원내총무인 김영삼 의원과 김수한(金守漢) 의원의 의사진행 발언에 이어 송원영(宋元英) 의원은 1시간 25분 동안 단상을 점거한 채 연설을 강행했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이효상 극회의장은 오후 6시 40분, 정회를 선언했으며 이후 여야 총무단이 회담을 열었지만 타결 책은 나오지 않은 채 야당의원들은 단상을 점검하고 농성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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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화당의 일방적인 국회 운영에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 가운데는 이효상 국회의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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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9시 30분 이후락 청와대 비서실장이 국회를 방문, 이효상 의장을 포함한 공화당 간부들과 대책을 협의했으나 별 뾰족한 방법을 찾지 못했다. 이후락 실장이 다녀간 뒤인 밤 10시 30분경, 박대통령의 부름을 받고 이효상 국회의장, 김종필 당의장, 길재호(吉在號) 사무총장, 김진만 원내총무 등과 함께 나는 청와대에 들어갔다.
청와대 집무실에는 박 대통령이 담배를 피우며 무거운 표정으로 소파에 앉아 있었다. 박 대통령을 중심으로 오른쪽으로는 이효상 국회의장과 총무단이 앉고, 왼쪽으로는 김종필 당의장 등 공화당 간무들이 앉았다. 내 자리는 오른쪽 끝이었다.
김종필 당의장이 굳은 표정으로 담배를 피우고 있던 박정희 대통령에게 말을 꺼냈다.
“각하, 야당이 농성을 하고 있어 도저히 정상적인 통과는 불가능합니다. 다음 회기에 통과시키도록 하겠습니다.”
김종필 당의장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박 대통령이 소리를 지르며 재떨이를 들었다.
“무슨 소리야! 내가 이 나라 경제 발전을 위해 경부고속도로를 만드는데, 뭐? 야당이 반대한다고 국회에서 통과를 못 시켜? 뭐 이런 일이 다 있어!”
박 대통령이 던진 재떨이는 김종필 당의장 쪽으로 날아갔다. 김종필 당의장은 말할 것도 없고 이효상 의장을 비롯해 자리에 함께 있던 우리 모두는 혼비백산 하얗게 질리고 말았다.
분이 안 풀인 박 대통령은 다시 한 번 고함을 질렀다.
“내가 이 나라 경제를 살리려고 산업도로를 만드는데, 야당이 반대한다고 여당이 그걸 하나 통과 못 시켜? 여당은 뭐 하는 것들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