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을 시사하는 듯한 대통령의 연두 기자회견은 즉각 야당의 반발을 일으켰다.
“나는 당의 운명을 걸고 대통령 3선 개헌을 저지할 것입니다.”
신민당의 유진오(兪鎭午) 총재가 투쟁을 선언하는가 하면, 이민우(李敏雨) 의원 등이 박 대통령에게 개헌 여부를 묻는 질의서를 보내는 등 야당의 반대 투쟁이 다각도로 전개돼 파문이 커져갔다. 그러자 한 달 뒤 박 대통령은 한발 물러섰다.
“본인 임기 중에는 현행 헌법을 고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며, 지금은 경제 건설이 더욱 시급하니 앞으로는 개헌 문제를 더 이상 거론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이런 언명에도 개헌 논의는 결코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다. 불과 보름 뒤 윤치영 의장서리가 또 다시 거론한 것이다.
“정세에 따라서는 개헌도 가능하지 않겠는가.”
당시 돌아가는 형편을 보면 당·정간에 이미 조율이 있었던 것 같았다. 여론의 향배를 보면서 한쪽에서는 거부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고, 다른 한쪽에선 찬성하는 이른바 양동작전을 구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개헌 절대 반대’였다. 이유는 그것은 정도(正道)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나처럼 순수하게 반대하는 일부 의원들과 이른바 JP 계열이 개헌 반대세력이었다. 이렇게 당내가 양분되어 다소 어수선한 가운데 3월 6일에 의원 총회가 있었다. 이날의 모임은 처음에는 개헌을 논의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그러나 윤치영 의장이 인사말에서 슬쩍 개헌 문제를 비치면서 서서히 토론이 벌어졌다. 물론 개헌 문제가 공식 회의에서 논의되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모두들 마음을 열지 않은 채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러나 평소에 직선적이며 바른말 잘하던 의원들은 이날도 개헌을 반대하는 의견을 서슴지 않았다. 양순직(楊淳稙), 박종태(朴鍾泰), 신윤창(申允昌), 정간용(鄭幹鎔) 의원 등이 주로 반대 의견을 얘기했으며, 나도 서슴없이 다음과 같이 내 의견을 밝혔다.
“박 대통령의 조국 근대화 업적은 국민들도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민 어느 누고도 개헌을 하면서까지 정권을 연장하려는 것은 원치 않습니다. 지금 이 헌법은 우리 손으로 만든 것입니다. 우린 지켜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결국 그날 의원총회는 격론을 벌이다 끝나고 말았다. 그러던 중 개헌과 관련된 ‘4·8 항명’ 파동이 벌어졌다. 4월 초 신민당은 국회에서의 폭언 등을 이유로 권오병 문교부장관 해임 건의안을 낸 것이다.
사실 나를 비롯한 많은 공화당 의원들도 권오병 장관에 대해 문제가 많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지나치게 권위주의적인 데다가 국회의원을 공공연히 무시하여 여야 의원들로부터 평판이 좋지 않았다. 그렇기에 김천수(金天洙) 의원(경북 상주) 등 초선의원 몇 명은 내게 권오병 장관 불신임안을 통과시켜야 되지 않겠느냐고 의사를 묻기에, 나는 반드시 통과돼야 한다고 태도를 분명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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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대 국회에 막 등원했던 시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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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JP 라인이 생각하는 통과 이유는 다소 달랐다.
“이번 기회에 권 장관 불신임안을 통과시켜 버려야만 박 대통령도 국회의원들을 맘대로 할 수 없다고 느껴 3선 개헌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무조건 권 장관 물신임안을 통과시켜 우리의 힘을 보여줘야 한다.”
공기가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게 된 것을 눈치 챈 박 대통령은 김진만(金振晩) 원내 총무를 급히 불렀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야당에서 내놓은 해임 건의안은 부결시키시오.”
그러나 워낙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당은 4월 7일 당론 조정을 위해 의원총회를 열었다. 부결시키기 위해 고심한 당은 그날 의총에 권오병 장관을 참석시켜 사과 발언까지 하도록 했다.
“제가 여러 가지로 의원님들의 의견을 존중치 못해 대단히 죄송스럽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평소 거만하던 권오병 장관은 때가 때인지라 허리를 90도 굽혀 사과했다. 김진만 총무는 때를 놓치지 않고 입을 열었다.
“지금 권 장관께서 사과도 하셨고, 대통령 각하께서도 해임 건의안은 무슨 일이 있어도 부결시키라는 엄명을 내리셨으니 내일은 행동 통일을 해서 꼭 부결시킵시다.”
김진만 총무의 말에 일부는 “이의 없소”하며 맞장구를 쳐주었으나, 대부분의 의원들은 가타부타 말이 없이 그저 침묵을 지키며 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나는 정정당당하게 내 태도를 밝히는 게 옳은 일이라고 생각돼 발언 신청을 하곤 자리에서 일어섰다.
“난 가표(可票)를 던지겠습니다. 문교 행정은 덕으로 해야 하는데, 권 장관은 힘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육자들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난번 사학 특감 때 야당 의원들에게 보인 태도는 여야를 떠나 국회를 전적으로 무시하는 행동으로 이를 용납할 수 없습니다. 난 내일 투표에서 가표를 던져 내 태도를 분명히 할 것입니다. 이 시점에서 당 간부에게 당부 드리고 싶은 것은 나는 가표를 던지겠지만, 만일 내일 권 장관의 해임안이 가결된다면 대통령이나 공화당의 체면이 손상될 것이므로 미리 이런 분위기를 대통령께 건의해 사전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