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봄 대학 입시를 앞두고 나는 고민했다. 집안이 어려워 서울에서 공부할 형편이 안 되었기 때문이었다. 대구에서 사업에 실패하고 고향인 합천으로 돌아가 정미소를 운영하고 있던 아버지는 대구에서 의과대학을 다니라고 권했다. 그러나 나는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큰 물에서 놀아야겠다는 생각에 서울행을 고집했다. 물론 여기에는 나의 서울행을 원하는 선생님들의 도움도 크게 작용했다.
“학비야 가정교사를 하든 장학금을 받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해결할 수 있다. 그러니 만섭이 넌 주저하지 말고 서울로 가라.”
모든 선생님들의 진학지도가 이러했으니, 나로선 더욱 서울행에 자신감을 갖고 밀어붙일 수밖에 없었다. 그 해 신입생 선발은 연세대가 가장 빨랐다. 백낙준 박사가 총장으로 계실 때였는데, 서울대와 고려대보다 20일 정도 빨라 특차 전형을 했기에 많은 학생들이 몰려들어 자연히 경쟁률이 높았다. 당시 나는 외교를 통해 나라에 봉사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어 유일하게 정외과가 있는 연세대를 지원했지만, 그보다는 연세대의 시험이 가장 먼저 있었기 때문에 응시하게 됐던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24대1의 높은 경쟁률을 뚫고 무난히 합격했다.
나이가 들어 지금 생각하면, 인생에 있어 가장 기쁜 일은 결혼과 대학교 합격, 그리고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일이라 할 수 있겠다. 그 중에서도 대학교 합격이 가장 기쁜 일로 생각된다. 그러나 문제는 돈이었다. 부모님은 합격증을 보고도 그리 기뻐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혼자서 학비를 벌어 다닐 수 있다고 끝까지 우겼다. 마침 나의 사정을 잘 아는 대륜중학교의 선생님들이 월급에서 조금씩 떼어내 입학금과 한 달치 하숙비를 마련해주었다. 나는 눈물이 쏟아질 만큼 고마움을 느꼈다. 지금도 이 일에 앞장 서 주신 권진태 담임선생님(영어)과 반기화 선생님(체육)을 잊을 수 없다. 아무튼 선생님들의 덕택으로 6월 1일 무사히 입학식을 치렀고, 서대문 충정로에서 하숙집을 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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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세대 입학을 기념하여 중학교 동기들과 / 가운데가 나이고 왼쪽은 민족일보 사장 조용수 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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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와 함께 입학한 정외과 동기로는 한기춘(전 외국어대 교수), 이종익(전 청주대 총장), 한배호(전 고려대 교수), 서대숙(전 하와이대 교수), 임철규(전 시사저널 사장) 등이 있으며, 이 가운데 서대숙 박사와 한배호 박사는 6‧25동란 직후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또한 같은 해 입학했다가 6‧25동란이 발생하자 바로 군에 입대한 오자복(전 국방장관)도 나와 입학동기이다.
그러나 내 서울 생활은 그리 길지 않았다. 첫 달 하숙이 끝나감에 따라 나름대로 가정교사 자리를 찾아보러 다니며 앞으로 있을 일을 걱정할 때였다. 1950년 6월 25일 고요한 일요일 새벽 북괴군은 T34 소련제 전차를 앞세워 남침을 감행한 것이다. 북괴군의 기습남침과 막강한 화력 앞에 우리 국군은 속수무책으로 밀리고 있었고, 전선은 점차 서울 쪽으로 후퇴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다수의 서울시민들은 우리가 그렇게까지 당하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라디오를 틀면 온종일 국민을 안심시키는 이승만 대통령 목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친애하는 서울시민 여러분, 지금 불법 남침을 감행한 북한 괴뢰군은 우리의 충용무쌍한 국군의 반격으로 도처에서 섬멸당하고 있습네다. 우리 국군은 가까운 시간 내에 공산 괴뢰군을 완전 섬멸하게 될 것인즉, 이를 굳게 믿고 시민 여러분은 추호도 불안해하거나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지 말 것이며......”
의정부 쪽에서 피난민들이 줄을 이어 서울로 오고 있는데도 막상 서울시민들은 라디오 방송만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은 이미 27일 밤 정부에서 마련한 특별 열차편으로 남쪽으로 내려가고 있었으며 정부 요인들과 힘 있는 자들도 한강을 건너 이미 대전으로 후퇴하고 있었던 것이다.
27일 밤에 밤새도록 밖에서 “골 골 골” 하는 이상한 소리가 서대문 쪽에서 들렸다. 무슨 소린가 하는 궁금증은 다음 날 아침에 풀렸고, 나는 깜짝 놀랐다. 밖에 나가보니 밤새 승전보를 방송과는 달이 인민군 탱크가 벌써 홍제동에서 독립문을 지나 서대문 로터리로 물밀듯이 밀려오고 있었다. 밤새도록 들리던 그 요란한 소리는 바로 인민군의 탱크소리였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