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집으로 돌아왔는데 청와대에서 다시 찾는다는 게 아닌가.
처음에는 연락이 잘못됐나 싶었다. 하루에 두 번씩이나 찾는 경우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확인해 보니 틀림없었다. 저녁식사 초대였다.
바로 다시 들어가 보니 식당에는 이후락 비서실장, 김형욱 중앙정보부장, 김성곤 의원까지 모여 있었다. 박 대통령은 선행 조건으로 서로 감정이 나빠진 네 사람을 화해시키려 자리를 마련한 것 같았다.
그런데 제일 늦게 들어간 내가 박 대통령, 이후락 실장과 악수를 한 뒤 그 옆에 앉아 있는 김형욱에게 손을 내밀었을 때였다. 그때까지 분이 풀리지 않았던지 그는 내 손을 잡기는커녕 앉은 채로 나를 노려보면서 소리부터 지르는 게 아닌가.
“야! 이 의원. 너 나한테 이러기야!”
순간 나는 극도로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래서 내민 손을 거둬들이곤 소리를 질렀다.
“뭐야! 너, 각하 앞이라고 큰 소리 치는 거야. 네가 할 일은 당장 그만두는 것밖에 없어. 이게 어디다 큰소리야!”
서로 고성이 오갔음에도 박 대통령은 굳게 입을 다운 채 무거운 침묵만 지키고 있었다. 결국 박 대통령이 주선한 화해는 실패로 끝나고 그날의 만찬 분위기는 납덩이처럼 무겁기만 했다.
대통령이 화해를 위해 마련한 자리에서 김형욱과 내가 소리를 질러가면서 싸웠으니 대통령께는 죄송하고 무례한 행동임에 틀림없었다. 사실 그렇게까지 소리를 지르고 싶지는 않았는데 김형욱 씨가 워낙 무례하게 나오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맞받아쳤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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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대 국회의원 시절 광화문 국회의사당 앞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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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도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대통령은 저녁식사를 하는 동안 내내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김성곤 의원과 이후락 비서실장 등 우리들도 시종 침묵 속에서 식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정갈한 한식이었지만 맛이 어떤지 느낄 마음의 여유조차 없었다.
한마디 말도 없이 저녁식사를 마친 뒤 이후락 실장과 김형욱 부장이 먼저 걸어 나가고, 김성곤 의원과 내가 뒤따라 나왔다. 밖에 나온 나는 다소 불안한 느낌이 들어 김성곤 의원의 차에 함께 타고 갈까 하는 생각도 해봤지만, 괜히 나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까지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 생각을 바꾸었다. 대신 그날도 집에 가서 자질 않고 친척 집에 가서 밤을 보냈다.
그러는 새 어느덧 6일이 지나, 드디어 이후락, 김형욱의 해임 결의를 다루는 의원총회가 내일로 다가와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 전날이었다. 청와대에서 날 다시 부르는 게 아닌가. 역시 박 대통령은 그 일 때문에 나를 부른 것이었다.
“내일 의원총회에서 이후락·김형욱의 해임 문제가 더 이상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이 의원이 좀 도와주었으면 좋겠어.”
그러나 내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각하! 국민투표를 하기 전에 반드시 그 두 사람을 교체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국민투표에서도 표를 얻을 수 있습니다. 국민 모두가 싫어하는데 왜 그 사람들을 굳이 곁에 두려고 하십니까?”
“이제 곧 국민투표를 해야 하는데, 지금 어떻게 그 체제를 바꾸겠냐? 국민투표가 끝나고 난 뒤 내가 조치할 테니, 이 문제가 다시 거론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러나 국민투표가 끝나게 되면 그 사람들은 공로자가 되는데, 어떻게 인정이 많으신 각하께서 그들을 자를 수 있겠습니까?”
“아니야, 나를 믿어줘요. 국민투표 직후에 틀림없이 조치할 테니……. 대신 이건 이 의원과 나 둘만의 비밀이니 꼭 지키도록 해요.”
박 대통령은 이제 인간적으로 나를 설득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