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일 박 대통령에게 내가 직접 들은 얘기지만, 김성곤 의원은 나의 선행 조건 사건 이후에 박 대통령이 자신을 못마땅하게 여긴다는 얘길 듣고는 이후락 실장을 통해 “나의 전 재산을 각하께 바치겠습니다”라고 쓴 재산 헌납 서약서에 도장까지 찍어 바치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대해 《성곡 김성곤전》에서는 조금 달리 쓰고 있다. 김성곤 의원은 당시 금고에 있는 모든 주식을 싸들고 청와대로 가 박 대통령에게 바쳤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박 대통령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을 때는 주식 얘기가 없었던 것으로 보아 아마 김성곤 의원이 들고 간 주식은 이후락 실장이 자기 방에 두고 서약서만 보고했던 것 같다. 그렇기에 나중에 박 대통령은 나를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얘기했던 것이다.
“김성곤 의원이 자기의 전 재산을 나에게 바친다고 서명한 종이를 이후락 실장을 통해 내게 가져왔던데……, 내가 그 자리에서 이 실장한테 소리를 질렀어. 이거 나한테 시위하는 거야, 뭐야! 자기가 그걸 도로 안 가져가면 내가 정말 전 재산뿐 아니라, 모든 걸 다 빼앗아 버리겠어…….”
개헌 논쟁은 결국 일단락 돼 1969년 8월 7일 윤치영 의원 외 121명의 이름으로 대통령 3기 연임을 허용한다는 골자의 3선 개헌안이 국회에 제안됐고, 다음 날 제 71회 임시국회가 개헌안 발의를 위해 소집되었다.
9월 14일 새벽 2시 27분, 개헌안은 결국 국민투표법안과 함께 국회 제3별관에서 야당 몰래 변칙 통과됐다. 그리고 그 여파로 그날 날이 밝자 국회의장실과 장충동의 의장 공관은 야당 의원들에 의해 점령돼 각종 기물이 부서지는 일까지 벌어졌다. 야당 의원들은 그 전날 이효상 의장이 “절대 오늘 밤은 별일이 없을 테니 집에 가서 조용히 쉬시오”라면서 거짓말을 한 데 격분해 그런 소동을 벌인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효상 의장도 그날 개헌안이 통과될 줄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그 역시 별일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의장 공관에서 쉬고 있었는데, 갑자기 개헌안 처리 방침이 밤중에 위로부터 내려와 이효상 의장이 변칙 통과시켜 결의 적으로 야당 의원들에게 거짓만을 한 셈이 돼버렸다. 물론 공화당 의원들도 전혀 몰랐으며, 그날 밤 갑자기 소집 통고를 받고 나와 대기하다가 밤중에 제3별관으로 옮겨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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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화당은 밤 중에 국회 3별관으로 옮겨 3선 개헌안을 날치기 통과시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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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날치기이긴 하지만 개헌안은 통화됐고, 국민투표 일자도 10월 17일로 결정됐다. 이제는 국민투표에 혼 힘을 몰아 유세할 일만 남게 되었다. 김종필, 이효상, 백남억 씨 등 당 중진들이 지역별로 나뉘어 유세에 나섰고, 나도 경북 지역 몇 군데에서 유세를 하게 됐다.
나는 어차피 개헌안이 가결되고 나면 정치적인 보복을 당할 것으로 짐작했다. 왜냐하면 박 대통령이 간곡한 부탁을 했음에도 선행 조건을 내건 데다, 그 선행 조건에서는 막강한 힘을 가진 이후락, 김형욱의 퇴진을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그랬기에 나중에 정치 보복을 당해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이에 대비하여 유세에서 다시 한 번 떳떳하게 내 소신을 밝혀놓기로 작정했다.
“3선 개헌이 잘한 일은 아닙니다. 그간 나도 계속 반대해 왔습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하던 일을 마저 끝내기 위해서 한 번만 더 한다고 하니, 국민들은 양해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당도 자발적으로 숙정을 할 것입니다. 국민투표가 끝나면 이후락과 김형욱 두 사람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공직에서 물러나야 하며, 또한 반드시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한 번만 더 박 대통령에게 기회를 주십시오.”
그런데 어떻게 하든 내 꼬투리를 잡으려고 혈안이 돼 있던 김형욱은 유세 때마다 내 연설을 녹음했다. 그러나 난 개의치 않았다. 결국 내 유세 내용을 녹음해 간 김형욱은, 그 내용을 날 모함하는 데 이용했다.
“각하! 이만섭 의원은 국민투표를 위한 찬성 유세가 아니라 청와대를 욕하는 얘기만 자꾸 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박 대통령도 이후락과 김형욱의 보고 내용을 믿고 주변 사람들에게 “이만섭이는 청와대 욕만 한다지……”라며 내 진심을 오해하는 얘기를 했다고 한다.
결국 10월 17일의 국민투표에서는 77.1%의 투표율에 찬성 65.1%, 반대 31.4%, 그리고 무효 3.5%로 개헌안은 확정됐다.
국민투표가 끝나자 박정희 대통령은 전격적으로 이후락 비서실장은 주일(駐日)대사로 임명하고 그리고 김형욱은 그만두게 했다가 나중에 8대 때 전국구로 국회의원을 시켜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