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4월의 7대 대통령 선거는 예전의 양상과는 많이 달랐다. 야당인 신민당에서는 김영삼, 김대중, 이철승 씨 등이 ‘40대 기수론’을 내세워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섰고, 여기서 승리한 김대중 씨가 박 대통령의 경쟁자로 나서게 되었다.
처음 이들이 40대 기수론을 들고 나왔을 때 유진산 신민당 당수는 이들의 행태를 구상유취(口尙乳臭)란 표현을 써가며 폄하했으나 고흥문(高興門) 의원 등 당 간부들의 “현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집요한 설득으로 유 당수도 결국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당시 김대중 후보의 선거대책본부장은 이번 제16대 대통령선거에서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후보의 선거대책본부장이었던 정대철(鄭大哲) 의원의 부친인 정일형(鄭一亨) 의원이 맡았었다.
3선 개헌 뒤의 대통령 선거였기에 김대중 씨의 도전은 만만치 않았고, 상대적으로 박정희 대통령은 고전하는 양상이었다. 김대중 씨는 “70년대를 희망에 찬 대중의 시대로 만들자”며 ‘대중경제론’을 주장하는 한편, 헌법의 3선 조항을 중임 제한으로 환원시키고 미·일·중·소 등 4강에 한반도의 안전 보장을 요구하는 등의 선거 구호로 도전했다.
고전하던 박 대통령은 중반부에 들어서서는, 부산과 서울 장충단공원에서 “이번이 마지막이니 한 번만 더 지지해 달라”고 호소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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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삼, 이철승과 함께 40대 기수론을 내세우며 신민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된 김대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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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4월 27일의 대통령 선거 결과는 총 유권자 1555만 2236명 중 투표율 79.9%인 1241만 7824표 가운데 박정희 후보가 634만 2828표를 얻어, 539만 59100표를 획득한 김대중 후보를 약 100만 표 차이로 누르고 어렵게 당선됐다. 그리고 부정과 관권(官權) 선거라는 제야(在野)와 학생들의 규탄 데모가 격렬한 가운데, 한 달 뒤인 5월 25일에는 제8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실시되었다.
사실 나는 3선 개헌을 강력하게 반대했기에 공천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다. 그런 때 3선 개헌 반대자들을 위해 나서준 사람은 바로 백남억 공화당 의장이었다.
“이왕 지나간 일이니 3선 개헌 반대자들도 당에 충성할 수 있는 기회를 한 번 더 주어야 합니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에게 간곡하게 진언했다. 더욱이 1971년 정초에는 양순직, 예춘호 의원 등 당시에 제명됐던 개헌 반대파들을 설득, 청와대에 신년 인사를 가도록 하는 등 분위기 조성에 힘썼던 것이다.
아무튼 백남억 의장의 헌신적인 노력에 의해 나를 비롯해 양순직, 예춘호 의원, 그리고 삭발까지 했던 정간용 의원까지도 공천을 받을 수 있었다. 물론 이후락 정보부장은 끝까지 조직적으로 반대 공작을 했지만 박 대통령의 결심으로 우리는 공천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후락의 방해는 선거전에 돌입해서도 끝까지 집요했다. 공천을 주고서도 도대체 당선하라는 것인지 말라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아마 여당 후보를 그렇게까지 탄압한 적은 없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내 선거구인 대구 중구에 있는 고속버스터미널이 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선거 기간 중에 갑자기 동대구 쪽으로 이전되기도 했는데, 물론 계획에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내 반대에도 불구하고 계획을 앞당겨 굳이 선거를 앞두고 이전할 이유는 없었던 것이다. 난 터미널 이전과 관련해 두 번씩이나 대구시장을 찾아가 예정대로 선거 이후에 이전 해 줄 것을 당부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선거 기간 중 과중한 세금고지서가 유독 내 선거구민들에게 발부되기도 했다. 유권자들의 정부에 대한 불만을 야기시켜 여당 후보인 나를 불리하게 만들 저의였다. 게다가 당시 대구 시내에는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투표를 며칠 앞두고 교통위반이라는 죄목으로 사람들을 장시간 길거리에 세워두거나 연행하기도 했다. 여당 의원에게 불리한 일만 골라서 했던 것이다.
처음에 나는 조금 눈치를 채긴 했지만, 의례적인 일로 생각했다. 그러나 투표를 일주일쯤 앞둔 어느 날 밤중에 날 몰래 찾아온 내 선거구 구청장의 말에 결국 전모를 알게 됐다.
“이 의원님께 죄송한 말씀을 드리러 왔습니다. 이 의원님을 떨어뜨리라는 비밀 지령이 내려와 있습니다. 여당이라고 일절 봐줘서도 도와줘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저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만 할 수 없습니다. 제가 투표 때나 개표 때 대구에 없더라도 양해해 주십시오.”
말을 마친 그는 곧바로 사라져 버렸다. 그제서야 내가 고전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