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건데……. 이건 날 나무 위에 올려놓고 마구 흔드는 격이 아닌가…….’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결국 1971년 5월 25일에 있은 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나는 낙선하고 말았다. 나에 대한 관의 집요한 방해로 반사이익을 얻는 신민당의 한병채(韓柄寀) 후보에게 개표 결과 7천 표차로 낙선의 고배를 마셨던 것이다. 물론 내가 낙선한 이유는 3선 개헌을 반대한 소신과 이후락 정보부장의 보복 때문이었다.
공천은 받았으나 양순직, 예춘호 후보 등도 모두 낙선하고 말았다.
억울했지만 결과를 담담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1963년 11월 24일 처음 국회에 등원한 이래 6·7대에 걸쳐 7년 6개월간 나름대로 열심히 국가를 위해 일해 왔다고 자부했건만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이후락의 보복엔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막상 선거에서 떨어지고 나니 한동안은 심란한 마음을 가눌 수 없었다. 또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가슴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
오랜만에 실업자(?)가 된 나는 달성공원을 거닐며 기어이 훌륭한 정치인이 되어야겠다는 예전의 다짐을 되새겨보기도 했다. 나는 언제나 달성공원을 찾을 때면 모교 은사였던 저항시인 상화(尙火 / 이상화李相和) 선생의 시비 앞에 서서 거기에 새겨진 <나의 침실로>의 시구를 소리 내어 읽어 내리기도 했다.
마돈나 밤이 주는 꿈
우리가 엮는 꿈
사람이 안고 궁그는
목숨의 꿈이 다르지 않느니
아,
어린애 가습처럼
세월歲月 모르는 나의 침실寢室로 가자
아름답고 오랜 거기로
그리고 서울로 올라와서는 모교인 연세대 뒷동산에 올라 녹음이 짙어 가는 교정에 드러누워 많은 것을 생각해 보기도 했다. 이곳에 누워 분단된 조국의 통일을 위해 큰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하던 대학 시절이 그렇게 그리울 수가 없었다. 대학 졸업 후 기자 생활과 국회의원 생활을 하는 동안 앞만 보고 정신없이 달려온 내 모습을 돌이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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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구·경북 국회의원을 접견하고 있는 박정희 대통령 /박 대통령은 3선 개헌 이후 나와의 개인적 인연을 끊어버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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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불현 듯 부족한 것이 많음을 느꼈다. 그러고는 ‘오히려 잘됐다. 나를 재충전하는 기회로 삼자. 이게 약이 될 수도 있다’고 스스로를 달래면서 원외에 있는 동안 그간 게을리 했던 독서에 많은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해 10월에는 소위 ‘10·2 항명 파동’이 일어났다.
선거 이후 김종필 내각의 내무장관으로 취임한 오치성(吳致成) 씨가 취임하자마자, 그간 김종필 총리와 반대편에 서 있던 김성곤, 길재호, 백남억, 김진만 등 이른 바 4인 체제 계열의 지방공무원 및 경찰 간부들에 대해 대대적인 숙정을 단행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4인 체제 쪽에서는 내심 불안해하며 불만이 쌓이고 있었는데, 마침 야당이 광주단지 주민 난동사건 등 일련의 사건으로 인한 치안 부재에 대한 책임을 물어 내무장관 해임안을 제안하자 4인 체제의 의원들이 표결에 동조해 해임안을 가 107표, 부 90표, 무효 8표로 가결시켜 버렸던 것이다.
이 사건에 격노한 박 대통령은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에게 즉각 반란 책임자를 색출해 자백을 받아내라는 불호령을 내렸다. 이에 따라 당국에 끌려간 의원들은 무자비한 육체적 고통까지 겪었다고 한다. 김성곤 의원이 중앙정보부 지하실에서 콧수염까지 뽑히는 수모를 당했다는 소문이 나돈 것도 바로 이때였다.
이 사건으로 4인 체제의 리더 중 김성곤, 길재호 의원은 당에서 제명당하면서 의원직을 상실했다. 김진만 씨는 모든 당직을 박탈당했고, 꼬투리 잡을 게 없던 백남억 씨는 다음해인 1972년 7월 아들의 병역 문제로 모략을 받아 억울하게 거세됨으로써 4인 체제는 완전히 몰락하고 말았다.
이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즉 박 대통령은 나를 포함해 3선 개헌을 반대한 세력들을 8대 국회의원 선거를 전후해서 거세한 데 이어, 3선 개헌과 대통령 선거 이후 공로자로 부상해 새로운 세력을 형성하고 있던 4인 체제마저 붕괴시킴으로 1년 뒤 유신(維新) 체제로 가는 길목을 닦은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