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납치사건 (제64회)

그러나 앞서 밝혔듯이 나는 원외에서 행정부와 맞서기에는 한계를 느꼈고, 그럴 때마다 원내에 다시 진출 해야겠다며 이를 악물었다.

당시 나는 아침마다 북아현동 집에서 연세대 근처에 있는 봉원사奉元寺 까지 산책을 하곤 했다. 그 길목에서 멀리 보이는 여의도와 국회의사당을 응시하면서 마음을 굳게 다졌다

‘난 반드시 저곳에 다시 들어가고야 말 것이다.’

이를 악문 내 결심은 가끔 어머님을 뵈러 대구에 내려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열차가 한강다리를 지날 때면 당시만 해도 여의도에 큰 건물이 없었기에 멀리 국회의사당이 눈에 들어오곤 했다.

‘만일 다음에도 공천을 받지 못하면, 무소속으로라도 반드시 출마하리라. 이제 내 소원은 단 하루를 하고 그만두는 한이 있더라도 저 의사당 안에 꼭 들어가 이 나라의 참다운 민주주의를 위해 할 얘기를 다하는 것이다.’

결국 이런 집념이 나로 하여금 당시 6년간의 골방 생활을 견뎌내도록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시 정치 상황은 결코 평탄치만은 않았다. 유신은 결국 그만큼 강한 반발과 문제를 일으켰던 것이다. 1973년에는 김대중 납치 사건이 발생했다. 8월 8일, 그날은 무척이나 더운 날이었다. 김대중 납치 사건의 얘기를 당 간부로부터 전해들은 나는 공화당사의 기둥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이젠 끝장이구나. 민심도 천심도 모두 공화당과 박 대통령으로부터 떠나겠구나.’

나는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강력한 유신 체제는 결국 무조건 추종하는 사람만 만들었고, 그 와중에 일어난 충성 경쟁이 그와 같은 어처구니없는 사건을 초래하고야 말았던 셈이다. 사실 박 대통령이 김대중 씨가 국외에서 반정부 활동을 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납치하라는 지시를 직접 내리지는 않았다는 것은 그 후 여러 가지 방증을 통해 밝혀졌다.

그 보고를 처음 접한 박 대통령이 “뭐라고? 납치를 해”라고 놀라 외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든지, 윤석헌(尹錫憲) 당시 외무장관 대리가 결재를 받으러 갔을 때 창가에서 혼잣말로 “나 참! 쓸데없이 납치 사건을 일으켜 나를 이렇게 괴롭히다니……” 하면서 중얼거렸다는 얘기를 이후 윤 씨로부터 전해 듣기도 했으니 박 대통령의 직접 지시가 없었던 것은 확실한 것 같다.

▲ 나는 김대중납치사건의 소식을 듣고 공화당의 기둥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다 (1973. 8.14. 동아일보)

아무튼 김대중 납치 사건은 유신 이후 2년간 잠재해 있던 학생들의 반정부 욕구를 폭발시켰다. 1973년 10월 2일 서울대 문리대생들의 유신 반대 데모를 필두로 해서 촉발된 학생 시위는 11월 5일 경북대생이 가두시위를 벌이는 사태로까지 발전했으며, 그 이후 12월 초 대학과 고등학교에 조기 방학을 실시하기까지 하며 진화에 나서야 했다.

그러나 대학에서 물꼬를 튼 유신 반대 데모는 각계로 확산되기 시작해 윤보선, 백낙준, 김수환(金壽煥) 씨 등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대통령 면담을 요구했고, 12월 24일에는 장준하(張俊河), 백기완(白基玩) 씨 등 재야인사 30여 명이 중심이 돼 ‘개헌 청원 100만 인 서명운동’을 전개하기에 이르렀다.

1974년으로 들어서자 개헌 요구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이희승(李熙昇) 씨 등 문인(文人) 61명이 개헌지지 성명을 내자, 정부는 1월 8일자로 대통령 긴급조치 1·2호를 발동했다. 헌법에 대한 논의 자체를 금지하고 비상군법회의를 설치하는 등 초강수였다. 헌법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것이 죄가 되어 군사재판을 받는다는 것은 사실상 역사상 전무후무한 부끄러운 일이었다.

이렇듯 살얼음판의 정국이 전개되는 가운데 국가에 불행이 닥쳤다.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재일교포 문세광(文世光)에 의해 육영수 여사가 피격돼 절명한 것이다. 이 사건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범인 문세광의 배후에 조총련이 있기도 했으나, 이 엄청난 사건을 저지른 직접적인 동기는 그가 김대중 납치 사건에 자극받았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그 후 나는 격랑의 1970년대가 다 지난 후에야 비로소 국회로 복귀할 수 있었다. 8대에서 억울하게 낙선하고 9대에서 공천을 받지 못해 등원치 못했던 나로서는 8년간의 정치 공백을 지나 1978년 10대 선거에서야 공천을 받게 된 것이다.

나는 어느 정도 예견하고 있었다. 그간 8년여를 원외에서 고생하기도 했지만 내 선거구의 박찬(朴璨) 의원이 일신상의 이유로 불가피하게 정계를 떠나야 할 형편이었기에 대구 중·서·북구에서는 사실상 공천 경합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정부는 결정적 실책을 범했다. 안정적인 세원(稅源) 확보를 명분으로 갑자기 부가가치세를 도입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또한 증권 거래에 대해서도 거래세를 징수키로 했다.

국민들의 거부감은 대단했다. 부가세에 대한 인식과 홍보도 부족한 세무서 직원들조차 빗발치는 납세자들의 문의에 뭐가 뭔지 모르겠다고 답변할 정도였다. 따라서 국민들은 세금이 급증하는 것으로만 알았고, 그랬기에 이미 물가는 30% 이상 뛰어버렸다. 물론 증권시장도 거래세 신설로 주가가 폭락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