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잖아도 바닥까지 인기가 떨어진 공화당이 이제는 자기 발등을 도끼로 찍은 격이었다. 나는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당·정간 연석회의에서 강력하게 따졌다.
“물가를 자극하고 경제혼란을 야기 시키는 이러한 세제를 힘으로 밀어 붙이는 것은 문제가 많습니다. 난 반대합니다.”
물론 세제 개혁은 이미 대통령의 재가가 난 상태라 당·정 회의는 말이 협의지 사후 통고나 마찬가지였다. 내가 당·정 회의에서 세제 개혁을 공박했다는 얘기는 다음 날 《조선일보》가십난에 보도돼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기사를 읽은 박준규 정책위의장은 걱정을 해주기도 했다.
“이 의원, 또 그런 직업(直言)을 자꾸 해서 이번에도 공천을 못 받으면 어쩌려고 그럽니까?”
그러나 나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당·정 회의가 끝난 후에 남덕우(南悳祐) 부총리와 김용환(金龍煥) 재무장관에게 다시 따지기도 했다.
“나는 아까 말씀드렸듯이 근본적으로는 이 제도를 반대하지만 이미 대통령의 결재가 나서 그 실시가 불가피하다면 부가가치세와 증권거래세범의 실시 시기만이라도 선거 이후로 미루는 게 좋겠소.”
그러나 내 얘기는 허공만 때릴 뿐이었다. 이미 결정이 난 상태라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런 상황이라 비록 10대 국회의원 공천(대구 중·서·북구)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선거는 사실 어려운 싸움이 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신민당 후보는 조일환(曺逸煥) 씨였다. 야당의 현역 의원이던 한병채(韓炳采) 씨는 공천에서 탈락하자 무소속으로 출마해, 나로서는 더운 어려운 입장이었다. 왜냐하면 당시는 중선거구제라 1등과 2등, 2명이 당선 되도록 돼 있었지만 장기 집권과 세제 개혁 등으로 민심이 정부·여당을 떠난 상황에서는 마음을 놓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고생 끝에 나는 무소속의 한병채 후보에 이어 2등으로 당선되어 마침내 8년간의 와신상담 끝에 재기에 성공했던 것이다.
10대 국회에서 비록 등원(登院)의 꿈을 이루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민심이 점점 정부로부터 떠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의사당으로 향하는 나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내가 은메달로 등원하게 된 것도 사실은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 때문이었다. 선거 전에 실시된 부가가치세는 세제 그 자체보다 시기 선택이 잘못됨으로써 선거 전에 물가가 급등하는 등 경제 혼란을 야기시켜 민심을 이탈케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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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정희 정권에 대한 민심이반으로 10대 총선에서 공화당이 신민당에게 득표율에서 뒤지는 결과가 나왔다 (동아일보 1978. 12.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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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고추 파동까지 겹쳤다. 당시 고추 농사가 흉년이 들어 부득이 정부에서도 인도 등지에서 고추를 수입할 수밖에 없었는데, 마침 그 수입 고추가 썩고 변질돼 민심을 더욱 자극하기도 했다.
이러한 모든 요인이 반영된 것이 바로 득표율이었다. 당시 12·12 총선에서 공화당의 득표율은 신민당에 뒤지고 말았다. 헌정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투표율은 77.1%로 9대 때보다 4.2% 포인트나 상승했건만, 공화당의 득표율은 31.7% 로 신민당의 32.8% 에 비해 1.1% 포인트나 뒤졌던 것이다.
정부에 대한 불신은 무소속의 득표율에서도 나타났다. 무소속의 득표율은 무려 28.1% 였다. 제2야당인 통일당읜 7.37%와 합치면, 오히려 공화당이나 신민당을 앞서는 진기한 기록이 생기게 된 것이다. 그러나 1구 2인제의 덕으로 의석 수는 공화당 68석, 신민당 61설, 통일당 3석, 무소속22석으로 공화당이 여전히 앞섰다. 이 같은 결과를 두고 공화당 지도부는 애써 자위했다.
“친여(親與) 무소속을 합치면 결코 진 것은 아니다.”
궁색한 변경일 수밖에 없었다. 내가 봐도 12·12 선거는 확실히 여당이 진 것이었다. 더욱이 그 배후에는 ‘부가가치세 도입’이라는 애초부터 내가 반대했던 세제 개혁이 큰 원인이었음은 이후 사건으로도 밝혀진다. 즉 2년 뒤 부마(釜馬) 사태가 발생했을 때 많은 시민과 학생들의 시위 구호 중에는 ‘부가가치세 철폐’가 들어 있었던 것이다.
10대 선가가 끝나자 당은 일부 개편됐다. 당의장에 이효상 씨 대신 박준규 의원이 임명됐고 정책위의장은 구태회, 중앙위의장은 육인수(陸寅修), 사무총장은 신현식(申泂植), 원내총무는 현오봉 의원이 맡게 됐다. 3선 의원으로 다시 등원한 나는 당무위원으로 임명되었다. 당시 당무위원회는 요즘처럼 수십 명씩 형식적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불과 10여 명 정도로 명실 공히 당의 최고 의결기구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