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에도 나는 강력하게 당과 장관들의 무책임을 질타했다. 그러고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강조했다.
“……신민당이 이겼다고 기고만장하는 것도 일리가 있소. 왜냐하면 무소속을 친여와 친야(親野)로 숫자상 어떻게 계산하느냐는 것도 문제이지만 어떻든 공식 집계로는 공화당이 1.1%포인트 진 것이 분명하며, 나는 이를 정부·여당이 솔직하게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 총리와 장관들은 왜 선거 결과가 그렇게 되었는지를 깊이 반송하고 과거의 실책에 대해서는 이를 고치는 양심을 가져줄 것을 간곡하게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또한 장관들은 자리에만 연연할 게 아니라 자기가 맡은 일에 대해 사명감을 가지고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며, 무엇보다 국민들의 어려운 고충을 해소하는 데 모든 힘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내가 질의를 마치고 내려오자 많은 의원들, 특히 야당 의원들은 “잘했소”, “옳소”를 연발했다. 내 뒤를 이어 등단한 야당의 천명기(千命基) 의원도 질의 서두에 내 얘기부터 꺼냈다.
“야당 의원이 할 말을 이만섭 의원이 다 했습니다…….”
천명기 의원의 말이 끝나자, 잠시 의원 휴게실로 가서 담배 한 대를 피워 물었다. 그리고 속으로 다시 한 번 다짐했다.
‘장관들이 내 얘길 듣고 얼마나 반성할까? …… 아무튼 속 시원히 잘했다. 여당이라도 할 말은 해야지, 누가 뭐래도 소신을 굽히진 말자. 이것이 진정으로 나라와 국민을 위하는 길이다.’
담배를 끄고 일어나려는데 야당 의원들이 우르르 몰려와 내게 악수를 청하며 격려해 주었다. 그러나 공화당 의원들과 유정회 의원들은 내게 접근하기를 꺼렸다. 당시만 해도 국회 안에는 기관원이 많이 파견돼 의원들의 동태를 감시했기에, 나와 접촉하는 것을 꺼릴 수밖에 없었다. 다만 몇 명이 날 격려해 주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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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신말기 10대국회에서 민심이 공화당으로 떠나갔다는 발언을 하고 있는 필자 / 윗쪽은 민관식 국회의장 대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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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훌륭한 연설이었습니다. 감명을 받았습니다.”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이종찬(李鍾贊) 의원과 후에 주일대사를 지낸 최경록(崔慶祿) 의원 정도만 격려를 했다. 그리고 윤식(尹埴) 의원은 슬그머니 다가와 속삭이곤 사라졌다.
“이 선배님이니까 괜찮지, 우리 같은 사람이 그런 발언을 했다면 구속 됐을 겁니다.”
내가 워낙 강력하게 정부를 비판한 탓인지, 점심시간이 돼도 누구 하나 내게 점심을 함께 하자고 말을 걸어오지 않았다. 나는 공연히 서글퍼졌으며, 고독감을 느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영등포 출신인 강 모 의원은 내가 질의를 하는 도중에 몰래 본회의장을 빠져나와 차지철 경호실장에게 전화를 했다고 한다.
“국회에 큰일이 났습니다. 지금 이만섭 의원이 야당 의원보다 더 강력하게 발언을 하여 국회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당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던 차지철 경호실장이 이처럼 여당 내에도 20명 정도의 자기 사람을 심어놓았다는 것은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이었다.
한편 내 발언이 끝난 후 당 중진들도 내 말에 대해 지나치게 민감한 반응을 보여 날 실망시켰다. 다음날 아침 《조선일보》에는 ‘옳소 국회에 여의원의 비옳소 파문’이란 제목으로 내가 질의하는 사진과 신민당 의원들이 손을 흔들며 환호하는 사진을 함께 실었다. 기사의 일부 내용은 이러했다.
“……이만섭 의원의 발언이 끝난 뒤 공화당의 5역은 이 의원의 발언이 너무 강했다며 무사(無事) 속에 안주했던 습성에서인지 당의장실로 이 의원을 소환해 진의를 다시 묻는 진품ㅇ경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여야 의원들은 여당 의원이라고 해서 언제나 ‘옳소 의원’만은 아니라는 점을 과시했다는 점에서 이 의원 발언의 의미를 평가해야 할 것이라고 칭찬……, 국회 주변에서는 이 의원의 발언은 결국 국회와 여당의 비중을 높였다는 것이 공통된 견해이기도…….”
내 발언에 대한 본격적인 파문은 이틀 뒤 일요일에 일어났다. 그날은 마침 박 대통령의 처남인 육인수 의원 집에서 제사가 있어 박 대통령도 참석했다는데, 가는 차 안에서 차지철 경호실장이 내 국회 발언에 대하 좋지 않은 쪽으로 과장해서 보고를 했다는 것이다.
이에 박 대통령은 대로했고, 육인수 의원 집에 도착하자마자 박준규 당의장 집에 전화를 걸어 즉각 징계위원회를 소집해 나를 제명토록 지시했다. 물론 이러한 사실을 알 리 없는 나는 다음 날 평소와 다름없이 국회에 등원했다. 그런데 의사당에 도착하니 분위기가 이상했다. 이상한 분위기를 느끼고 잇는데, 박준규 당의장이 날 찾는다는 연락이 왔다. 가보니 박준규 당의장은 난감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 의원, 큰일 났습니다. 어제 각하께서 우리 집에 전화를 하셨는데, 긴급히 징계위원회를 열어 이 의원을 제명 조치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