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2일 국민병 모집이 시작됐다. 이젠 나 역시 군대에 가야했다. ‘그래 이왕이면 공군으로 가자. 하늘 높은 곳에 인생의 목표를 두고, 또 하늘의 조국을 지키자.’ 나는 즉시 공군사관학교 지원서를 냈고, 시험에도 무난히 합격해 1950년 11월 1일 진해의 공군사관학교 3기생으로 입고했다. 막상 들어가 보니 나는 학벌이 높은 편이었다. 대부분 중학교 5, 6학년을 다니다가 들어온 사람들이었고, 나처럼 대학을 다니다 온 친구는 별로 없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더러 낯이 익은 친구가 눈에 띄긴 했지만, 대부분이 대구의 학교 후배들이었다.
나이나 학교 관계로 나는 입학식 때부터 학생대대장으로 뽑혔다. 당시 공사 3기생들은 매우 우수했으며 전쟁 중이라 교수진도 대학교수 수준이었다. 당시 동기생 중에는 나중에 공군참모총장과 13대 국회의원을 지낸 김인기 씨를 비롯하여 심장섭(전 그리스 대사), 이상운(김구 선생 기념사업회 부회장), 김경복(주 한일교역 회장), 김종훈(공사 3기 동기회 회장)씨 등도 있었다.
나는 성격이 분명하고 활동적이어서 2학년 때 생도회 격인 <오성회>를 조직했고, 회장에 피선되었다. 현대도 공군 예비역 장교 모임으로 오선회가 있는데, 그 뿌리는 당시 내가 만든 오성회다. 그러나 하늘에서 조국을 지키겠다는 내 소박한 ‘파일럿’의 꿈은 2년 만에 무산되고 말았다.
1953년 봄. 모든 기초훈련을 마친 우리는 이젠 본격적인 비행 훈련만 남겨놓은 상태였다. 앞으로 열 달 정도만 견디면 나도 원하던 조종사가 되어 조국을 지킬 수 있다는 꿈에 젖어 있을 때였다. 우린 진해에서 대전의 항공학교로 이동, 비행훈련 이전에 실시하는 마지막 지상훈련을 받게 됐다. 그런데 지상훈련을 마치고 비행훈련에 채 들어가기도 전에 사건이 터졌다.
우리는 항공병 학교에서 자고 있었는데, 그날 밤 임관을 하루 앞둔 행정장교 후보생들이 유성에서 술을 마시고 돌아와 3기사관 불침번에게 공연히 시비를 걸어 일이 터진 것이다. 물론 사건의 발단은 술에 취한 행정장교 측에 있었으나 결과적으로 많은 부상자가 생겼고 더구나 전시라 공군에서는 그대로 넘기기 힘든 엄청난 사건이었다. 이제 몇 달만 참으면 임관하게 되는데, 최소한 예닐곱 명은 어쩔 수 없이 처벌당한 위기였다. 생도회장이었던 나는 한참동안 고민 끝에 비장한 결심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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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 8군 사령관 테일러 장군과 악수하는 공사생도 대장 시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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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현장에 있지 않았지만, 회장인 내게 책임이 있다. 그러니 모든 건 내가 책임지고 동료들을 살려야겠다.”
결국 나는 혼자 책임을 지고 군법회의에 회부됐다. 내가 책임을 지고 희생하겠다는 생각은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공사 출신 장교들은 물론 옥만호(전 공군참모총장), 주영복(전 국방장관), 유치곤(1965년 전사) 씨 등 당시 유명했던 출격 조종사들까지 나의 구명운동을 해주었고, 결국 최용덕 공군참모총장까지도 유치장에 있는 나를 불러 위로했다. 특히 최 장군은 내 용기를 대견스럽게 생각하면서도 안타깝게 여겨 내 앞에서 눈물까지 흘리며 말했다.
“뭐라 해야 할지....... 하지만 내가 한 평생 조종사 생활을 해봐서 아는데 이군 같은 성격은 비행기 타면 반드시 죽어...... 대학을 다니다 왔다니 차라리 복교해서 공부를 계속하는 게 좋겠어.”
최 장군은 적극적이고 정열적인 내 성격이 비행기 조종사로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아무튼 일사천리로 공군본부(지금의 대구 서부초등학교)에서 군법회의가 열렸고, 난 결국 퇴교조치 되었다. 나는 퇴교당하던 그날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3․4․5기생 모두가 두 줄로 교문까지 도열해 나를 전송해주었고, 특히 동기생들은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공사에 근무하던 장교, 사병, 문관, 심지어 식당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들까지 나의 퇴교를 안타까워하며 눈물을 흘렸다.
나의 희생적 퇴교는 널리 알려졌고, 당시 공사 강의시간에 교관들이 내 이름을 거명하며 나를 귀감으로 삼았다고 한다. 아쉽게 공사를 퇴교했지만, 군인사법에 의,해 공사 3년을 군복무 기간으로 환산하여 법적으로 병역의무를 마치고 공군 이병으로 전역했다.
그로부터 47년이 지난 2001년 11월 3일, 나는 청주 공근사관학교 교정에서 입학동기생들과 재학생들의 열렬한 축하 속에서 감격스럽게도 공사 명예졸업장을 받게 되었다. 공군사관학교와 공군 당국은 반세기 전에 일어난 그 일을 새롭게 평가하여 3기 사관학교 입교 50주년 기념행사에서 나에게 명예 졸업장을 수여해주었던 것이다.
그날 감격에 벅찬 나는 인사말을 통해 억울하게 희생당한 내 과거를 회고하고, 특히 재학생들에게 조국의 하늘을 지키는 정의로운 용사가 되어 줄 것을 당부했다. 나 자신은 물론 내 감동적인 연설에 이날 참석한 동기생들도 함께 눈시울을 붉혔다. 공사 개교 이래 제1호인 나의 명예졸업장은 지금도 공사 박물관에 영구 보존되어 있다.
대전 사건으로 나뫄 함께 공사에서 퇴교당한 김재완(전 영천시장), 조영근(목사. 현 극동방송 미주 지사장), 조박현(개인사업) 씨 등도 이날 함께 명예 졸업장을 받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