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필 총재 체제로 출범한 공화당의 고민은 김종필 총재가 유신헌법에 의해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위원이 선출하는 대통령 입후보할 것이냐의 여부였다. 당에서는 당무회의를 통해 활발하게 논의한 바 있는데, 일부 JP계 당 간부들의 생각은 이러했다.
“정치는 우선 권력을 잡고 봐야 하므로, 개헌 후 직선에 나서는 것은 차후의 문제이고 미리 대권(大權)을 잡아놓는 게 유리하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달랐다. 정도를 걸어야지 그렇잖아도 국민들이 싫어하는 유신헌법에 의해 권력을 잡는 잔꾀를 부린다면, 다음 직선제 때는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당무회의에서 강력하게 반대했다.
“유신헌법을 개정하자는 논의가 활발한 현 시점에서 통일주체국민회의에 의한 대통령은 의미가 없고. 헌법을 고친 뒤 떳떳하게 직선제로 나서야지, 그렇지 않고 잔꾀를 부린다면 국민들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요.”
좀처럼 의견이 통일되지 못했다. 결국 공화·유정회 간의 합동 의원총회가 공화당사에서 열렸다. 하지만 거기에서도 찬·반 양론이 엇갈려 결론을 내지 못한 채 다시 당무회의에 이 문제를 일임하게 됐다.
밤늦도록 계속된 두 번째 당무회의에서도 격론만 벌였을 뿐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이날 심야 당무회의에서 나와 정일권, 김창근 의원 등은 개헌을 해서 떳떳하게 직선제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와 반대로 장경순, 오치성, 이병희 의원 등은 유신헌법에 의해서라도 정권부터 빨리 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두 번째 당무회의에서도 격론만 벌였을 뿐 결론이 나지 않아 김종필 총재 자신에게 맡기기로 했다. 그러나 새로운 내용은 그날 총재로 취임한 후 바로 그 자리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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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필 씨가 총재로 선출되었다는 동아일보의 1979년 11월 19일 자 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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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여망에 따라 반드시 대통령 직선제로 개헌을 해야 하며, 또한 이를 위해 국회 내에 ‘헌법개정특별위원회’를 조속히 구성할 것을 제안하는 바입니다.”
개헌 투쟁의 서곡이 된 ‘헌특위’의 구성을 5공 이후 내가 처음 제의한 것이었다.
김종필 총재는 오랜 고민 끝에 결국 유신헌법에 의한 대통령 선거에는 출마하지 않고 개헌 후 직선에 나서기로 했다. 당시 공화당 내에서는 통일주체국민회의를 통한 출마를 주장하는 분위기도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변수는 군(軍)에서 김종필 씨의 간선 대통령 출마를 강력하게 반대했다는 사실이다.
나는 공화·유정회의 합동 의원총회가 있던 날 당시 부총리였던 신현확(申鉉碻) 씨로부터 그 얘기를 들었다. 국회에서 공화당사로 나서는데, 신 부총리가 내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이었다.
“이 의원, 절대로 김종필 씨가 통일주체국민회의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지 않도록 얘기 좀 전해주시오. 왜냐하면 지금 군에서 심하게 반대하고 있소.”
그러나 그런 중요한 얘기는 나보다 신 부총리가 직접 하는 게 서로 오해가 없을 것 같아 신 부총리에게 말했다.
“그건 아주 중요한 문제인데, 오히려 신 선배가 직접 김종필 종재에게 얘기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래서 그 후 신 부총리는 직접 김종필 씨에게 그 얘기를 했다고 들었다. 사실 군에서는 김종필 씨를 부패한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 보고 있어 나중에 직선 대통령으로 나오는 것조차 반대했다는 것이다. 그러한 군의 시각은 노재현(盧載賢) 국방장관이나 정승화(鄭昇和) 육군참모총장 등 지휘부는 물론, 전두환·노태우 장군 등 육사(陸士) 11기들도 마찬가지였다고 훗날 다른 여러 채널을 통해 들은 바 있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분위기를 감지하기도 했지만, 세상이 바뀐 이상 공화당은 직선제에 의한 대통령 선거에 떳떳하게 나가는 게 옳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아무튼 정치 수순을 그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12월 6일, 통일주체국민회의는 제10대 대통령으로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한을 선출했다. 이어 신현확 부총리가 국무총리에 임명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