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사실상 10대 국회의 마지막이었다. 왜냐하면 9월 30일에 국회가 열렸지만, 개헌안이 확정될 때까지는 다시 열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10월 22일에는 국민투표에 의해 제 5공화국 헌법이 확정됐다. 대통령은 간선제로 7년 단임이었고, 국회와 정당은 자동 해산되었다. 아울러 27일에는 제11대 국회가 개회될 때까지 해산된 국회의 기능을 대행 할 국가보위입법회의가 발족됐으며, 헌법 부칙 제6조에 의거해 ‘정치 풍토 쇄신을 위한 임시조치법’을 제정함으로써 정치인들의 정치 활동을 구제했다.
대상자는 10대 국회의원과 해산된 정당의 중앙당과 지구당 간무들, 보안 처분 대상자, 그리고 1980년 10월 26일까지의 정치·사회적 부패나 혼란에 현저한 책임이 있는 자로 규정해 그 수는 무려 7066명에 이르렀다. 1차 심사 결과 정치 활동 규제 대상자 811명의 명단이 발표됐다. 물론 국회의원들의 이름이 모두 포함돼 있었다. 며칠 후 2차 규제 대상자 24명이 다시 추가돼, 정치 규제자는 모두 835명으로 늘어났다. 정치쇄신위는 명단을 발표하면서 적격 심판에 대해 재심 청구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재심 청구는 11월 19일까지 소명 자료를 갖춰 본인이나 대리인을 통해 할 수 있도록 했다.
나는 심사숙고한 끝에 재심 청구를 하기로 했다. 잘못한 게 없는데 나에 대한 규제는 부당하다는 판단에서였다. 대리로 제출하겠다는 측근들의 만류를 뿌리친 채, 나는 광화문의 국회 제3별관으로 직접 가서 청구를 했다. 일부 의원들의 경우는 대리인을 시키고도 청구하지 않은 양 시치미를 떼곤 했지만 나는 당당했기에 직접 청구했고, 내 행동은 당시 《중앙일보》가십난에 보도되기도 했다.
1차 규제 대상자 가운데 재심을 청구한 사람은 모두 569명이었고, 그중 구제가 해제된 사람은 모두 268명이었다. 나는 268명에 포함돼 정치 규제에서 풀려났다. 심사의 구체적인 내용 등은 알 수 없지만, 아마 3선 개헌을 반대함으로써 8년간의 정치 공백을 강요당했으며, 또한 내 나름대로는 바른 소리를 하고 깨끗한 정치를 해온 점이 구제에서 풀려난 주요 원인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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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두환 신군부 정권에 의해 정치규제 대상자가 된 811명의 명단에 대한 경향신문의 1980년 11월 12일 자 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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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규제에서 풀리지 못한 사람들 중에도 억울한 사람이 많았다. 정치적인 과오가 없었음에도, 앞으로 실시될 선거에서 여당의 당선을 위협할 만한 사람들은 거의 풀려나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나는 정치적으로는 새 출발을 해야만 했다. 그러나 문제는 공화당이 해체됐으니 새로운 정당에 참여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고민을 거듭한 끝에 나는 결심했다.
‘그래도 정치가는 지조가 있어야 한다. 비록 그것이 고난의 가시밭길이라도 한길로 나가야 한다. 옛 동지들과 함께 공화당 이념을 계승할 새로운 당을 만들어야겠다.’
그래서 난 공화당 시절 가깝게 지내던 의원들을 찾아가 상의했다. 특히 정간용 의원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과거에 공화당에 있었지만 강직하고 성실한 의원들을 중심으로 뭉치기로 했다.
나는 정간용 의원 이외에 김한선(金翰善), 김유상(金裕祥) 씨 등 공화당 1·2기들과 당 재건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뤘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김종철(金鍾哲), 양찬우(楊燦宇), 김용호(金龍鎬), 고재필(高在珌), 김영광(金永光) 씨 등이 중심이 되어 공화당 재건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김종철 씨는 10·26 직전 공화당의 당무위원이었고 양찬우 씨는 공화당 사무총장, 김용호 씨는 원내총무, 고재필 씨는 보사부 장관 출신이었으며 김영광 씨는 중앙정보부 출신이었다.
나는 처음으로 독자적으로 새로운 당을 구상했다. 그러나 김종철 씨의 간곡한 권유도 있은 데다 모두 다 과거에 같은 당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결국 이들과 같은 길을 걷기로 했다.
그리하여 당시 공화당 출신들과 신민당 출신들이 자연스럽게 각각 모여 새로운 정당을 만들게 됐다. 결국 신민당 쪽에서는 유치송(柳致松) 씨, 공화당에서는 김종철 씨, 혁신계 쪽에서는 고정훈(高貞勳) 씨 등이 각 당을 대표하게 되었다.
우리 쪽은 그 후 1981년 11월 28일 김종철, 양찬우, 김용호, 고재필 씨 이외에 이종근(李鐘根), 윤인식(尹仁植) 씨, 그리고 나까지 7명으로 7인위원회가 구성돼 구체적인 창당 작업이 진척됐다. 사람들이 모이자 이제는 당명(黨名)이 문제였다. 나는 처음에는 공화당의 정신을 이어받는다는 의미에서 ‘신공화당’을 고집했다. 그러나 당시 ‘국가보위입법회의’에서는 새 정당법으로 당명까지 규제했는데, 과거에 한 번이라도 사용했던 이름은 절대로 쓰지 못하게 했다.
나는 당명 문제로 당국과 맞서 끝까지 싸웠으나 역부족이었고, 결국 우리는 심각한 토론을 거쳐 ‘한국국민당(韓國國民黨)’으로 정했다. 국민의 편에 서서 일하겠다는 각오에서 나온 당명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