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12월 3일, 남산의 외교구락부에서는 구 공화당 출신 의원들로 창당발기준비위원회가 열렸다. 이때 ‘승계와 단절’을 기본 정신으로 한 창당 발기 선언문을 내가 기초하고 낭독했다.
승계와 단절이란 과거 공화당 정권 당시 잘한 것은 승계하고 잘못한 것은 단절하자는 정신이었다. 승계할 일은 경제 발전을 이룩해 국민을 가난에서 구한 것과 ‘하면 된다’는 민족의 가능성을 계발한 것이고, 단절해야 할 것은 1인 장기 집권으로 평화적 정권 교체의 길을 봉쇄하고 국민의 정치 참여를 막은 것 등을 들 수 있다. 경제는 승계, 정치는 단절인 셈이었다.
내가 승계와 단절 논리를 편 것은 잘못된 건 변명하거나 숨기지 말고 솔직하게 인정하고, 그에 대한 비판은 달게 받아야 한다는 의도였다.
1981년 1월 23일, 마침내 김종철 씨를 총재로 한 한국국민당이 창당됐다. 나는 정책위의장과 조직강화특별위원장을 맡았다. 한편 신군부는 일사천리로 창당 작업을 진행해 1981년 1월 15일 민주정의당(民主正義黨ㆍ약칭 민정당)을 창당했다. 또 유치송 씨를 총재로 한 민주한국당(民主韓國黨ㆍ약칭 민한당)이 이틀 뒤인 1월 17일 출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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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일경제 1981년 1월 23일 자 국민당 창당 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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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국민당과 민한당을 두고서 민정당의 제1중대니 제2중대니 하는 말이 있었다. 언론에서도 들러리 야당이라고 했다. 그 무렵 모든 국가 권력을 장악한 신군부는 그 힘을 이용, 야당의 창당 작업에 관여한 게 사실이다. 그러나 분명히 밝혀둘 것은 당시 당국이 정치규제에서 제외된 정치인들 개개인에게까지 어느 정당에 참여하느냐에 대해 일일이 간섭한 것은 아니며, 다만 야당의 간판급 인물과 실무책임자에게 적지 않은 영향력을 미친 것은 사실이었다. 그런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정치를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당시 국민당이 공화당을 재건했다고는 하나 말이 재건이지, 사실 유신 체제 하에서의 공화당에 대한 좋지 않은 이미지가 좀처럼 가시질 않아 국민들의 지지를 받기엔 어려움이 많았다. 많은 인재들이 정치 규제자로 묶여 있는 데다 공화당의 지방 조직 상당수도 민정당으로 흡수 돼 지구당은 전국의 92개 중 75개만 창당할 수 있었다.
그래서 선거 운동은 처음부터 어려움이 많았다. 당시만 해도 당국에서는 민정당의 압승을 위해 야당의 공천 문제까지 개입할 정도였다. 나는 그럴수록 소신을 굽히지 않음으로써 여러 차례 당국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그리고 총선 유세에서는 국민에게 승계와 단절을 강조하면서 겸허한 자세로 지지를 호소했다.
3월 25일에 실시된 제 11대 국회의원 총선거 결과, 전국 92개 지역구 중 공천자를 낸 75개 지역 가운데 18명이 당선됐다. 유효 득표율 13.2%를 올려 전국구를 포함해 모두 25명의 의원을 탄생시켰던 것이다. 국민들은 우리의 솔직한 반성과 정치적 지조를 지킨 데 대해 많은 성원을 보내주었다.
나 역시 지역구(대구 중·서구)에서 한병채 후보를 물리치고 1등으로 당선됐다. 신민당 출신의 한 후보는 여당인 민정당으로 당적을 옮기는 바람에 많은 지지표를 잃어 2등으로 당선되었다. 당시 11대 총선에서 국민당이 25명의 당선자를 냈다는 것은, 과거 1960년 4·19로 정권이 바뀐 이후 곧바로 실시된 7월 29일의 선거에서 자유당이 불과 2명밖에 당선자를 내지 못했던 것과 비교하면 대조적인 일이었다.
다만 특기라 사항은 바로 10·26 때 공화당의 주요 직책에 있던 사람들의 경우는 대부분 낙선했다는 사실이다. 당시 국민당 핵심 간부 중 지역구에서 당선된 사람은 나 하나뿐이었다는 사실이 이를 잘 말해준다. 아무튼 국민당은 비록 원내 제2야당에 그쳤지만 일단 성공적인 출범을 한 셈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