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직선제 개헌과 군(軍)의 ...

국민당은 전국구를 포함해서 25면의 당선자를 냈으나 당 간부로서 지역구에서 당선된 사람은 내가 유일했다. 나는 4선으로 당내 최다선 의원이었다. 이런 까닭에 나는 4월 7일 당직 개편에서 별 문제 없이 부총재가 되었다.

당시 김종철 총재는 지역구인 천안·아산·천원 지역에서 출마할 생각이었으나, 여러 가지 변수가 생겨 갑작스레 지역구 출마를 포기하고 말았다. 이 때문에 전국구에 들어갈 입장도 되지 않아 결국 원외 총재로서 당을 이끌게 되었다.

아무튼 이런 상황에서 1981년 5월 4일에는 11대 국회 들어 처음으로 제106회 임시국회가 열렸다. 그리고 나는 김종철 총재가 원외였던 관계로 원내의 일은 다선 부총재인 내가 맡아야 했기에, 3일 뒤 대표 연설에 나서게 됐다.

4일 이재형(李載灐) 민정당 대표의 언설에 이어 5일 유치송 민한당 대표 연설이 끝나던 날 저녁, 나는 서재에 앉아 직접 대표연설문 작성에 들어갔다. 당시 가장 시급한 과제는 무엇인가를 곰곰이 더듬어보았다. 그러고는 결론을 내렸다.

‘현재 가장 시급한 과제는 두 가지이다. 대통령 직선제로의 개헌과 군의 정치적 중립을 확립하는 것이다. 때문에 나는 이번 연설을 당의 입장보다는 국민의 입장에서 해야 할 역사적 책임과 의무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개헌을 해야 하는 이유는 우선 제5공화국 헌법 개정 과정의 비합리성 때문이었다. 10·26 후 여야는 ‘서울의 봄’을 맞아 서로 개헌안을 합의하여 마련하였다. 예정대로라면 1981년 5월 14일 대통령 직선제를 거쳐 이미 민선(民選) 대통령이 나왔어야 했다. 그러나 그 열매를 맺기도 전에 5·17로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게다가 5·17 이후에 정당이 해산되고 계엄이 선포된 가운데 만든 헌법은 비민주적이었다. 5공화국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 선거에 의한 평화적인 정권 교체의 길은 원천봉쇄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특정 정당 안에서 소위 정부 이양을 통한 영구 집권만이 가능할 뿐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개헌을 해야 하는 이유는 국민 대다수가 대통령 직선제를 지지한다는 사실이었다. ‘내 손으로 대통령을 뽑자’는 게 당시 민심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국민들은 1971년 4월 27일 7대 대통령 선거 때 투표권을 행사한 뒤로 거의 10여 년간 대통령 뽑는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었다. 때문에 아무리 여당이 간선제의 타당성을 역설하더라도, 국민들의 맺힌 한恨(?)을 풀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게 사실이었다.

▲ 3당대표 연설에 대한 동아일보 1981년 5월 7일 자 기사

이처럼 제5공화국 헌법은 제정 과정에서 비합법적인 데다 더구나 정권의 탄생 과정에서 도덕성과 국민에 대한 신뢰성을 잃고 있었던 것이다. 5공화국 헌법이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는 요소는 단임 조항 하나뿐이었다. 물론 그 밖에도 많은 문제점이 있었다. 국회의원 선거제도도, 정치쇄신법도 그러했다.

생각을 정리한 나는 곧 작업에 들어갔다. 물론 누구와도 상의하지 않았고, 오직 나 혼자서 문안을 작성했을 뿐이다. 물론 인쇄는 생각조차 하질 않았다. 당시 분위기로서는 만일 내 연설문 초안이 당국에 알려진다면 제동이 걸릴 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일부러 인쇄하지 않고 나 혼자만 원고를 꼭 간직한 채 아무한테도 보여주지 않았다.

6일 아침 당국은 역시 내게 연설문을 사전에 보여주길 요구했으나 나는 이를 단호히 거절했다. 드디어 채문식(蔡汶植) 국회부의장 사회로 국회가 열렸고, 나는 단상에 올랐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도록 해야겠다고 다짐하면서 연설을 시작했다.

“이 나라에 자유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평화적인 정권 교체가 이뤄지고, 정치 보복이 사라지는 풍토가 조성돼야 합니다. 전두환 대통령은 평화적인 정권 교체를 솔선수범하기 위해 임기가 끝나는 7년 후에는 스스로 물러날 것을 약속했습니다. 특히 지난번 11대 국회 개회식에서 국민의 대표들에게 다시 한 번 그 약속을 다짐함으로써 이제 누구나 전 대통령의 단임 의지를 믿게 됐고, 그 점에 대해선 나도 확실히 믿는 바입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놀라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나는 말을 이었다.

“그러나 이 사람이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전 대통령이 7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대통령직에서 물러난다고 해서 결코 평화적인 정권 교체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문제는 국민의 진실된 의사가 얼마만큼 자유롭게 선거라는 과정을 통해 반영될 수 있느냐 하는 점에 달려 있다고 본인은 믿고 있습니다……. 때문에 대통령 선거 제도의 문제는 헌법에 관계되는 것이므로 신중히 다뤄져야 할 것이지만, 가장 민의를 직선적이며 효율적으로 반영하는 길은 대통령을 직접 선거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5공화국 들어 국회에서 ‘대통령직선’이란 단어가 처음 튀어나오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