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당은 즉각 바로 의령 현지로 조일제(趙一濟), 김종하(金鍾河) 의원을 조사단으로 파견해 그 조사 결과를 토대로 29일 긴급 당무회의를 소집했다. 그리곤 나는 야당 중 가장 먼저 ‘내각 총사퇴’ 및 ‘임시국회 소집’이라는 초강수를 채택했다.
워낙 전대미문의 사건이라 정부에서는 사건이 발생한 지 이틀 뒤인 28일 재빨리 서정화(徐廷和) 내무부 장관을 경질하고, 노태우 체육부 장관을 내무부 장관에 임명하는 등 수습에 나섰다. 그러나 이 사건은 불과 보름도 안 돼 터진 ‘장영자 사건’으로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게 됐다. 당시 보도는 장영자 씨와 이철희 씨가 무려 7천여 억 원이라는 천문학적 어음 사기 행각을 벌였다는 것이었다.
이 두 가지 사건으로 ‘정의 사회 구현’이라는 요란한 구호는 퇴색하고 말았다. 나는 이제 민심은 완전히 이 정권으로부터 멀어졌구나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당시 김종철 총재의 도미(渡美)로 총재 권한대행을 맡고 있던 나는 즉각 정부·여당에 포문을 열었다.
“천인공조할 이 사건을 수습하려면 관련자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의법 처단해야 하며, 즉각 국정조사권을 발동해야 한다.”
내가 이렇게 제1야당보다도 먼저 소리를 높이자, 청와대에서는 짜증을 냈다고 한다.
“이런 어려운 판에 이만섭 부총재가 국민당을 맡아 공세를 취하니, 설상가상으로 골치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무튼 이 사건으로 인해 15일에는 임재수(林在琇) 전 조흥은행장, 공덕종(孔德鍾) 전 상업은행장과 사채업자 7명을 구속하고, 이어 16일에는 공영토건 변강우(邊康雨) 회장과 일신제강 주창균(朱昌均) 회장을, 그리고 18일에는 장영자의 형부이자 영부인 이순자(李順子) 여사의 삼촌인 이규광(李圭光) 씨를 구속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틀 뒤인 20일 검찰은 “전체 어음 사기 액수는 644억 원이며, 이 자금이 정치 자금으로 유입된 일은 전혀 없으며 또한 이규광 씨는 배후에서 묵시적으로 지원만 했을 뿐”이라고 서둘러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한 뒤 마무리 지으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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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두환 정권은 정의사회 구현이라는 슬로건은 장영자사건으로 허구임이 드러났고 정부에 대한 불신은 극에 달했다 / 1982년 5월 17일 자 경향신문 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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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처음부터 국정조사권 발동을 강력하게 주장한 나는 사건의 정치적 수습을 위해 이재형 민정당 대표, 유치송 민한당 총재와 몇 차례 3자 대표 회담을 가졌지만 민정당에서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했다. 마침내 협상은 결려되고 6월 1일 국회에서는 야당이 공동으로 제안한 국무 총리 해임 권고 결의안과 장·이 부부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국정 조사특별위원회 구성 결의안이 민정당의 반대로 부결되고 말았다.
나는 다음 날 바로 기자회견을 통해 정부·여당의 행위에 대해 경고 했다.
“전 대통령은 실추된 정부 위신과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하루 빨리 사건의 배후 인물 및 권력과의 결탁 여부를 밝혀 의혹을 해소하고, 총리는 물론 경제기획원 장관·재무부 장관도 즉각 해임해야 한다. 또한 무엇보다 전 대통령 주변 인사에 대한 정리를 과감하게 단행할 것을 촉구하는 바이다.”
나는 대통령의 친인척까지 거론한 것이다. 사실 돌이켜보면 당시 정부·여당이 내 충고를 받아들여 그때 반송하는 자세로 정국에 임하고 대통령 주변 인사를 과감히 정리했더라면 그 후 ‘새마을 사건’등 수많은 친인척 관련 비리도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무튼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민심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자, 비록 국무총리 불신임안은 부결됐지만 한 달도 채 안 되어 6월 24일에는 유창순(劉彰順) 총리가 경질되고 후임에 김상협(金相浹) 고려대 총장이 임명됐으며 재무장관에 강경식(姜慶植), 법무장관에 배명인(裵命仁) 씨를 각각 임명하는 부분 개각을 단행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내 요구가 받아들여진 셈이 되었다. 그러나 그때 강경하게 나간 것이 빌미가 돼, 이후 나는 국민당 총재 선거에서 당국의 압력을 감수해야만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