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민당과 협력해 학원안정법 저지...

12대 국회가 개원되자 가장 먼저 부딪혔던 문제는 ‘학원안정법 파동’이었다. 학원안정법은 그 유명한 ‘미국문화원 점거 농성 사건’에서 비롯되었다.

2·12 총선 이후 학원 민주화투쟁을 위해 결성된 ‘전국학생총연합’은 당시 각종 집회와 시위를 주도했다. 그 와중에 개원 국회가 열리고 있던 1985년 5월 23일, 롯데호텔 앞에 잇는 미국문화원을 점거 농성하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사실 당시의 5월은 평범한 5월이 아니었다. ‘광주사태’로 인해 매년 5월만 되면 전국이 시끄럽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어수선했다. 1985년 5월 당시도 전국 39개 대학에서 ‘광주사태 진상 해명’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급기야 23일엔 5개 대학교 학생 76명이 서울에 있는 미국문화원을 점거하고, 광주사태에 대한 미국의 책임 인정과 공개 사과를 요구하면서 26일까지 단식 농성을 벌였던 것이다.

학생들은 강경했으나 마침 며칠 뒤인 28일 12년 만에 남북 간 적십자 회담이 열리게 돼, 학생들이 자진해서 농성을 풀어 고비를 넘겼다. 그러나 외교 문제로까지 비화돼 난처한 입장에 빠졌던 정부·여당은 대책을 강구하기에 이르렀다. 이때 정부·여당에서 구상한 것이 바로 ‘학원안정법’이었다.

내가 정부·여당이 학원 안정법을 제정하려 한다는 소식을 들은 뒤 처음 떠올린 건 공화당 시절의 ‘학원보호범안’이었다. 과거 공화당도 6·3 사태로 정권이 위기의식을 느끼자 학원보호법이라는 법을 제정하려다가 각계의 맹렬한 반대에 부짖혀 결국 보류한 적이 있었다. 20년 만에 똑같은 일이 다시 벌어지려 하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당시 민정당과 정부가 기초한 학원안정법의 내용도 공화당 때의 학원보호법안과 다를 바 없었다.

▲ 미 문화원 점거사건 등으로 난처해진 전두환 정권은 그 대책으로 비민주적인 악법인 학원안정법을 만들 계획을 세웠다 (동아일보 1985년 5월 24일 자의 기사)

“학원의 안정을 해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학생은 학생선도교육 위원회의 요청을 받아 6개월의 범위 안에서 선도교육을 실기하고, 선도 교육을 하기 전에 그 심사를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될 때는 법원이 15일 범위 안에서 그 학생을 일정한 장소에 보호 위탁할 수 있다.”

모두 11개 조항으로 돼 있는 학원안정법은 문구만 다소 다를 뿐이었다. 그러나 말이 ‘보호 위탁’이지 이는 ‘15일간 감금’이나 마찬가지이고, 일정 기간 ‘삼청교육’과 같은 방식으로 순화시킨다는 악법(惡法)이었다.

학원안정법은 학원을 비민주적으로 탄압하려는 악법이라는 걸 금세 알 수 있었다. 때문에 어떠한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반드시 이를 저지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우리 국민당은 신민당과 힘을 합쳐 학원안정법의 제정을 저지하기 위해 민정당과 첨예하게 대치하게 됐다. 야당 측의 반발이 예상외로 완강하자, 정부·여당은 야당을 설특하기 위해 영수회담을 추진하게 되었다.

8월 15일 신민당 이민우 총재와 영수회담을 가진 전두환 대통령은 다음 날 나와 만나게 됐다. 그 자리에는 노태우 민정당 대표위원도 함께 배석했으며, 나로서는 대통령과의 첫 대면이었다.

사실 나는 영수회담이 있기 전날 여러 가지 생각을 정리했다. 학원의 근본적인 안정을 위해서는 직선제로의 헌법 개정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이왕 만난 김에 민생 문제와 ‘대통령 직선제’도 그 자리에서 거론하기로 마음먹었다. 대통령과 만나 우선 학원안정법의 부작용부터 강조했다.

“……학원을 안정시켜야 한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으나, 그 내용을 훑어보면 이 법이 전혀 실효를 거둘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학생 선도란 모름지기 교수가 교권을 가지고 해야 하는 것인데, 교수는 이외에 누가 이들을 효율적으로 선도할 수 있겠습니까? 이는 필요 없는 부작용만 일으킬 것이니, 이 법은 차라리 없는 것만 못합니다. 그러나 대신 여야가 함께 ‘학원대책특별위원회’를 만들어 시간을 두고 신중하게 논의하는 게 좋을 듯 합니다…….”

나는 이처럼 설득조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그러자 전 대통령이 말을 받았다.

“이 총재의 말씀은 구구절절 다 나라를 위한 말씀이고, 나도 공감하는 바가 많습니다. 정부와 민정당도 처음에는 좀더 기간을 갖고 대처하려고 했지요. 그런데 일부 극렬 할생들의 동향이나 불온 유인물의 내용을 분석해 보니, 그 수가 적다고 해서 그대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되어 학원관계법을 연구, 제정키로 한 것입니다. 우리 학생 문제는 어제오늘에 일어난 문제가 아니며, 해방 후 좌·우익이 갈라져 싸우다가 겨우 좌익을 제압함으로ㅆ 오늘날 이만한 나라 발전을 이룩하게 됐다고 생각합니다. 학원이 불안하면 정치와 사회의 불안은 말할 것도 없고, 우선 경제가 되지 않습니다. 나도 이 총재의 말씀대로 당초에는 교육 효과에 있어서 어떤 부작용이 있지 않을까 검토도 했으나, 그 뒤 관계 기관들이 많은 연구를 해서 실효를 거울 수 있도록 보안해 놓았기에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옆에 앉아 있던 노태우 대표도 거들었다.

“지금 이 총재께서 제기하신 문제들은 당에서도 충분히 의견을 모으고 논의해 왔으며, 정부·여당이 이것저것 다 검토한 결과 해야겠다는 결론이 난 것입니다. 때문에 이번 학원안정법은 반드시 국회에서 통과돼야 하며, 민정당은 이미 각 지구당에 많은 홍보물을 보내는 등 법을 통과시킬 만반의 준비를 끝내놓은 상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