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5·3 사태’는 워낙 심각한 것이었다. 그날 저녁 이재형 국회의장의 초청으로 민정당의 노태우 대표, 신민당의 이민우 총재, 그리고 나 사이의 3자 대표회담이 롯데호텔 38층 메트로폴리탄에서 있었다.
“인천사태는 당국이 계획적으로 집회를 방해한 데서 비롯됐으니, 전적으로 당국에 책임이 있소. 우리는 이 같은 만행에 대항해 오는 10일로 예정된 마산대회 등을 예정대로 치를 작정이오.”
노 대표는 노 대표대로 반박했다.
“어떻게 인천사태의 책임을 정부에 뒤집어씌우려 합니까? 그러한 터무니없는 주장은 아무도 믿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산 집회는 인천 사태와 같이불순 용공분자들로 인해 혼란이 초래될 우려가 있으니 중지해 주시지요.”
그날 회담은 타협점을 찾지 못했다. 정부·여당과 신민당 모두 평행선만 달리니 방법이 없었다. 나는 대화가 단절되는 것을 막기 위해 중재에 나섰다.
“단시일 내에 다시 대표회담을 갖기로 하고, 오늘 일단 헤어집시다.”
인천사태의 후유증이 양쪽 모두에게 짐이 됐는지, 이후 10일에 있었던 마산대회는 아무 탈 없이 넘어갔다. 그러나 그럼에도 양쪽은 인천사태의 책임 문제와 진상 규명 문제로 양보 없이 계속해서 대치 상태로 있었다. 서로 힘만으로만 사태를 해결하려는 것을 보다 못한 나는 19일 기자 간담회에서 양측 모두를 비판했다.
“양측 모두 현재 무서이 중요한지를 망각하고 있습니다. 현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개헌특위를 구성하는 문제이며, 개헌은 마산이나 인천에서 하는 게 아니라 국회 안에서 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자, 결국 당 대표간 회담이 주선돼 29일 노태우·이민우 회동에 이어 30일 플라자호텔에서 나는 노 대표와 만나게 됐다.
성과는 좋아 이날 우리는 6개 항의 합의사항을 발표했다.
“첫째, 대타협의 결실을 맺기 위해 상호 노력한다. 둘째, 헌법특위는 6월 국회에서 반드시 구성한다. 셋째, 개헌안의 정기 구회 통과를 위해 최대한 노력한다. 넷째, 지방자치제를 위한 입법 조치를 정기 국회에서 처리한다. 다섯째, 구속자, 특히 학생들의 석방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인다. 여섯째, 전두환 대통령과 이만섭 총재의 조속한 면담을 실현한다.
이러한 연이은 대표회담의 정지 작업에 따라 야당 총재와 대통령간의 영수회담이 열리게 됐다. 나는 이민우 총재에 이어 6월 4일에 청와대에서 전 대통령을 만나게 되었다.
“어제도 회담을 하시고 오늘도 또 하시게 돼 무척 바쁘시겠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국민당 이 총재와는 만나서 말씀을 들어야 하질 않겠습니까? 남북간에도 대화를 하는데, 어제고 오늘이고 대화는 계속해야죠. 대화를 하다 보면 오해도 풀리고, 이해가 되면 서로 합의점을 발견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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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수회담을 위해 청와대에서 만난 필자와 전두환 대통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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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부드럽게 인사를 나눈 뒤 바로 본론에 들어간 나는 바로 헌특위 분제부터 꺼냈다.
“모두들 아집과 독선을 버려야 이해가 쉽게 되고, 또 합의점도 발견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헌법개정특별위원회는 이번 임시 국회에서 반드시 구성되야 하며, 이를 위해 정부·여당이 타협의 분위기 조성에 계속 힘써주셔야 하겠습니다.”
“이번만은 통일이 될 때지 갈 훌륭한 헌법을 만들어야겠다는 것이 나의 소신입니다. 여야가 국가적 차원에서 허심탄회하게 절충해 리 개헌 작업을 벌이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전 대통령의 ‘빨리’라는 말을 바로 받았다.
“개헌안은 평화적 정권 교체와 그 부수 작업을 위한 일정을 감안할 때, 금년 정기 국회에서는 여야 합의로 통과시켜야 합니다만…….”
“여야가 합의 한다면이야 올 정기 국회에서도 통과될 수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전 대통령은 이때 처음으로 정기 국회 내 개헌을 언급했다. 비론 ‘여야가 합의를 한다면’이라는 전제가 달려 있었지만 커다란 진전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특히 학생들 문제도 언급했다.
“구속된 학생들이 학원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조치해 주십시오.”
“이 총재께서 특별히 관심을 표명한 만큼, 법 절차 진행과정에서 뉘우칠 경우에는 단계적으로 석방될 수 있도록 조치하겠습니다.”
개헌 문제는 회담 말미에 내가 다시 한 번 확인을 했다.
“개헌은 국민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다음 대통령은 반드시 새로운 헌법에 의해 선출돼야 합니다.”
그러자 전 대통령은 “헌법이란 국가 운영의 기본이므로 소홀히 다루거나 선입견을 갖고 다뤄서는 안 될 것입니다. 특정 정파나 특정인, 그리고 특정 정당을 위한 헌법이 되어서는 안 되며 어디까지나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날도 느낀 것이지만, 전 대통령은 개헌에 관한 한 그때까지만 해도 국민들의 생각과는 달리 내심 내각제 개헌을 원하고 있었던 것이 확실했다. 때문에 말미에 “개헌은 국민이 원하는 방향”이라는 말로 쐐기를 박았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