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그날 회담도 성공적이었다. 정기 국회 기간 내 개헌은 물론이거니와 학생 등 구속자의 단계적인 석방까지 얻어낸 것은 큰 성과였던 것이다. 다음 날 조간에서는 전날 이민우 총재와의 회담에서는 이야기되지 않았던 이 두 가지 사항이 합의된 사실을 1면 톱으로 보도했다. 그만큼 빅 뉴스였던 것이다.
아무튼 얼어붙어 있던 정국은 2월 24일, 4월 30일, 6월 4일 등 세 차례에 걸친 청와대 회담을 통해 88올림픽 후 개헌 논의, 88올림픽 후 개헌, 임기 내 개헌, 1986년 정기 국회 내 개헌까지 크게 진전되는 성과를 거뒀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당시 경색된 정국을 풀기 위해서는 이를 푸는 중재자가 필요한 것이었다. 누군가 중재자가 절실히 필요했는데, 내가 그 역할을 맡아 한 셈이었다.
당시 ‘1986년 정기 국회 내 개헌’을 이끌어낸 청와대 회담을 가지면서 전두환 대통령에 대한 나의 인식은 다소 달라지 게 되었다. 나는 그가 군인 출신으로서 강경하기만 하다는 인상을 갖고 있었으나, 때로는 그가 내린 결정이 잘못됐다는 것을 지적하고 사심 없이 설득하면 그 자리에서 그 결정을 바로 고칠 수 있는 장점도 지니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당시 전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 내에 개헌을 하되, 대통령 직선제가 아닌 내각책임제 개헌에 강한 집념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때문에 나는 국민이 원하는 대통령 직선제를 어떻게 관철시켜야 할지 크게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일은 헌특위 구성 그 자체였다.
헌법의 권력 구조에 대해 여야가 속셈은 달랐지만 어쨌든 개헌을 한다는 데 대한 합의는 이루어져, 마침내 6월 24일 국회 본회의에서 헌법개정 특별위원회 구성 결의안이 여야 만장칠치로 통과됐다. 그리고 7월 30일에 헌법특별위원회가 정식으로 가동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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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속자 석방과 정기국회 내 개헌안 처리를 얻어낸 영수회담 결과 보도 (1986. 6.4). 경향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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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특위원장은 국회의장을 지낸 민정당의 채문식 의원이 맡았다. 드디어 우리 당과 신민당은 8월 8일, 그동안 준비해 온 개헌안을 최종 확정해 헌특위에 제안했다. 두 야당은 역시 대통령 직선제를 제안했으며, 여당인 민정당은 10일 뒤인 18일 예상했던 대로 내각책임제 개헌안을 제안했다.
8월 25일에는 제4차 헌특위가 열려 각 당의 헌법개정안에 대한 제안 설명이 있었다. 워낙 중요한 사안이었기에 신민당에서는 이민우 총재가, 국민당에서는 내가 제안 설명을 하게 됐다. 그러나 여당인 민정당에서는 격을 맞추지 않고 헌특위 간사인 이치호(李致浩) 의원이 나섰다.
그날 제안 설명은 본회의장 맞은편 예결위 회의장에서 있었다. 나는 워낙 역사적이고 중요한 사안이었기에 내 정치 소신을 담은 연설문을 직접 준비했다. 1985년 3월 22일 내가 총재에 취임한 이래 최초로 헌특위 구성을 제안했고, 그 어려운 정국을 헤쳐나와 결국 이렇게 헌특위가 구성되고 마침내 제안 설명을 하게 됐으니 감개무량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단상에 올라 입을 열었다.
“진정한 평화적인 정권 교체와 이를 토대로 한 참다운 자유 민주주의를 구현하기 위한 새로운 민주 헌법의 마련은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이 시대의 지상 명령입니다. 때문에 개헌에 임하는 우리 정치인 모두는 정권 연장이나 집권욕과 같은 당리당략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순교자적인 자기 희생을 각오하면서 오직 민족과 역사의 뜻에 순응하며 이 나라 헌정사에 새로운 출발을 고하는 대장전(大章典)으로서의 명실상부한 민주 헌법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첫 번째는 온 국민이 직선제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며, 그렇기에 당연히 개헌은 국민이 바라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두 번째로는 자유 민주주의 구현과 함께 국민 경ㅈ를 도약시키기 위해서는 국민이 원하는 강력한 정부가 필요하며, 이러한 정부는 대통령 직선제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직선제 개헌만이 오늘의 분열된 국론을 통합하고 수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리고 마지막으로는 여야 간에 합의 개헌이 돼야 함을 강력히 촉구했다.
“합의 개헌으로 오늘의 난국을 슬기롭게 극복할 때 비로소 조국의 밝은 장래가 약속됩니다. 그렇지 않을 때 이 나라는 구제할 수 없는 파탄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우리 다 함께 가슴에 손을 얹고 깊이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역사의 죄인이 되지 맙시다.”
한편 민정당의 이치호 의원은 당의 방침에 따라 내각책임제 개헌안을 설명했다. 그런데 내가 그토록 “개헌만이 난국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다.”고 역설했건만, 개헌 작업은 민정당과 신민당의 양보 없는 대치로 전혀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었다. 표면적인 이유는 공청회 운영에 관한 규모, 방청인의 숫자 제한, 그리고 TV 생중계 여부를 두고 민정당과 신민당이 승강이를 벌인 끝에 결국 공청회는 열리지도 못한 채 날짜만 하루하루 허비하게 됐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