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2002년 2월 19일 방한했으나 짧은 일정관계로 국회 방문이 없어 나와 긴 얘기를 할 시간은 없었다. 다만 그 다음날 20일 청와대 리셉션에서 나는 그와 만나 잠깐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북 핵 문제에 관한 한 확고한 한 · 미 공조체제가 유지되어야 하고 또한 남북 간의 평화 정착과 화해협력은 확고한 안보 위에서만 가능하다고 믿고 있는 나는 먼저 그에게 “한반도의 평화 정착도 튼튼한 안보의 바탕위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고 말을 건네자 부시 대통령은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확고한 안보가 뒷받침될 때 비로소 평화 공존이 가능한 것입니다”라고 대답하며 흡족해했다.
그 다음 날 부시 대통령이 전방 미군부대를 시찰했을 때 그는 나와 나눈 위와 같은 내용의 연설을 하면서 ‘안보 위의 평화’를 강조하기도 했다.
아무튼 이제 외교 활동이 직업 외교관의 전유물이던 시대는 지났다. 외교 당국자만이 국가 간의 문제를 감당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정부끼리 잘되어 가는 문제를 더욱더 발전시켜 나갈 수 있도록 하고 공식 외교상 풀기 어려운 문제는 잘 풀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의회외교의 역할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외국의 국가원수나 주요 지도자들을 만날 때마다 경제 외교에도 열을 올렸고 그 성과에 대해 지금도 가슴 뿌듯하게 생각하고 있다.
16대 국회의장 재임 중 나는 한반도의 평화 정착과 남북관계 진전에도 많은 관심을 쏟았다. 특히 나는 기회 있을 때마다 남북 국회회담을 북측에 제의했다.
2000년 7월 17일 제52주년 제헌절 경축사를 통하여 나는 남북 국회회담을 공식 제안했다.
“……저는 오늘, 지난 1948년 헌법을 제정 공포했던 역사적인 날을 기념하는 이 자리에서, 북한 측에 정식으로 ‘남북 국회회담’의 개최를 제의하는 바입니다.
남과 북의 국민들을 대표하는 국회와 최고인민회의의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여 민족의 나아갈 길을 논의하고, 또 반세기에 걸친 민족과 한과 상처를 어루만지는 일은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었습니다.
우리 국회는 이제 남북 화해와 교류의 시대를 앞장서 개척해 나갈 것입니다. 또 국회 차원에서 북측의 정치인들과 민족의 미래에 대해 허심탄회한 논의를 할 수 있는 모든 방안과 절차를 강구할 것입니다.
그리고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이 문제를 숙의하기 위해 국회 안에 ‘남북관계 특별위원회’와 ‘실무기획단’을 구성하는 문제 등 남북 국회회담의 성사와 성공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다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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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년 2월 20일 부시 미국 대통령과 (청와대 리셉션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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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000년 8월 30일 뉴욕 UN 본부 총회의장에서 개최된 IPU 세계국회의장회의 기조연설을 통해서 남북 국회회담이 하루빨리 열리기를 촉구했다.
“……한민족의 화해와 공영, 그것은 한반도 내부만의 통합이 아니라, 지난 냉전의 세기를 마지막으로 치유하는 과정이자, 비로소 한민족이 인류 공영의 도도한 흐름에 능동적으로 동참하는 인류사적 진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를 위하여 저는 이곳에 오기 전인 지난 7월 17일 대한민국 제헌절 기념식에서 대한민국의 국회의장으로서 북한의 최고인민회의에 남북국회회담의 개최를 정식으로 제의한 바 있습니다.
저는 국민의 대표 기관인 양측의 입법부 대표가 허심탄회하게 민족의 문제를 논의하고, 또 이를 바탕으로 남북한이 손을 잡고 세계주의와 인류 공영에 기여할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기대하는 바입니다…….”
나의 연설에 각국 대표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로 지지를 표해 주었다.
이어 2001년 1월 16일 제9차 칠레 발파라이소에서 개최된 APPF 총회 기조연설을 통해서도 남북 국회회담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남북 국회회담은 남북 정상 간에 합의한 ‘공동선언’을 실현할 수 있도록 법적 · 제도적 뒷받침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에서 여야의 입장 차이를 떠나 초당적으로 추진됨으로써 보다 영속성을 띨 수 있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본인은 머지않은 장래에 남북 국회간의 교류가 활성화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하고, 이러한 차원에서 북한의 APPF 가입을 희망하며, 회원국 대표 여러분께도 이를 지지해 주시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나는 이어 2001년 4월 3일 쿠바의 아바나에서 개최된 제105차 IPU 총회 기조연설과 2001년 7월 17일 제53주년 제헌절 경축사, 2002년 3월 18일 모로코의 마라케시에서 열린 제107차 IPU 총회 기조연설, 2002년 4월 18일 중국의 충칭에서 개최된 제3차 AAPP 총회 기조연설을 통해서 남북 국회회담을 재차 촉구했다.
또한 쿠바 IPU 총회에서 김영대(金永大)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부위원장을 만났을 때, 그리고 중국 AAPP 총회 때 김수학(金秀學) 최고인민회의 의원 겸 보건상을 만났을 때 “귀국하거든 김영남(金永南) 상임위원장, 최태복(崔泰福) 의장과 숙의하여 남북 국회회담이 조속히 성사될 수 있도록 애써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2001년 5월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도 셀레즈뇨프 하원의장을 만나 시베리아 철도 연결 사업과 이르크추크 가스전 개발 사업을 위하여 남북한 · 러시아 3국간의 의회회담을 주선해 줄 것을 강력히 요청한 바 있었다.
내가 러시아 푸틴 대통령, 그리고 셀레즈뇨프 하원의장에게 강조한 시베리아 철도 연결 사업 등에 대해 북측도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또한 김정일 위원장이 철도로 모스크바를 두 번씩이나 방문한 것도 나와 만났던 러시아 지도자들로부터 영향을 받았던 게 아닌가 생각된다.
나는 지금도 북한이 하루빨리 국회회담에 의하여 양측의 국민 대표들이 북한의 핵 문제를 비롯한 남북 간의 당면 문제를 허심탄회하게 논의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정부 당국 자간 회담도 중요하나 국민 대표들 간의 초당적인 대화만이 참다운 민족화합을 이룩할 수 있는 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