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의 말

‘꾀’가 아닌 ‘가슴’으로 일관한 정치 반세기

-정계의 중심에서 떠나지 않은 파란만장한 역정

정치인은 모름지기 나라에 도움이 되지 않을 때 정치를 그만두는 것이 옳다는 생각을 나는 평소에 지녀왔다. 이제 나 자신, 더 이상 나라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 16대 국회를 끝으로 정치일선에서 물러서게 되었다. 그러나 파란만장했던 나의 정치역정은 다음 세대를 위해 여기 기록에 남기고자 한다.

일제시대였던 1932년 나는 대구에서 태어났다. 생일이 2월이라 남보다 한 해 일찍 초등학교에 입학하였다. 1945년 8월 15일,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일제식민통치가 패전으로 막을 내리고, 미 군정에 이어 국권을 되찾아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한지 2년만인 대학교 1학년 때는 6.25동란을 겪어 민족의 비애를 몸소 느꼈다.

6.25동란으로 군에 입대하여 대학을 1957년에 졸업하였으나, 그 전해에 언론계에 투신하여 1963년 가을까지 정치부 기자로 젊음을 불태웠다. 1963년 추석날, 휘영청 밝은 달을 바라보며 박정희 후보의 자립경제, 자주국방에 공감하여 언론계를 떠나 정치에 몸을 담았다.

나는 정치부 기자 생활 7년과 6대국회부터의 정치생활 41년, 그 반세기 동안에 격동하는 이 나라 정치의 중심에서 떠나지 않고 파란만장한 정치역정을 걸어왔다. 그리고 이제 국민의 성원으로 국회의장 두 번과 6건의 국회의원 생활을 마감하고 마침내 정치일선에서 떠나게 된 것이다.

혹자는 내가 사람과 돈을 모아서 하는 ‘한국식 정치’를 하지 않았기에 대과없이 오랜 정치생명을 이어왔다고 좋게 평가하기도 하고, 또 혹자는 화려한 경력 탓에 ‘실리를 좆아온 것이 아닌가’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으나, 어떻든 내가 오늘 이 자리에까지 올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한 가지 이유에서였다. 그것은 ‘정치는 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하는 것’이며, ‘정치와 사랑은 계산하면 안 된다’는 신념을 항상 마음에 새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지난 40여년간 그 같은 굳은 신념을 가지고 정치생활을 계속해왔다. 내가 옳다는 것은 목숨을 걸고 주장하기도 했다. 서슬이 퍼렇던 3공화국 박정희 대통령 시절, 나는 끝까지 3선개헌을 반대했고, 권력형 부정부패 책임자인 이후락 청와대 비서실장과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의 해임을 요구하며 투쟁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8년간의 정치공백을 강요당하기도 했다.

1964년 나는 남북을 통틀어 최초로 남북교류와 이산가족의 상봉을 추진할 것을 주장하고, ‘남북가족 면회소 설치에 관한 결의안’을 국회에 제안하기도 했다. 이것이 반공법과 보안법에 위반된다고 하여 김형육 중앙정보부장으로부터 탄압을 받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그러나 나의 그 주장이 계기가 되어 그 후 남북교류가 이어지고, 지금은 이산가족이 상봉하며 면회소 설치에 대한 남북 쌍방의 합의까지 이루어졌으니, ‘혈육상봉’이란 내 소원은 이루어진 셈이다.

그리고 지금 남북 간에는 경제협력도 계속되고 있다. 다만 아쉬운 것은 남쪽이 무조건 퍼주고 있다거나 또는 지나치게 북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몸을 사린다는 인상은 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도와줄 것은 도와주되 할 말은 해야 하고 따질 것은 따져야 한다. 그것이 남북 모두의 장래를 위해 바람직하다.

물론 지난날 강대국에 의해 남북으로 나뉘어진 우리 조국은 반드시 평화적으로 통일되어야 하고 민족은 하나로 합쳐져야 한다. 그래서 나는 학생 시절 내 몸의 피를 모두 뽑아 주전자에 담아 3.8선을 지웠으면 하는 생각을 했고, 통일된 한국의 대통령을 꿈꾸기도 했다.

그러나 어느덧 세월은 흘러 내 나이 훌쩍 팔순을 넘겼고, 후배들을 위해 정치일선에서 물러날 결심을 했다. 나는 정계 현역의 자리에서 물러선 이후에도 이 나라의 자유민주주의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해 이 생을 다 바칠 생각이다.

물론 나는 내가 꿈꾸던 통일한국의 대통령도, 그 반쪽인 한국의 대통령도 되지 못했다. 대통령은 하고 싶다고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뜻이 있어야 한다. 나라를 위해 열심히 일하다 기회가 오면 하는 것이고, 기회가 오지 않으면 못하는 것이다. 누구든 무리하게 대통령이 되려고 하면 나라에 해를 끼치고 본인도 망신을 당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대통령에 당선된 사람은 대통령 후보 때와는 그 언행이 달라야 한다. 후보 때는 표를 모으기 위해 때로는 전략적으로 말을 할 수도 있으나, 대통령이 된 후의 언행은 국내는 몰론 국제적으로도 큰 파장이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침묵은 금’이라는 것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

나는 행정부의 수장은 되지 못했으나 입법부의 장인 국회의장을 두 번이나 지낸 것을 지금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임기 동안 나는 이 나라 고질병인 국회의 날치기 관습을 없애고, 또 여야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공정한 국회 운영의 전통을 세웠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날치기 사회’ 거부로 14대 때는 김영삼 대통령과 16대 때는 ‘교섭단체 요건 완화를 위한 국회법 개정’ 관계로 김대중 대통령과 한때 불편한 관계에 놓인 적도 있었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회는 여당의 국회도, 그리고 야당의 국회도 아닌 오직 국민의 국회이기 때문에 나는 한시도 내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이처럼 나는 민주주의 최후 보루인 국회의장을 지낸 영원한 의회정치인으로서 앞으로 국회 밖에 있더라도 국회가 국민에게 사랑과 믿음을 받는 참다운 민의의 전당이 되도록 항상 힘을 보탤 생각이다.

나는 41년의 의원 생활을 마감하면서 지난날의 우리 정치사를 여기 회고록에 담았다. 나는 이 회고록을 직접 내 손으로 썼다. 그것은 정확한 역사의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다.

혹시 내 글이 한 시대를 같이 한 사람들의 명예에 영향을 끼치는 일이 없을까 하고 무척 조심스럽기도 했다. 그래서 사실을 사실대로 기록하려 했을 뿐 다른 뜻이 없음을 깊이 양해해 줄 것으로 믿고 있다.

그동안 자료 정리를 도와준 김지용, 하태호, 박용희 보좌관에게 감사한다. 그리고 이 회고록을 연재한 그래피스에게도 사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