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나는 AAPP 개회식 이틀 뒤인 4월 18일 충칭의 AAPP 본회의장 옆 면담실에서 사둔 하마디(Sadoon Hammadi) 이라크 국회의장을 만나 면담을 나눈 일이 있다. 이 만남은 그의 요청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 자리에서 그는 “미국이 이라크가 대량 살상무기를 갖고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라크는 대량 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고 100% 지신 있게 말할 수 있으며 미국도 이 사실을 알고 있다”고 역설했다.
그래서 나는 대량 살상무기가 없다는 것이 진실이라면 사담 후세인(Saddam Hussein) 이라크 대통령이 부시 미국 대통령을 직접 만나 오해를 푸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며 이를 위한 두 대통령의 자연스런 만남은 코피 아난(Kofi Annan) UN 사무총장을 통하는 길도 있지 않느냐고 간곡히 설득한 일이 있다. 그러면서 이라크에 돌아가면 이 문제에 대해 후세인 대통령과 의논해 보라고 권한 일이 있다. 그것은 바로 세계 평화를 위해서였다.
그때 만일 이라크가 나의 충고를 받아들여 미국의 오해를 풀었더라면 이라크 전쟁과 같은 비극을 피할 수도 있지 않았겠느냐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마디 의장은 그날의 내 얘기가 인상적이었던지 이라크 전쟁 발발 전 이라크 국회를 방문한 송영길 · 김성호(金成浩. 분당 전 민주당) · 서상섭(徐相燮) · 안영근(安泳根. 한나라당) 의원 등에게 나의 안부를 특별히 물었다는 것을 송영길 의원을 통해 전해들은 바 있다.
2001년 1월에는 제9차 아·태의회포럼(APPF) 총회 참석자 칠레를 방문한 나는 1월 16일 대통령궁에서 라고스 대통령과 면담을 가졌다.
나는 라고스 대통령이 한평생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해 온데 대해 존경을 표하고, 라고스 대통령의 “발전을 위한 개혁”이란 말에 공감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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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년 1월 16일 리카르도 라고스 칠레 대통령을 예방 / 왼쪽은 부인 한윤복, 오른쪽은 칠레 외무장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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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스 대통령 또한 한국이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한데 대해 높이 평가하고 양국 관계의 발전을 위해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는 자유무역협정이 늦어진 데 대해 신경을 많이 쓰면서 심각하게 걱정했다.
그래서 우리 농민의 반대로 자유무역협정 문제가 어려움에 봉착해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일부러 포도주 얘기를 꺼내면서 분위기를 부드럽게 돌리고자 했다.
나는 “미국 와인과 프랑스 와인은 값이 비싼 데 비해 칠레 와인은 맛도 좋고 값도 적당하여 칠레 사람들은 양심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라고 말하며, 우리 방문단 일행은 앞으로 한국에 돌아가면 칠레 와인만 마시기로 결의했다고 하자 장내는 웃음바다가 되었고 라고스 대통령도 파안대소했다.
그 이후로 나는 지금도 라고스 대통령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칠레산 와인[주로 ‘몬테스 알파(Montes Alpha)]을 즐겨 마시고 있다.
그 후 2003년 2월 15일 라고스 대통령이 방한하여 청와대에서 한·칠레 양국 간 자유무역협정 서명식을 가졌다.
협정 서명식이 끝난 직후 있은 청와대 오찬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함께 헤드테이블에 앉아 있는 나를 보자 라고스 대통령은 “이 의장께서는 지금도 칠레산 와인을 마십니까?”라고 물었으며 이에 나는 “대통령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지금도 계속 칠레산 와인을 마시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라고스 대통령은 웃으면서 “칠레산 와인을 마시는지 안 마시는지는 우리 대사가 지켜볼 것입니다”라고 농을 건넸으며 나는 이에 내 옆에 앉아 있던 주한 칠레대사를 가리키며 “내가 칠레산 와인을 즐겨 마시는 것을 대사가 잘 알고 있습니다”라고 말하여 좌중에 폭소가 터지기도 했다.
내가 만난 외국 지도자 중 핀란드의 할로넨 여성 대통령과 농득만 베트남 당서기장 또한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할로넨 대통령은 사치나 꾸밈이 전혀 없는, 흔히들 얘기하는 ‘옆집 아줌마’ 같은 분이었다. 그녀에게서는 전혀 권위주의적인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자신이나 남편의 사회적 지위가 높으면 겉모양에 신경을 많이 쓰는 우리의 경우와는 대조적이었다.
특히 그녀의 남편은 그 나라 국회의원도 아니고 평범한 국회 직원이었는데 늘 동행하면서 비서와 같이 대통령을 도와주는 모습은 아름답기까지 했다.
할로넨 대통령은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간 후 나에게 “고맙다”는 따뜻한 편지를 보내줬고 그 후 우리는 지금도 가끔 서신 연락을 하고 있다.
농득만 베트남 당서기장(당시 국회의장)은 2000년 8월 UN 본부에서 열린 세계국회의장회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 그는 첫인상이 부드럽고 인간미가 풍부하면서도 확고한 신념의 소유자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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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년 8월 30일 농득만 베트남 당서기장과 환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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