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스로 인디언들의 오해를 벗어나긴 했지만 이후에도 괴질을 둘러싼 논쟁은 계속된다. 의학적으론 이 괴질의 원인균이 한탄바이러스와 유사한 한타바이러스였으므로 상위 개념인 한타바이러스 속(屬)에 포함되는 종(種)의 하나로 분류된다. 문제는 이름을 CDC에서 어떻게 붙이느냐였다. 처음엔 지명의 이름을 따 포코너바이러스라 명명했다.
포코너(Four Corner)란 인디언보호구역의 일부가 뉴멕시코, 캘리포니아, 아리조나, 콜로라도의, 4개주가 교차하는 모퉁이 지역의 이름이다. 대개 새로운 바이러스의 이름은 한탄바이러스와 마찬가지로 처음 발견한 사람이 그 지역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는 것이 관례이지만 아직도 자기 이름을 붙이는 학자도 있다.
그러나 인디언들은 이 경우 무서운 질병의 이름 때문에 자신들의 주 수익원인 관광사업이 큰 타격을 받는다며 반대했다. 그래서 바꾼 이름이 무에르토캐니온(Muerto canyon)바이러스였다.
무에르토캐니온은 스페인어로 ‘죽음의 계곡’이란 뜻으로, 스페인 군대가 멕시코에서 처음 이 지역에 쳐들어와 이 지역에서 저항하던 인디언을 몰살한 계곡의 이름이다 지금도 지도에는 무에르토캐니온이라는 계곡이 있다.
그러나 이번엔 인디언들이 역사적 자존심을 들고일어났다. 죽음의 계곡이란 이름은 이곳에서 스페인군과 인디언들이 치열한 전투를 벌이다가 인디언들이 전멸한 뒤 절망과 슬픔에 잠긴 인디언 후손들이 남긴 역사적 이름이다.
독자들은 사소한 것 갖고 별 항의를 다 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학명이란 일단 붙여지면 영원히 남는 것이므로 그렇지 않아도 백인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인디언들의 항거는 치열할 수밖에 없었다. 나바호 자치국 대통령은 미국 대통령에게 항의서한을 보냈고, 급기야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이 문제의 진화에 나서게 됐다.
클린턴 대통령은 인디언들의 상소를 받아들여 미국질병예방통제센터(CDC)에 새로운 이름을 정하라고 명령했다. 이렇게 해서 붙여진 이름이 신놈브레(Sin Nombre)바이러스다. 신놈브레란 ‘이름이 없다’란 스페인어로 하도 말이 많으니까 학명을 논의하는 CDC관계자들이 아예 ‘무명의 바이러스’란 전무후무한 이름으로 결정해 버린 것이다.
이처럼 바이러스 이름 하나로 난리법석을 떤 인디언들의 사례에 비하면 나는 행운아라 할 만하다. 한탄바이러스란 이름을 내 마음대로 한탄강 유역 주민들의 반대 없이 명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 지명이 붙은 바이러스는 필자가 발견한 한탄바이러스가 유일하다고 알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서울 시민들에겐 미안한 일이기도 하지만 필자가 두 번째로 명명한 ‘서울바이러스’도 있기 때문이다.
1979년 11월 26일의 일이다. 연구실에서 유행성출혈열 환자가 발생한 지역의 지도에 핀을 찍고 있던 필자는 하루 전 검사를 끝낸 한 환자의 거주지를 유심히 살펴봤다. 직업이 아파트 수위였는데 주소가 서울 시내 마포구가 아닌가. 대부분의 환자가 경기도 북부의 농촌지역에서 발생하는데 이 사람은 서울 시내라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혹시 경기도 북부로 여행했거나 성묘를 했을 수도 있지만 아파트의 수위란 대개 하루씩 교대 근무할 터이므로 서울을 벗어나지 않고 감염됐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환자가 입원한 종로구에 있는 혜정내과의원의 담당의사에게 전화로 문의해 보니 이 환자는 지난 1년간 한 번도 서울을 벗어난 적이 없다는 것이 아닌가.
그는 환자가 서대문구 남아현동의 한 아파트에서 수위로 일하고 있다면서 내게 귀가 솔깃한 이야기를 했다. 증상이 나타나기 나흘 전 아파트 경비실에 들어온 집쥐 한 마리를 때려잡았다고 한다. 저녁 7시경에 친구와 경비실에서 장기를 두고 있었는데 쥐 한 마리가 문틈으로 들어왔길래 문을 닫고 둘이서 약 십분 동안 연탄집게와 빗자루로 진땀을 흘리며 때려잡았다고 한다. 그리고 친구는 집으로 가고 혼자서 바닥에 묻은 쥐의 오줌과 피를 걸레로 닦았다고 털어놨다. 나는 직감적으로 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