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히 그 수위는 입원 3주 만에 완쾌되어 퇴원했다. 나는 한 달 후인 1980년 1월 들쥐 채집 전문가인 김수암씨를 수위가 근무하고 있는 남아현아파트에 파견해 집쥐를 잡기 시작했다. 이 아파트의 지하에 있는 슈퍼마켓에서는 식품과 채소, 생선들을 팔았는데 알고 보니 이곳이 집쥐의 소굴이었다.
우리는 이곳에 쥐틀 20개를 설치하고 쥐를 잡으려 했으나 생각처럼 잘 잡히지 않았다. 들쥐보다 집쥐가 훨씬 영악하기 때문이다. 1주일 동안 고작 10마리만 잡았다. 그런데 이 중 4마리의 폐장에서 지금까지 보지 못한 새로운 바이러스가 발견됐다. 기존 한탄바이러스의 중화항체법으로는 찾아낼 수 없는 전혀 다른 바이러스였다.
우리는 집쥐의 채집 영역을 확대해 서울 시내는 물론 의정부와 부천, 성남, 안양 등지에서 5백여 마리의 집쥐를 잡아 조사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모든 지역에서 채집한 12%의, 집쥐가 새로운 바이러스에 감염돼 있는 것이 아닌가. 들쥐가 아닌 집쥐에서 한탄바이러스와 유사한 바이러스가 발견되니 것은 큰 의미를 지닌다. 도시는 인구가 밀집해 있으므로 집쥐를 통해 바이러스가 창궐하면 희생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며, 또 전 세계 어느 곳에든 집쥐는 있기 때문이다.
나는 수년간의 연구 끝에 1985년 이 바이러스를 서울바이러스로 명명하고 학계에 공식 보고 후 호적에 등록했다. 아직도 많은 이들은 나에게 하필 서울이란 도시 이름을 땄느냐며 반문하곤 한다. 바이러스에 이름을 붙이는데 굳이 서울이란 거대도시를 들먹이기보다 아현동에서 발견했으므로 아현바이러스라고 이름 붙여도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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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80년 서울 서대문구 남아현아파트 지하상가에서 자은 집쥐에서 서울 바이러스를 처음 발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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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엔 이유가 있다. 내가 처음 등줄쥐에서 발견한 바이러스를 한탄강의 이름을 따 한탄바이러스라 명명했으나 국제학계에서 아무도 그 뜻을 잘 알지 못했다. 한탄강이 고유명사인 건 분명한데 그것이 한국에 있는 강 이름인 줄은 아무도 몰랐다.
한국인 학자가 발견해 명명한 바이러스의 학명임을 알리기 위해 붙인 이름인데 이렇게 되면 무용지물이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나온 고육지책이 바로 서울이란 이름이었다. 아현동은 아무도 모르지만 그래도 서울 하면 대한민국 수도란 것은 세계인들도 쉽게 알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어찌 되었건 서울바이러스의 발견은 쥐를 잡다가 감염돼 죽다 살아난 수위 아저씨의 공이 절대적으로 컸다.
한탄바이러스만 하더라도 나의 연구와 관련돼 감염된 사람이 공식집계로만 10만 명이나 된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감염되지 않았지만 지금 생각해도 이들에겐 미안한 심정이다. 이 중에서 특별히 기억나는 사건이 있어 소개할까 한다.
1979년 1월 23일, 신문과 방송에 종로구 명륜동에 있는 중국음식점 주인 한 명이 유행성출혈열에 감염됐다는 소식이 보도됐다. 그런데 나도 모르는 사실이 처음으로 보도되자 나는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우리 연구소에서 실험동물을 사육하는 동물실은 외부인은 알지도 못하는 보건전문대학이 있는 별관 4층 옥상에 있었고, 출입문 앞에는 대문짝만하게 빨간색으로 ‘외부인 출입금지’와 ‘위험지역’이란 팻말이 두 개나 붙어 있었다.
더욱이 복도엔 철조망이 있었고 출입문에는 자물쇠까지 잠겨 있어 외부인의 출입은 완전히 봉쇄돼 있는데 연구원도 아닌 중국음식점 주인이 외상값을 받으러 내 동물실에 들어와 병에 걸렸다니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였다. 알고 봤더니 그는 우리 연구실에 중국음식을 배달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병원에 입원한 후 의사에게 발병 20일 전 우리 연구실로 외상값을 받으러 갔는데 마침 연구실에는 아무도 없었고 모두가 옥상의 동물실에 있다고 하기에 경고 문구를 무시한 채 동물실에 들어갔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의사가 출혈열을 연구하는 그곳에서 병에 걸렸을지도 모른다고 하자 보호자와 친척인 경찰관이 나를 찾아와 보상하라고 협박을 했다.
하지만 나는 중국음식점에도 쥐가 많아 아파트의 수위같이 병에 걸릴 수도 있고 또 동물실 출입 후 20일이나 지나 발병했다는 점을 들어 실험실 쥐로부터 감염됐을 가능성은 낮다고 반박했다. 대개 유행성출혈열은 쥐와 접촉 후 늦어도 2주일 이내 발병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