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실 연구원의 수난 (50화)

나는 중국음식점 주인이 발병 20일 전 동물실에 들렀고, 그가 운영하는 중국음식점에도 집쥐가 많다는 점을 들어 그가 걸린 유행성출혈열이 동물실의 실험용 흰쥐가 아니라 집쥐에서 감염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일이 있은 뒤 수위 등 대학 사무직원들 사이에 공포분위기가 조성됐다. 급기야 대학에선 우리 연구실에 대한 안전대책이 논의됐고 우리 연구실을 딴 곳으로 이전하고 동물실도 폐기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된다면 한창 연구에 물이 오른 나에겐 치명타가 아닐 수 없었다. 이수종 학장이 수습에 나서 다행히 동물실을 엄중히 격리하고 실험용 쥐 조직 소각기를 새로이 옥상에 설치하는 것으로 매듭지을 수 있었다. 이 사건은 미육군성에도 보고되어 안전대책이 논의되었다.

이때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미국이 내게 제안한 안전시설을 갖춘 실험동물용연구실 설립을 유치하지 못한 것이다. 나는 당시 미국육군의학연구개발사령부에 안전연구시설 지원을 요청했다. 그랬더니 사령관은 그 자리에서 동물실험용 안전 캐비닛 4대를 보내 주기로 약속하였다.

뿐만 아니라 실험동물을 완전 격리해 사육할 수 있는 안전연구소시설까지 지어 주겠다고 제의했으나 당시 혜화동 고려대의대 구내에는 그만한 부지가 없어 받아들이지 못했다. 장소만 있었더라면 당시 돈으로 1백만 달러에 달하는 동물실험용 안전연구시설이 국내 최초로 설립될 수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안타깝기 그지없다.

내가 유행성출혈열 연구에 매달린 기간은 30년이 넘고 그동안 12명의, 연구원이 나와 같이 일했다. 그런데 그 중 10명이 동물실과 야외에서 일하다가 유행성출혈열에 걸렸으나 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은 나와 이평우 교수뿐이다.

나는 이때부터 바이러스 실험실과 동물사육실의 안전문제에 큰 관심을 갖게 됐다. 우리 연구실뿐 아니라 당시 많은 대학과 기업연구소 연구실에서도 실험용 쥐를 기르고 실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문제가 발생하여 조사한 곳이 경희대의대 동물실이었다.

▲ 978년 헬싱키대학 초청으로 핀란드를 처음 방문하고 환자가 처음 발생한 지역을 시찰했다 / 왼쪽이 바헤리 교수, 오른쪽이 코루벤콘디오 교수

모두 58마리의 흰쥐를 조사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 중 8마리의 폐에서 서울바이러스가 검출됐다. 이곳에서 일하던 직원 13명의 피를 뽑아 혈청을 조사했더니 2명에게서 서울바이러스에 대한 항체 양성반응이 나타났다.

흥미 있는 사실은 이들 두 사람이 2년 전 심한 독감에 걸려 병원에서 고생했다는 것이다. 그들의 입원기록을 살펴보니 고열과 구토, 두통, 요통, 혈뇨와 단백뇨 등의 증상이 있었는데도 의사들은 독감으로 오진한 것이었다. 소변검사에서 혈뇨가 나온 것으로 보아 조금만 더 섬세하게 환자를 관찰했으면 유행성출혈열로 진단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후 전매청과 서울대, 국립보건원 등 여러 연구소의 실험용 쥐를 일제히 조사했는데 모두 비슷한 양성 결과를 얻었다. 놀라운 것은 S약대 연구실의 경우 동물실험실 근무자들에게 오래전부터 괴질이 돌았는데 이를 인간 메스에 찢겨 죽은 실험용 쥐들의 저주쯤으로 생각하고 매년 봄 고사를 지내기도 했다는 것이다.

독자 여러분도 혹시 쥐를 가까이 한 뒤 고열과 몸살 증상 그리고 소변에 피가 나타나면 독감으로 속단하지 말고 유행성출혈열을 의심해 보기 바란다. 산과 들 그리고 논둑에 많은 등줄쥐뿐만 아니라 집쥐도 바이러스를 갖고 있으니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유행성출혈열은 등줄쥐의 한탄바이러스나 집쥐의 서울바이러스 할 것 없이 쥐의 배설물인 소변, 대변과 타액에서 나온 바이러스가 흙 속에서 건조되어 먼지와 함께 공기를 통해 폐로 감염된다. 쥐의 배설물이 비나 홍수로 인해 확산되는 상황에서는 훨씬 감염될 확률이 높아진다.

1990년 여름, 집중호우로 한강이 넘쳐 풍납동에 있는 서울중앙병원이 물에 잠기는 소동이 있었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이 병원 구내 동물실 청소부 한 명이 유행성출혈열과 유사한 증상으로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이를 수상하게 여긴 배직현 임상병리학과 교수가 내게 그 환자의 혈액검사를 의뢰했다.

환자는 유행성출혈열로 판명되었고, 역시 이곳 실험실의 많은 흰쥐가 서울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있음이 발견됐다. 그 후 중앙병원 동물실의 쥐들을 모두 도살함으로써 더 이상의 악화를 막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