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터리 질병 통계 (52화)

나는 1976년 유행성출혈열의 병원체를 발견한 후, 세계 최초로 한탄바이러스를 이용해 출혈열환자의 진단법을 완성하였다. 그리하여 우리 연구소에서는 전 세계에서 발생한 출혈열로 의심되는 환자의 혈청을 검사하여 감별진단을 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서울에 있는 병원에 입원한 환자 중에서 출혈열로 진단된 환자 수만도 500~800명에 달하였다. 이들 환자는 대부분이 서울시내 및 서울시 근교의 대학병원과 종합병원에 입원한 환자 중에서도 우리 연구소에 검사를 의뢰한 환자였기 때문에 전국에서 발생하고 있는 출혈열 환자 수는 알 수 없었지만 인구와 지역에 비례하여 계산하면 적어도 2,000명 이상의 환자가 있다고 추산할 수 있었다.

유행성출혈열 환자는 발생 지역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전국에서 발생하고 있었으며 바이러스를 갖고 있는 등줄쥐도 전국에 분포되어 있다. 특히 38선 근처와 강원도, 경기도 및 경상북도에 환자가 많았다. 또 군대에서도 매년 백여 명의 환자가 국군통합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고 있었다. 그런데도 보사부 질병통계에 나타난 출혈열 환자 수는 매년 20~50명에 불과하였다.

세계보건기구 지정 출혈열 연구센터인 우리 연구소가 세계보건기구에 보고하는 숫자와 보사부에서 발표하는 숫자가 너무나 차이가 나기 때문에 왜 이같이 우리나라의 중요한 법정전염병의 통계가 사실과 다르며 믿을 수 없게 되었는지를 조사해 보았다. 정확한 전염통계가 있어야만 정부가 국민을 위한 올바른 대책을 수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매년 개최되는 바이러스학회나 전염병학회 학술대회에서 발표하는 환자 수를 보사부 직원들이 보면 쉽게 수백 명의 출혈열 환자가 매년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이를 무시하고 국립보건원에서 검사한 숫자만을 통계에 발표했던 것이다. 시끄럽게 환자가 여기저기 새로운 곳에서 발생한다는 사실이 신문에 보도되면 정부는 대책을 급히 세워야 하고 또 이때까지 정부가 발표한 질병 통계가 엉터리라는 사실이 신문에 밝혀지면 골치가 아프기 때문에 항상 공무원들은 무난한 것을 좋아했다. 쉽게 말해 공무원은 시끄러운 일은 피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시골에 가서 개업하고 있는 의사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 보니 다음과 같았다. 전형적인 임상증상을 나타내는 심한 출혈열환자는 보기만 해도 쉽게 진단할 수 있다고 했다. 사실이다. 의사가 그런 환자를 발견하면 즉시 면에 있는 보건소에 보고하며 면 보건소는 군 보건소, 군 보건소는 도에 보고하고, 또 도에서는 서울에 있는 보사부에 보고한다고 한다. 유행성 출혈열은 우리나라의 제2종 법정전염병이기 때문에 보고할 의무가 있다.

▲ 유행성출혈열의 위험성을 보도한 매앨경제 기사 (1991. 9. 23.)

그런데 보사부에서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보고한 도에, 또 도에서는 보고한 지방 보건소장에게 보고한 의사가 어떤 혈청학적 진단과 방법으로 출혈열 환자로 진단하였는지 정확하게 조사를 하여 다시 보고하라는 지시가 내려온다는 것이다. 1991년에 진단키트가 나왔기 때문에 그 전에는 시골에서 혈청학적 진단은 할 수 없었고 임상증상으로 진단했다. 보사부에서는 개업의사의 보고를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결국 면 보건소장은 환자를 보고한 시골의사를 호출하여 장시간 시끄럽게 상부에서 지적한 상황을 추궁하게 되고, 의사는 여러 번 보건소에 불려 가게 되니 자기 환자를 못 보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일을 한두 번 당한 의사는 개업에 지장이 있고 기분도 나쁘기 때문에 두 번 다시 보고를 하지 않게 된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보건소나 보사부는 전염병환자 발생 보고를 받지 않게 되고 한자는 없는 것으로 되어 버리는 것이다.

나는 매년 출혈열의 유행시기인 10~12월에는 역학조사차 환자 다발발생지역인 연천이나 횡성 지역에 갔는데 거기에서 비참한 일들을 목격하였다. 농사짓는 사람들은 거의가 노인인데, 매년 환자가 있었으며 앞 동네 누구 집에는 현재 출혈열로 앓고 있는 사람이 있고 뒷동네에서는 며칠 전에 한 사람이 출혈열로 사망하였다는 말들을 자주 들었다. 병원이 멀기도 하고 돈도 없어 병원에 가 보지도 못하고 죽어 가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에 있는 것이다.

이 병으로 병원에 가면 적어도 약 10일간 입원해야 하고 최소한 150~200만 원의 치료비가 소요되는데 이런 돈은 소를 팔거나 방 한 칸이라도 내놓아야 얻을 수 있는 큰돈이다. 그렇게도 할 수 없는 그들은 그냥 집에서 앓다가 마는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을 서울에 있는 공무원들은 모르고 있는 것이다. 만일에 알고도 모른 척했다면 공무유기뿐만 아니라 죄악이다. 환자 수를 숨기거나 줄이는 것은 독재국가나 후진국에서 하던 버릇이다. 선진국 대열에 끼려면 우리의 의식구조는 변해야 한다. 나라의 힘은 불평을 하지 않는 건강하고 온순한 국민에 있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가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