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7월 8일~23일까지 아주 순방에 올랐다. 방문지는 라오스, 미얀마, 네팔, 인도 및 싱가포르 등이었고 유종하 과장이 수행하였다. 7월 9일부터 11일까지는 라오스(Laos)를 방문, 수상 수바나 푸마(Prince Souvanna Phouma)공을 만나 국교수립을 협의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비가 새는 비행기를 타는 괴이한 경험을 한 기억이 난다. 비엥티안느(Vientiane)에서 방콕으로 나올 때의 일이다. 구름이 낮게 끼어 비행기가 구름 속으로 날고 있었다. 나는 문 옆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머리 위에서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위를 쳐다보니 문 사이에 틈이 있어서 그 사이로 비가 새는 것이었다. 비행 고도가 높지 않아 그래도 괜찮은 모양이었다.
1972년 7월 15일―17일 네팔 왕국을 친선방문하여 키르티 니디 비스타 수상을 예방하였고, 돌아오는 길에 7월 17일부터 19일까지 인도를 방문하여 인디라 간디 수상을 예방하였다. 간디 수상은 작은 키에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었는데, 내가 한국의 정부 수립 및 6․25전쟁, 휴전 및 포로 문제 해결 과정에서 인도가 제공한 유익한 역할에 대하여 감사를 표한 데 대하여 묵묵히 듣고만 있다가 앞으로 한국-인도 관계의 일층 발전을 희망한다고 짤막하게 인사를 하였다.
후에 안 일이지만 간디 수상은 나와 만나기 직전에 내각회의에서 파키스탄과의 전쟁을 결의하였다고 하는데, 나와 면담할 때 아직도 그 긴장에서 깨어나지 못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 외에 스와란 싱(Swaran Singh) 외상 및 미쉬라(L. N. Mishra) 대외무역상과 면담하였다. 당시 인도에는 최운상 총영사가 주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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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디라 간디 수상을 접견하고 / 오른쪽은 최운상 총영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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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아프가니스탄(Afganistan)을 친선 방문하여 국왕 모하마드 자이르 샤(Mohammad Zahir Shah)를 예방, 정부 관료와 경제협력에 대하여 의견을 교환했다. 수도 카불(Kabul)은 주위가 산악으로 둘러싸여 1930년대의 서울과 흡사한 인상을 주는 도시였다. 파키스탄과의 국경 카이버 파스(Kyber Pass) 근처 지방까지 시찰하며 척박한 산골짜기 주민들의 생활을 관찰하였다.
1973년 3월 22일~29일 기간에는 친선 사절로 베네수엘라(Venezuela), 가이아나(Guiana), 트리니다드 토바고(Trinidad & Tobago)를 순방하였다. 이 지역과의 통상 증대와 북한의 침투를 방지하려는 것이 방문의 목적이었다.
1973년 12월 김용식 장관이 통일원장으로 자리를 옮기고 김동조 주미대사가 외무부장관으로 임명되었다. 김동조 장관도 1954년 이래 국장 또는 차관으로 모시던 상관으로, 그 분도 내가 계속 차관으로서 보좌하여 주기를 희망하였으나 4년 이상이나 한 자리에 있었으므로 이동하는 것이 인사의 상식으로 인정되어 재외 공관으로 내보내기로 되었다. 마침 프랑스에 자리가 나게 되어 주 프랑스 대사로 나가기로 결정되었다.
1974년 2월 4일자로 주불대사 발령을 받아 그 해 3월초에 파리(Paris)에 부임하였다. 신임장 제정은 당시 퐁피두(George Pompidou) 대통령이 심장질환으로 요양 중이어서 그의 회복을 기다리다가 3월 22일에 하기로 결정하였다.
신임장 제정식에서 구두로 제정사를 하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으나 퐁피두 대통령은 건강 사절 때문인지 연설 없이 신임장을 접수하고 나와 함께 사진을 찍은 후 옆에 있는 좌석에 앉았다.
나는 박대통령의 인사를 전달한 후 양국 간의 우호 협력을 일층 증진하기 위하여 진력하겠다고 말하였다. 이에 대하여 퐁피두 대통령은, 프랑스는 한국과의 우의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으며, 자기와 자기의 정부는 이를 위하여 모든 가능한 노력과 협조를 하겠다고 말하고, 이로써 신임장 제정식은 간단히 끝났다.
그런데 그날 신문에 한국대사의 신임장 제정 기사가 제1면에 사진과 함께 크게 게재되었다. 며칠 후 미국의 패터슨이 워싱턴 포스트(Washington Post)지에 난 나의 신임장 제정 사진을 클리핑해서 보내면서 내가 일약 세계적인 인물이 되었다고 토를 달았다.
당시 퐁피두 대통령이 외교단 만찬 직전에 심장마비로 와병하여 만찬을 그의 부인이 주재한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는데, 이로 인하여 퐁피두 대통령의 재기 가능 여부가 프랑스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관심사가 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엘리제궁에서는 대통령의 집무 재개(再開) 사진을 제공하며 대대적으로 홍보를 한 것이었다.
그러나 퐁피두 대통령은 그 후 열흘만인 4월 2일 서거하여 국장을 치르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김종필(金鍾泌) 국무총리가 조위사절로 와서 노트르담(Notre Dame)사원에서 행해진 영결식에 참석하였다.
귀국에 앞서 김 총리는 지스카르 데스탱(Valery Giscard d’Estaing) 재무장관을 방문하여 한불 양국 간의 경제관계 발전과 금융기관 교환에 대하여 협의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