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京城)공업학교 시절의 해프닝
그날도 나는 학교를 마치고 여느 때처럼 영등포역에서 기차를 탔다. 수원 집에서 서울 대방동의 경성공업학교를 오가는 등하교 통학은 매일 대 여섯 시간을 허비해야 했다.
연착 없이 간다고 해도 수원까지는 세 시간은 족히 걸릴 것이다. 나는 다소 피곤함을 느끼며 2등 칸을 지나 3등 칸으로 들어섰다. 그러다가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멈추어 섰다. 엄마! 꿈에도 그리던 엄마가 있는 게 아닌가.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저쪽 의자에 앉아 있는 엄마의 모습, 다섯 살 때 헤어지고 열 살 때 잠깐 본 엄마의 얼굴….
얼마나 보고 싶고 그리운 엄마인가? 나는 엄마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한 발 한 발 다가갔다.
“학생, 왜 그렇게 쳐다봐?”
“엄마…!”
신음처럼 내 입에서 엄마라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러나 엄마는 멍하니 나를 위아래로 훑어볼 뿐이었다.
“아니, 내가 왜 학생의 엄마야?”
“우리 엄마… 아닌가요…?”
“난 학생의 엄마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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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0년대 영등포역 앞 거리 / 나는 40년대 초까지 이 거리를 오가며 경성공업학교를 통학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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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아닌 엄마를 닮은 아주머니였다.
“저는 우리 엄마인 줄 알았어요….”
실망한 나의 눈에는 어느덧 눈물이 고였다. 아주머니는 저간의 사정을 짐작한 듯 내 등을 다독거려주었다. 그러나 내 눈에서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꾹꾹 참았던 그리움과 외로움이 봇물처럼 터지듯이.
나의 성장기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엄한 아버지의 양육으로 점철되었다. 그것이 나의 삶과 인생의 항로에 깊게 투영(投影)되었으리라.
나의 출생(出生)과 선조(先祖)
나는 1927년 본관이 강릉(江陵)인 아버지 최선규(崔善圭) 씨와 전주(全州)인 어머니 이치금(李稚今) 씨 사이에서 2남 중 둘째로 태어났다. 내가 태어난 곳은 서울 동대문구 창신동이지만 선대(先代)가 대대로 살아온 곳은 충남보령(保寧)이다. 우리 선대가 보령에 자리를 잡게 된 때는 조선 선조(宣祖) 25년 임진왜란 때부터다. 지금으로 치면 청와대 비서 격인 승지공(承旨公) 할아버지께서 일본군을 피해 피난길에 오른 선조를 수행하게 되자 부인인 윤(尹)씨 할머니가 아들 둘을 데리고 친정인 보령으로 내려오며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고 전한다.
여기서 강릉 최씨 유래를 잠깐 살펴보기로 한다. 강릉 최씨는 본관을 같이 하면서도 상계(上系)를 달리 하는 다음 3계통(系統)이 있다.
첫째는 고려 때 삼중대광(三重大匡)으로 삼한벽상 개국찬화공신(三韓壁上開國贊化功臣)에 책록되어 영첨의좌정승(領僉議左政丞)을 역임한 후 경흥부원군(慶興府院君)에 봉해졌던 충무공(忠武公) 최필달(崔必達)의 계통이다. 둘째는 고려 태조(太祖)의 부마(駙馬)로 대경(大卿)에 올랐던 최흔봉(崔欣奉)의 계통이다. 셋째는 고려 충숙왕(忠肅王)의 부마(駙馬)로 삼중대광(三重大匡) 판군기시사(判軍器寺事)에 올랐던 충재(忠齋) 최문한(崔文漢)을 시조(始祖)로 하는 계통이다.
나는 3계통 중 최필달 파에 속한다. 보령으로 내려올 때의 윤 씨 부인이 18대 손이고 나는 34대 손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