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딱한 사고뭉치 (8회)

반면에 나는 말썽도 많이 피운 사고뭉치였다. 나는 교장이고 선생님이고 별로 무서워하지 않았다. 아마도 ‘우리 아버지가 지서주임이다.’ 이런 의식이 깔려 있었지 않나 싶다. 아버지를 무서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빽’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사실 제복에 긴 칼을 차고 있는 경찰은 보통사람들 입장에서는 무서운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한 번은 아버지가 담배를 사와 철갑으로 된 담배통에 옮겨 담고, 빈 갑을 버렸다. 나는 그 빈 담배갑을 주워 와 수수대의 껍질을 벗기고 담배개비 크기와 모양으로 잘라서 담았다. 다시 포장을 하니 겉으로는 영락없는 새 담배였다. 나는 그것을 가지고 아침출근 시간에 맞추어 담임선생님 집 앞으로 갔다. 그리고 대문 앞에 슬쩍 던져 놓았다.

나는 볏 짚단 뒤에 숨어서 선생님이 출근하기 위해 대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얼마 후 대문이 열리고 선생님이 나타났다. 선생님은 대문을 열고 나오다가 담배를 발견하고 주워들었다. 담배가 가득 들어있으니 그대로 주머니에 쓱 넣고 갔다. 그 순간 내가 박수갈채를 하며 도망쳤다. 그런 나를 보며 속은 것을 안 선생님은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이놈의 새끼가 선생님을 놀려!”라며 소리쳤다.

내가 글씨를 잘 썼다. 그래서 ‘입춘대길(立春大吉)’ 같은 글씨도 내가 도맡아 썼는데, 그럴 때면 여러 장을 써 할아버지가 마을의 가가호호에 나누어 주었다. 그러니 학교에서 나는 언제나 붓글씨 점수는 10점 만점이었다. 그런데 가짜담배 사건이 있은 후로는 8점을 주었다. 나는 그때 담임선생님이 괘씸죄로 그런다고 생각하고 속으로 더 삐딱해졌다.

▲ 일제강점기 국민학교 수업광경 / 일제가 국민학교로 개칭한 것은 황국신민화의 일환이었다

마침내 어느 날 나는 8점 점수를 매겨서 책상에 올려놓은 글씨 습자지에 불 붙였다. 선생님이 놀라가지고 바케스에 물을 푸다가 불을 껐다. 습자지가 활활 타며 책상에까지 불이 옮겨 붙으려고 할 정도로 대소동이었다.

그렇게 초등학교 시절을 보내며 졸업을 맞게 되었다. 심상소학교를 졸업하고 나는 ‘갑종(甲種)’ 공업학교인 경성(京城)공업학교로 진학했다. 그때만 해도 조선반도에 갑종 공업학교는 경성공고 하나밖에 없었다. 다 ‘을종(乙種)’이었고, 을종도 대도시에 하나씩 있을까 말까했다. 을종은 3년제, 갑종은 5년제였는데, 조선에서 경성공업학교만 5년제였던 것이다. 그러니까 전국의 수재들이 몰려들었고 입학이 아주 치열했다. 조선인은 웬만치 공부해서는 뽑히지도 않았다.

내가 일본관련 책들인 학교문고를 다 떼어서 일본역사에 대해서 잘 안다는 것이 큰 장점이었다. 가령 시험에 일본천황을 열거해보라는 문제가 나왔다. 일본천황이 그때 267대인가 그랬는데 나는 막힘없이 주루룩 외웠다. 그러니 조선인임에도 불구하고, 유일한 갑종학교라는 그 어려운 관문을 뚫고 무사히 합격을 하게 되었다.

사실 심상소학교의 일본인 담임선생님은 내게 사범학교로 갈 것을 권했다. 그래서 나는 내심 <경성사범(京城師範)학교>에 가려고 작정을 하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반대하셨다. 아버지는 “앞으로 세상은 공업화가 된다, 그러니 기술자가 되어야 한다.”라며 공업학교로 갈 것을 강권하셨다.

내가 아버지의 뜻대로 공업학교로 가겠다고 하자 담임선생님은 “경성공업학교는 일본인만 뽑는다”며 반대했다. 그러자 아버지가 직접 경성공업학교에 찾아 가서 조선인도 뽑는다는 것을 확인하고 입학원서까지 받아오셨다. 그만큼 아버지의 뜻이 강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