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기는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첫 입교생이기 때문에 사실상 1기로 쳐주기도 한다. 공식적으로는 8기로 칭하나 우리는 정신적으로는 1기라는 프라이드가 있다. 또 8기는 생도 수가 1350여명이 된다. 이는 8, 9기를 한꺼번에 입교시켰기 때문이었다. 8기생은 8개월, 9기생은 1년, 이렇게 단기 교육과정을 받았는데 한꺼번에 다 입교시킨 것이다.
1948년 11월, 나는 청운의 꿈을 안고 육사 생도로서 생활을 시작했다. 나는 구대에서 2등 정도의 성적으로 선두권을 달렸으나 한 사건으로 인해 거의 낙제수준으로 떨어졌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는 거지만 그때는 꽤 심각한 문제였다. 나는 가출한 상태였으니 가족이 면회를 오는 경우는 없었으나, 가정교사 집 아주머니가 가끔 면회를 왔다. 아주머니는 올 때마다 건포, 미수가루 같은 먹을 것을 가지고 왔다.
당시 육군사관학교의 급식은 형편없었다. 나는 아주머니가 주고 간 음식들을 침대 밑에 감춰놓고 배고플 때마다 몰래 꺼내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 구대장한테 발각되었다. 참고로 구대장은 일반 학교로 치면 담임선생이나 마찬가지다. 그날따라 우리 구대장이 주번사령이 됐는데 침대 정리정돈 검사를 하다가 내가 침대 밑에 숨겨 놓은 음식을 발견하고 전부 압수해갔다.
그런 군것질 거리가 나오면 대개는 상품(賞品)으로 걸어 구대별로 씨름이나 기마전을 해서 이기는 구대가 다 먹는 놀이를 했다. 그런데 우리 구대장은 그 음식을 다 압수해가더니 어떻게 했는지 일절 소식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생도 몇 명과 함께 “구대장이 다 먹은 것 아니냐?” 이런 불만을 투덜거리며 수군거렸다. 그런데 그 소리를 구대장이 다 들었다.
구대장 험담을 한 것으로 되어서 나는 그때부터 겨우 낙제점을 면할 정도로 점수가 나쁘게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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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46년 5월 1일 개교한 육군사관학교의 전신인 조선경비사관학교 정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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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000ｍ 뛰기를 해도 다른 생도보다 항상 앞섰다. 그런데 구대장의 괘씸죄에 걸려 점수 불이익을 받다보니 임관할 때 군번이 조금 늦게 나왔다. 그러나 큰 영향은 없었다. 8개월여의 정규 육사 교육과정을 마치고 1949년 5월 23일 소위로 임관했는데, 1345명이 나오는데서 나는 서빙고동에 있는 수도사단 9연대에 배속되었다.
태백산, 지리산 쪽으로 가지 않고 서울에 떨어진 것은 행운이었다. 수도사단이 서울에 가지고 있는 연대는 9연대 하나였다. 1연대는 의정부에, 17연대는 시흥에 있었다. 당시 9연대장은 장도영(張都暎)장군이었고 연대부관참모는 최세인(崔世寅) 대위였다.
소위로 임관된 나는 9연대 1대대 4중대 소대장 보직을 받았다. 4중대는 중화기중대였다. 그러니까 나는 중기관총을 가지고 있는 중대 안의 기관포, 박격포 등을 다루는 중기소대장이 된 것이다. 그런데 육사교육 과정이 단축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중화기 다루는 법을 못 배우고 졸업했다.
나는 4중대 중화기 중대로 배치되면서 “큰일 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정을 떠나 소대장이 중기관총을 다루지 못한다면 소대원들한테 영이 설 수 없는 것이다. 실제 소대원 훈련시키는데, 소대장인 나는 서 있고 선임하사가 지휘를 했다.
나는 중기관총을 빨리 배워야 하고, 그렇게 하려면 선임하사를 꽉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부하라고 해서 소리 지르거나, 우격다짐으로 따라오게 하는 것은 설복력 있는 통솔이 아니다. 감동을 줘야 따라오는 거다. 선임하사는 나의 진심을 알고 잘 따라주었다. 나는 선임하사한테 중기관총 다루는 법을 배웠다. 선임하사 신세를 많이 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