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김포에 공병학교가 있었다. 공병대로 보직이 결정된 나는 공병학교에 입교해 하루에 8시간씩 한 달 동안 공병의 기초와 기술을 배웠다. 그런데 이때 나는 뜻 하지 않은 사건을 맞기도 했다.
나는 당시 주번사관을 도맡아 했다. 가출한 후로 여전히 집과 단절하고 있었으니 주말에도 딱히 갈 데가 없었으므로 다 기피하는 주번사관을 내가 도맡아 한 것이다. 그때 아침조회, 취침나팔이 주번사관 지휘 하에 있었고 중대 전체를 지휘했는데 다들 나를 좋아했다.
그때는 정량급식이 최고인데 정량의 반밖에 안 되었다. 그런 상태라 사병들이 항상 불만이었고 주번사관으로서는 당연히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나는 어느 날 취사반으로 가 취사반장에게 “사병들이 항상 배고파하는데 급식을 제대로 정량으로 달라.”고 부탁하고 왔다. 그런데 그 후 주번하사관이 취사반에 불려가 “주면 주는 대로 먹지, 무슨 불만이 많느냐.”며 침대각목으로 흠씬 두들겨 맞았다.
9연대 주번하사관은 일등중사나 마찬가지지만 학교 내에서는 피교육자라 계급장을 못 붙일 뿐이었다. 더구나 주번하사관은 주번사관을 보좌하는 임무를 갖고 있었다. 급식을 제대로 주지 않는 것도 문제인데, 정량을 달라는 것을 불만이라며 내 직속 부하를 두들겨 패는 것은 나로서는 묵과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취사반으로 쫒아가 취사반장(이등 상사)을 똑같이 침대각목으로 두들겨 팼다. 학교 주번사령이 놀라서 쫓아와 뜯어 말릴 정도로 시끌벅적한 소동이었다. 그 후 취사반장이 나를 고소했고, 나도 역시 그를 고소했다.
이 사건으로 나는 징계위원회에서 ‘주번사관이라고 해서 때려도 되느냐’며 ‘엄중근신’ 처분을 받았다. 자칫 그때 나는 면직이나 불명예제대 같은 중징계를 받고 군복을 벗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육사 1기로 소령인 징계위원장이 “사병의 애로사항을 해결하기 위한 과정에서 그와 같은 행동을 한 것이기 때문에 정상참작을 해야 한다”며 봐주었기 때문에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1949년 말 나는 김포의 육군 공병학교 교육과정을 마치고 창설하는 수도사단 공병대대의 3중대 소대장으로 발령받아 갔다. 당시 공병대는 삼각지의 육군본부에 있었다. 여전히 집과 단절한 처지였던 나는 영내(營內) 거주를 했다.
부임 받아 가니 새로 만든 소대지만 교육을 얼마나 잘해놨는지 체계가 잘 잡혀 있었다. 천막에 들어서면 소대장 침소가 있고 당번병, 선임하사관이 지근거리에 있었다.
나는 여기서도 주번사관을 도맡아 했다. 내가 주번사관을 하면 사병들이 굉장히 좋아했다. 급식도 충분히 나오게 하고 애로사항을 해결하려고 세심히 신경 썼기 때문이다. 당시는 후생복지가 열악한 때라 사병들이 감기라든가 이런 저런 질병에 많이 시달렸다. 그런데 위생관에 가면 치료는커녕 꾀병 부린다고 얻어터지기 일쑤였다. 그래서 나는 사병들을 직접 인솔해 사단본부에 있는 위생관에 가서 약 타 먹이고 주사를 맞히는 등 세심하게 챙겼다. 대개 그런 것은 주번하사관이 하는 일이었지만 내가 직접 인솔해 가야 제대로 치료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당번병은 항상 내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며 수발을 들었다. 가령 칫솔에 치약을 발라주어 그것으로 양치를 하고, 비누를 주면 세수하는 식이었다. 나는 그런 식으로 당번병을 부리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생각하고 선임하사를 불렀다.
“집에서는 귀중한 아들인데 여기 와서 소대장 수발이나 하고… 그래서야 되겠는가. 그것은 조국에다 하는 것이지 소대장한테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렇게 배웠다!”
그렇게 당번병의 수발을 중단시켰는데 이것이 대번에 전 중대에 퍼졌다. 이러다보니 본의 아니게 사병들로부터 좋은 평판을 받게 되었다.
몇 푼 되지는 않았지만 소대장 월급이 있었다. 나는 월급을 털어 담배, 과자를 사서 상품(賞品)으로 걸고 소대 대항 씨름대회나 기마전을 벌였다. 오락은 사병들의 고되고 따분한 병영생활에 활력소가 되었다. 그런 스킨십을 하다 보니 사병들이 나를 어려워하면서도 잘 따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