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의 전조(前兆) (15회)

당시 하루 일과를 간단히 소개하면 이렇다. 아침 5시 30분에 일어나 무장(武裝)을 하고 한강까지 뛰어간다. 당시 ‘MI’소총은 정예부대인 수도사단만이 갖고 있었다. 우리는 MI소총을 ‘앞에 총’ 하고 배낭 짊어지고 한강까지 뛰었다. 한강에 도착하면 거총(据銃)을 하고 한강 물에 세수를 했다.

그리고 6시까지 부대로 돌아와 점호를 했다. 낮에는 남산, 삼각지, 해방촌 등지에서 훈련을 했다. 또 한강에 가서 수중폭발, 한강 모래사장에 다리 놓는 훈련 등을 했다. 당시 마포에 가면 당인리 발전소가 있었다. 그 앞이 발전소 영역이니까 일절 접근금지였는데 보트를 타고 상륙작전을 한 기억도 난다.

임관(任官) 1년여. 1950년 5월 나는 중위로 진급했다. 그 한 달 후 민족의 비극, 한국전쟁이 발발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러나 남침의 전조는 있었다. 인민군이 3·8선으로 집결한다는 동향보고가 있었음에도 군 수뇌부가 이를 묵살했고, 그래서 비극을 자초했다고 나는 본다.

6·25 일주일 전 일본군 출신들이 대거 일선 사단장으로 나왔다. 1사단, 6사단, 수도사단인 7사단, 8사단장 등의 인사이동이 있었다. 그때 1연대장이 원주의 6사단장, 백선엽 장군이 1사단장, 7사단장은 이준식 장군에서 유재흥 장군으로 교체되었다. 일선 사단장이 바뀌며 그 휘하의 연대장까지 전부 교체되었다. 사단장이 한번 바뀌면 일선시찰, 현황파악 하느라 족히 한 달여가 걸린다.

▲ 6.25 직전, 미군이 진주한 남한과 소련이 진주한 북한을 나누고 있던 3.8선을 사이에 두고 발생하는 크고 작은 분쟁은 전쟁 발발의 전조였다

사단장 교체로 우리 수도사단도 6·25 일주일 전 전 부대의 인사이동이 있었다. 1연대가 의정부, 동두천 일대를 지켰고, 9연대가 서빙고에서 이동해 포천 만세교 일대를 지켰고, 17연대가 떨어져 나가고 18연대가 수도사단으로 배속되어 서울에 있었다. 그러니까 인민군이 남침할 때 최단거리 전면에 있는 부대의 지휘관이 전부 교체된 것이다. 또한 6·25 전날 밤 채병덕(蔡秉德) 육군참모총장이 전 지휘관들과 인사(人事)축하 파티를 하며 밤새도록 술을 마셨다.

게다가 모내기철이어서 장병들을 대거 농번기휴가를 보냈다. 그래서 6·25 당일 연대에 남아 있는 장병은 3분의 1밖에 안 되었다. 이상한 것은 그 전에 전쟁대비 한다고 휴가엄금, 외출금지를 하다가 6·25 직전에 해제했다는 것이다. 그때 인민군이 기습적으로 쳐들어 온 것이다. 우리의 몇 배 화력을 가지고 쳐들어왔는데 전군(全軍)이 맞붙어도 될까 말까 한데 병력이 3분의 1밖에 없었던 것이다.

6·25는 군부에서 충분히 감지하고도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는 점에서 참모총장과 사단장들의 위기의식 결여를 탓하지 않을 수 없다. 일어날 전쟁이었다고 하더라도 막을 수 있는 전쟁이었고 희생을 최소화 할 수 있었다는 면에서 지금도 그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6·25 전 우리 대대장은 유완식 소령에서 5기생인 최정훈 소령으로 교체되어 있었다. 그는 “3.8선이 심상찮다.” “적이 쳐들어 올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판단했다. 그런 까닭에 우리 1연대는 교량폭파와 지뢰매설을 준비해 놓았다. 3·8선 주변에서부터 내륙으로 들어오는 각종 교량의 양편에 구멍을 뚫고 전주(電柱) 자른 것을 집어넣어 유사시엔 그 구멍에 폭약을 장전해 폭파시킬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놓았던 것이다.

6·25직전 수도사단이 7사단으로 개편되었고 우리 공병대는 1개 대대가 있었다. 그런데 정황 상 우리 대대장이 북한의 프락치였을 개연성이 크다. 6월 25일 대대장의 결혼식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이는 간부들을 부대이탈 시키기 위한 고도의 위장책략이 아니었나 싶다. 그때는 결혼식에 들러리라는 게 있어서 사단장 참모를 하고 있는 대대장 동기생들이 들러리를 서기로 계획되어 있었다. 또한 우리 같은 소대장, 중대장들도 축하객으로 대거 참석하게 되어 있었다.

6·25 당일 대내(隊內) 간부들은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다 외출을 했고 사병들도 절반 이상이 농번기휴가로 부대를 비웠다. 나도 운현궁 근처 식장에서 있을 대대장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6월 24일, 그러니까 토요일에 부대를 나와 삼각지에 있는 민가 숙소에서 자고 있었다. 그런데 아침 8시 경 연락병이 급히 찾아왔다. 전쟁이 났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