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비상소집 전령(傳令)을 받고 황급히 부대가 있는 의정부로 향했다. 오전 10시쯤 부대에 도착했다.
엉겁결에 맞은 전쟁…. 우리는 당황했다. 부대에 도착하니 1중대, 2중대, 3중대 이런 편성조직은 무너지고 병장이고 장교고 오는 순서대로 30명씩 묶었다. 그리고 장교가 하나 있으면 “네가 여기 소대장이다!”라며 사병 30명을 묶어 트럭에 태워 동두천으로 보냈다. 그러니까 개인장비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탄약이 어떻습니다.” 이런 얘기 할 여유도 없이 전선으로 막 떠밀려 간 것이다. 나도 30명을 할당받아 “1연대 배속이다. 거기 가서 작전임무를 수행하라.”는 명령을 받고 동두천으로 향했다.
물론 작전참모의 지시를 받아서였겠지만 이를 지휘한 사람은 사단본부 사령부의 작전처에 있는 일개 중위였다. 그때 나를 포함한 소대장들도 5월 1일 부로 중위계급장을 달고 있었고 6·25를 맞을 때 3중대 9중대장이었다. 어쨌든 나는 30명의 장병을 이끌고 폭약과 중기관총 하나 없이 개인장비로는 소총 하나 달랑 들려서 전장(戰場)으로 향했다.
내가 소대를 이끌고 도착한 곳은 1연대 임시 지휘소인 의정부 덕정리였다. 도착하니 벌써 인민군의 습격으로 장교고 사병이고 간에 부상병들이 트럭에 실려 비명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걸 보니 나도 모르게 사기(士氣)가 푹 죽는 것이 느껴졌다. 북이 새벽 4시에 도발했는데 벌써 광릉-퇴계원-포천선까지 남하한 상태였다.
연대본부로 가니 지프 한 대를 세워놓고 함준호[咸俊鎬, 1921. - 1950. 6.27.] 1연대장이 무선 통신기기로 각 대대본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6·25 당일 엄청나게 비가 왔다. 함 1연대장은 비를 쫄딱 맞으며 무전기의 발전기 돌리는 일을 지휘하고 있었다. 내가 “공병대 명을 받고 1연대 배속되어서 왔습니다!”라고 보고를 하니 그는 “반갑다.”면서 “공병대가 일찍 왔어야 하는데….”라고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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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준호 1연대장 / 함준호 대령은 전쟁 발발 3일 후인 27일 창동전투에서 전사했다. 이 사진은 전쟁 기록필름에 나오는 장면으로 용케 생전에 찍혔다. 27일 전사했으니 25, 26일이나 혹은 전사 당일인 27일의 모습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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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만 우비를 입고 있을 수가 없어 연대장에게 우비를 덮어주었다. 그는 “고맙다.”며 그 당시에 ‘백구’라고 하는 담배 한 보로를 꺼내서 내게 주었다. 당시 백구는 가장 최고급 담배였다. 그 담배는 은사의 담배였다. 연대장은 나에게 인민군 전차에 맞서 결사대로 육박공격을 명령했기 때문이다. 결사대는 말 그대로 목숨을 거는 것이다.
속수무책(束手無策). 인민군 전차의 위력 앞에 연대장이나 소대장들이나 곤혹스럽긴 마찬가지였다. 내가 백구 담배를 피우며 “인민군 전차를 막을 길이 없다.”고 신음처럼 토로하자 연대장은 “공병대가 막아줘야 한다. 도리가 없다. 결사대를 짜가지고 가서 전차에 육탄공격을 해야 한다!”고 비명처럼 맞받았다. 명령이었다.
일본군 출신인 함준호 1연대장은 우리에게 가미가제식 작전명령을 내린 것이다. 그것도 낮 11시쯤, 백주(白晝)에 가라는 것이었다. 마침 그때 대전차지뢰(對戰車地雷)가 조달되었다.
사실 그때 나는 뚝배기 같은 물체에 고리가 달려 있는 대전차지뢰를 처음 보았다. 얼마나 우리가 현대식 무기훈련이 미비한 상태에서 전쟁을 맞았는지를 증좌(證左)하는 것이었다. 당시 우리가 얼마나 오합지졸이었느냐면 폐일언하고 소주병에 휘발유 넣어 심지를 꽂은 화염병을 전차에 투척 공격하는 훈련 한번도 받아본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때 연대장은 대전차지뢰 쓰는 법을 알려주었다.
“이제 땅을 파기에는 늦었으니 물이 빠지는 수로에 엎드려 있다가 인민군 전차가 오며 이걸 전차에다 밀어 넣는다, 대전차지뢰를 숨겨놓았다가 전차가 오면 당겨서 전차 앞에다 닿게끔 하면 전차가 날아 간다….”
나는 이론적으로야 알고 있었지만 실제 훈련을 해본 적이 없었다. 더구나 대낮에, 빤히 보이는데 가는 것은 죽으러 가는 거나 마찬가지다. 전차가 전진해 올 때 대개 적의 결사대 같은 공격이 있을까봐 엄호부대를 앞세울 뿐만 아니라 전차병은 모가지를 내놓고 전방을 주시한다.
어쨌든 우리는 북의 화력과 남침에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대비를 못했다. 나는 지금도 이런 정황이 이북의 전쟁 시나리오 연장선상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라는 의문을 지울 수 없다.
6·25 당일 최정훈 대대장이 결혼식이니 작전과장이 권한을 대행하게 되어 있었는데, 이 두 사람은 전쟁이 터지자 행방불명되었다. 나는 둘 다 ‘이북에 포섭된 프락치가 아니었나’라는 의혹을 지울 수 없다. 그런데 동기생 명부를 보면 전사한 것으로 나와 있다. 확실히 전사한 것을 확인하고 기록되었는지 의문이다.
